다시 봐도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어리둥절했다. 동시에 뛸 듯이 기뻤다. 몇 달 전 브런치를 시작한 뒤, 초심자의 행운인지, 브런치가 새로운 사용자를 잡아두려는 전략 덕분이었는지 두 어번 추천글에 올랐었다. 뭐라도 된 마냥 마음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이후 더 많은 공을 들여 쓴 글에는 반응이 시들해, 그새 글쓰기에 흥미를 잃어가려던 참이었다.
이슬아 작가는 한 강연에서 '나르시시즘에 갇힌 글쓰기는 몹시 답답하고 좁은 세계일 것 같습니다. 그것은 주어가 나뿐인 세계인데요.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쓰기가 언젠가 바닥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보다 금세 바닥이 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에게서 남으로 주어를 이동하고 확장하게 됩니다.'라고 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내가 바로 나르시시즘에 갇힌 글쓰기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서툰 내 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야기밖에 없었고, 그런 글이 어쩐지 낯간지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슬슬 글감도 떨어져 갔다. 그러면서도 나에서 타인으로 시선을 이동하는 글을 쓰는 법도 몰랐다.
공모전은 그런 내게 '괜찮아, 또 한 번 '나'가 난무하는 글을 써도 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라니, 마음껏 내 이야기를 해도 되는 명분이 주어졌다. 적당한 글감까지 던져주니 완전히 땡큐였다. 그렇게 줄줄 가볍게 내 이야기를 뱉어내 탄생한 글, '나를 나답게 해주는 이름'이 당선됐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문제는 녹음이었다. 코로나로 한국행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판에 녹음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EBS 스튜디오로 달려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조용한 곳을 찾아야 했는데, 문제는 나의 집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소음이 덜한 부엌 식탁에 자리 잡았다.
첫 녹음 시도, 켁켁 목소리를 가다듬고 휴대폰 녹음기를 켰다. 글 중반을 지나갈 무렵, "삐뽀삐뽀" 집 근처 소방서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왔다. 녹음 중단...
두 번째 녹음, 별일 없이 잘 진행되나 싶더니, 별안간 냉장고가 경운기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나기 시작했다. 다시 녹음 중단...
버지니아 울프는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내겐 왜 소음 없이 녹음할 수 있는 고요한 방 하나 없단 말인가. 절로 한탄이 나왔다.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난데없는 다짐을 했다.
다시 녹음을 시작했다. 내가 쓴 글을 읽는데 그렇게나 버벅댈 수 있다니,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직접 스튜디오에 가신 작가님들은 나처럼 자유롭게 녹음할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단번에 그렇게 잘 읽으실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게 수차례의 시도 끝에, 겨우 녹음을 마쳤다.
해외에 계신 분들을 위한 녹음 팁이라면 휴대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거나, 성능 좋은 마이크를 쓰시라는 것.
'나도 작가다' 공모전이라는 큰 프로젝트 뒤에는 밀크PD 님이 계셨다. PD님께서는 약 만 개의 글 중에서 60개를 뽑았다고 하셨다.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러니 이렇게 자랑도 해야겠다. 낯이 뜨거워져 나는 도저히 다시 못들어줄 링크도 아래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