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oe Oct 17. 2020

나를 갉아먹는 요리 권태기

가장 원초적인 행위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행위로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이 끝날 무렵 요리 파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삼시 세끼를 해 먹느라 진이 다 빠졌기 때문이라는 게 대외적인 명분이었다. 분명 한 이유였을 테지만 더 큰 이유는 나를 먹이는 일, 다시 말하자면 나를 돌보는 일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밥을 차려 혼자 먹는 일에 더는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재료를 사서 손질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한 시간은 족히 드는데, 해치우는 건 순식간이니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즈음 겪은 이별도 한몫했다. 전 연인과 주말 한 끼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인지 헤어진 이후로는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도, 집에 사람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모두 두려워졌다. 천장이 높아서인지 쓸쓸하고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부엌이었다. 그곳에서 꺼이꺼이 우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은 정말이었고, 나는 그렇게 부엌과 멀어졌다.  



이동제한령 동안 해 먹던 요리, 이제 보니 왜 질렸는지 알 것 같기도...



살벌한 물가를 자랑하는 스위스에서 외식으로만 연명한다면 한 달도 안 돼 파산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요리 파업이 한창이라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확 줄어들었으니 식욕도 덩달아 줄어들면 좋으련만, 역시나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내가 택한 전략은 최소한의 시간 투입하기, 불은 가능한 쓰지 말기, 한번 불을 켜면 대량 생산하기 등이었다. 요리보다 조리에 가까운 즉석식품을 애용했다. 스위스 즉석 음식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스위스의 식문화를 반영하듯, 그 세계는 한국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지루하고 단순했다. 그 와중에 다행이었던 건 얼마 전부터 현지 마트에서 한국 라면을 쉽게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한국 라면, 스위스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K-빨간 맛과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라면


즐겨먹던 두부 카레와 비건 스테이크, 비건은 아니지만 채식 메뉴를 즐긴다


이 파업의 문제점은 아무도 아쉬울 게 없다는 것이다. 파업의 요구 사항도 없었고, 있다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내 몸만 상하게 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파업이라기보다는 권태기에 더 가깝겠다.


한국이라면 요리 권태기가 오면 밖에 나가서 좋은 음식을 사 먹으면 그만이다. 나의 최애 음식(예를 들어 뼈해장국이나 김밥)을 매일 사 먹는다고 해도 가계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먹을 것을 만드는 행위와 먹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붙어 다니는 것이었다.  


나를 갉아먹는 이 파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게다가 평소 요리가 내게 주던 순수한 기쁨을 생각해보자. 재료를 다듬고 썰고 굽는 그 단순한 움직임에서 얼마나 큰 평온함을 느꼈었나. 내가 나서서 평화를 빼앗은 셈이었다.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어 '먹는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잊고 있었다. 먹기 위해 준비하는 일도 먹는 일만큼이나 신성하다. 그 행위에 정성을 다하지 못해서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먹는다는 것은 살기 위한 가장 원초적 행위다. 그 동물적인 행위에 정성을 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자신을 부지런히 사랑하는 시간으로 바뀐다. 냉장고를 찬찬히 살피며 자투리 재료를 이용해 뭘 만들지, 점심엔 피자를 먹었으니 뭘 해 먹어야 영양의 균형을 맞출까 머리를 굴리는 것, 다 고도의 창의력을 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시간을 들여 음식을 준비하고 맛보는 일은 밋밋하게 스쳐 지나가는 날들에 경쾌한 배경 음악을 까는 것 같다.  


어제 해먹은 수제비, 반죽이 쫄깃쫄깃 잘 됐다. 야무진 내 손 끝이 예뻐보일 때

상황이 상황인지라 좋은 걸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그동안은 우선 나를 잘 대접하기로 한다. 네 시만 되어도 어둑어둑해지는 건 유럽의 기나긴 겨울이 훌쩍 다가왔다는 뜻이다. 긴긴 저녁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계절이다. 소박하지만 건강한 한 끼를 위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 움직이는 나의 그림엽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