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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Nov 04. 2024

눈 깜빡할 순간에 일어난 일

2024.11.4.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1초라는 간격은 그 일을 담아내기에

너무 길었다. 평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광활한 여백 한가운데 번개처럼 스쳐간 느낌.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영감에 가까웠다.

무한한 침묵 속 번뜩인 한마디가

용암처럼 솟구쳐 가슴을 타고

뜨겁게 뜨겁게 흘러내렸다.

수년 동안 마음을 짓누르던

두꺼운 유리 덮개가

와장창 산산조각 나

가루로 흩날리는 기분,

작은 바람이 불어왔다.


언제부터였을까.

V는 몸이 아파왔다.

콕 집어 말하기 어려웠는데

여기저기가 불편하고 힘들었다.

넘어지거나 다친 것도 아니었고

아직 늙었다고 할 나이는 더 아니었다.

병원에 가 봐도, 건강 검진을 받아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마음도 그랬다.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어졌다.

누군가의 감정을 받아들이기 벅찼고

내면의 감정을 내비치기 두려워졌다.

여러 대인 관계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무엇보다 답답했다.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

무언가 몸과 마음을 옥죄는 기분이 들었고

뒤에서 뭔가 자신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이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돌고 돌았다.

헤어날 수 없는 미로가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깊은 밤 산길을

홀로 걷는 듯한 나날 가운데

그 일이 생긴 것은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운전을 하거나

여러 사람과 함께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안 그랬으면 큰일이 생겼을 수도

모른다. V는 그 순간

정신을 잃었으니까.

물리적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영혼은 무한한 광명 속에서

억겁의 세월을 노닐다 온 듯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경험.

그것은 눈 깜빡할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 일 이후

V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눈 깜빡할 순간에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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