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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Sep 01. 2020

하늘길이 막히자 찾아온 향수병

나는 괜찮을 줄 알았지

스무 살 이후 한국과 프랑스를 여러 번 오갔다. 주변에서는 너무도 평온한 나를 보고 신기해했다. 프랑스에 있을 때 단 한 번도 '한국에 가고 싶다', '한국의 무엇 무엇이 그립다'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움의 대상은 오직 가족과 친구들이었고, 그마저도 기약 있는 이별이니 괜찮았다. 물론 그 누구도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을 대체할 수 없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로 인해 결핍을 느낄 새가 없었다.


몇 달 전 스위스에 온 지 이 년만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2월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항공편이 계속 바뀌어 휴가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2주 자가격리가 의무화되며 5월로 미룬 일정은 완전히 취소해야 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본가에 내려가 격리하는 법도 알아봤다. 가는 길이 험난했다.

제네바→유럽 도시에서 환승→인천→광명 KTX→마산→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차량으로 본가 도시까지 수송

24시간은 족히 걸릴 여정이었다. 더군다나 내 몸 하나 안전하게 옮기는 게 이렇게 많은 사람의 수고가 동원되어야 할 일인가. 당분간 한국행은 단념하기로 했다.  


가족들에게 구호 물자라도 받아야지 싶었다. 어느새 잊어버린 도로명 주소를 검색하다 별생각 없이 로드뷰를 켰다. 집 앞 골목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 콧물을 훌쩍이며 로드뷰로 동네 구석구석을 훑었다. 나도 말로만 듣던 향수병을 앓게 된 것이다. 따스한 봄밤의 벚꽃길, 불 켜진 건물을 반사해 금빛으로 반짝이는 한강, 북적북적한 망원동 시장 골목...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풍경이었다.


처음엔 우울의 형체가 불분명했다. 주변 사람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기분이 축축 처졌다. 시간이 흐르고 거리두기가 가능해진 지금에서야 그 원인을 생각해본다. 왜 예고도 없이 급성 향수병이 찾아왔을까?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일로 강요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강요에 취약했던 나였다. 책상을 정리하던 순간 엄마가 "방 좀 치워라"라고 하면 손에 든 책을 팽개치고 "싫어!"하고 신경질을 부리던 고약한 사춘기도 지나왔다. 어떤 선택도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원해서 하는 거라고 스스로 납득이 가능한 상황을 좋아했다. 락다운이 시작되며 마침내 집에 마음껏 있을 수 있는 명분이 주어졌는데도,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자발적' 집순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게 하늘길이 막혀 바라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단 사실은 큰 좌절을 안겼다.


또한 이미 한국과 비교되는 위기 대응에 엄청난 피로감과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유럽의 적나라한 민낯에 크게 실망했다.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의 정부는 교만하고 무능했으며, 시민들에겐 공동체 의식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다. 현지 지인 대부분이 지구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위기와 마주하고 있으며, 코로나는 사실 독감보다 가벼운 질병이라고 주장했다. 무지와 선민의식이 끔찍하게 섞인 사고방식에 질려 관련 주제로 토론하는 걸 관뒀다. 철저한 이방인임을 실감하고 있을 때, 마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 여행이 틀어졌다. 나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국이 그리웠다.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지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향수병이 찾아왔다. 나만은 비껴갈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은연중에 무신경함을 정신력이 강한 것이라 착각하며 자랑스럽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나도 모르는 새에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주하지 못하고 묻어둔 초라하고 허약한 마음이 터져 나온 것일 수도 있다.


테오에게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도 그림의 나라에 대한 향수를 자주 느끼고 있다.
렘브란트나 밀레, 혹은 쥘 뒤프레, 들라크루아, 밀레, 마테이스 마리스에 대해서 내가 잘 알고 있었다는 건 너도 기억하겠지. 안타깝게도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환경에 있지 못하다. 그러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것은 영원히 살아 있어서 그 대상을 찾아다닌다고 하지 않니. 나는 향수병에 굴복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네 나라, 네 모국은 도처에 존재한다고.
그래서 절망에 무릎을 꿇는 대신 적극적인 멜랑콜리를 선택하기로 했다. 슬픔 때문에 방황하게 되는 절망적인 멜랑콜리 대신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멜랑콜리를 택한 것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의 말처럼 영혼에 깊이 새겨진 공간은 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고향의 짙은 바다와 푸르른 광화문 거리는 평생토록 마음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나도 적극적인 멜랑콜리를 선택하기로 했다. 몇 년 만에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생각 없이 웃고 나면 한결 기분이 상쾌해졌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묻기도 한다. 역시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해외에 사는 동안 이 감정은 옅어졌다 짙어졌다를 반복하리라 생각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서울에서 또 제네바를 향한 그리움에 시달리겠지. 향수병도 삶의 일부라면,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방법으로 달랠 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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