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다면-기기 마크스

2024.9.6.

by 친절한 James


햇살이 밝게 아른거린다.

반투명 크림색 커튼 너머로

한올씩 새어 나오는 빛살이 침대에 닿았다.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

처음 보았던 하얀 눈부심을 닮았다.

그런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삶을 시작하는 순간이 있지.

그리고 마무리하는 때도 있고.

그 사이에 어떤 시간을 살아왔든

처음과 끝을 피할 수 없어."

눈을 뜬 A가 말했다.

커튼이 지느러미처럼 얇게 물결쳤다.

반쯤 열어둔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아내가 사준 드림캐쳐가 아른거렸다.

딸랑, 희미해지던 의식이 잠깐 반짝했다.

잠깐 다물었던 입이 열렸다.

"나도 저 커튼 같았어.

외부의 여러 일들에 흔들렸지.

돌이켜보면 대단치 않은 것들에까지도 말이야.

안 그래도 됐는데..."

"정말 열심히 잘 살아오셨잖아요.

아버지, 정말 존경하고 감사드려요."

A의 아들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는 침대 옆 머리맡 작은 라탄 스툴에 앉아

A의 얼굴 가까이 짭짤한 눈을 맞추고 있었다.

여태 아버지와 이렇게 가까이 마주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언제였던가.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네 어머니, 당신을 만난 거고

다른 하나는 너를 낳아 키운 거란다.

내 삶에 두 사람을 빼면 뭐가 남을까."

"나도 내 사랑 그대를 만난 게 내 생애

최고의 행복이자 축복이에요."

A의 아내가 힘겨운 떨림을 토해냈다.

"그동안 내 병간호하느라 참 고생 많았어요.

1년 시한부가 9년 살았으면 정말 천운이지.

다 내 사랑 덕분이에요."


A는 그녀와 만난 순간들,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렸다.

심해 속에서 피어난 기포가 솟아오르듯

가슴 깊은 곳에서 수많은 장면들이

솟아올라 펼쳐지고 흩어졌다.

여기는 양수를 닮은 바다일까.

A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을

고스란히 가져가고 싶어요."


이제 말을 하기 힘겨워졌다.

'만약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다면...'

흐려지는 마음속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남은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을

더 챙겨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걸까.

A는 눈을 감았다.

이젠 아까처럼 어둡지 않다.

터널의 출구로 달리는 기차 같다.

빛이 스며든다.

저기에는 내 모든 추억이 있을 것 같아.

좋고 나쁨을 벗어난 사랑과 평화의 언덕,

그곳으로 간다.


만약 내가 모든것을 기억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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