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아닌 사람이 쓴, 기자정신이 빛나는 책
독후감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반성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아직 전 회사에서 일하던 재작년 여름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유니클로 불매운동을 비롯해 반일감정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런 시기에 나는 한일 퇴역장성단체 간 교류를 일본의 전범이 세운 재단이 지원해왔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었다. 취재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나는 상사에게 이런 시국에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이 양국 간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파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상사는 이건 뉴스거리가 충분히 된다고만 했다. 뉴스거리가 되는 소재인 건 당연하지만 그걸 하필 일본산 불매운동이 한창인 시국에 보도하는 게 장기적인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물음표를 안은 채 나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기사를 최대한 사실관계에 초점을 맞춰 작성했다. 건조하게 쓴다면 사람들이 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하나같이 일본과 한국의 우익을 욕하고 그들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내가 하는 보도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일본에 대해 기사를 쓸 만큼 일본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어렴풋하게나마 이건 내가 취재를 잘해서 사람들이 반응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이목이 한일관계에 쏠려 있을 때 그와 관련된 약간 자극적인 (사실에 기반했다 하더라도 시국이 시국이었으니만큼 자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템을 했기 때문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 직감이 맞았다는 걸 <일본의 굴레>라는 책을 다 읽고 재차 확인했다. 내가 아무리 사실관계에 초점을 맞춰 객관적으로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해도 다시 읽어본 당시 나의 기사는 얄팍하기 그지없고 일방적인 시선으로 가득하다. 일본을 공존해야 할 이웃나라가 아닌, 여전히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속셈을 가진 군국주의 집단으로 단순화한 데 일조한 것만 같아 속이 쓰리다. 저널리즘으로 평화가 아닌 갈등만 부추긴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남는 기사다. 그때 만약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더 깊이 있는 시각으로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번역본은 올해 2월에야 나왔으므로 그때 이 책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영어 원서로 읽어야 했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나의 무지함을 깨닫고 진작에 두 손 들고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의문은 또다른 의문으로 이어진다. 기자는 어떤 현상에 대해 얼마나 알아야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나. ‘제대로 된’ 기사는 도대체 무엇이며, 하루에도 홍수처럼 쏟아지는 기사의 물결 중 얼마나 될까. 어쩌면 기자는 자신이 손에 쥔 정보의 편린이 우리가 맞닥뜨리고 살아가는 현실을 포착하는 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중요할 것이라는 확신— 그것이 아무리 그릇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고민은 나중으로 미룬 채— 없이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그저 특종 욕심에 눈이 멀어 뭐라도 잡히는 대로 써 제끼는 걸까. 내가 이런 고민을 여전히 품고 이 글을 쓰는 건 내가 제대로 된 저널리즘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저 나의 고질적인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된 기우인 걸까. 다른 기자들이 다 아는 당연한 것을 나는 몰라서 여전히 펜을 들기를 망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더 이상 직접 쓰지 않는 자리에 있지만, 이 물음에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하다.
이렇듯 마음속에 많은 생각과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굴레>의 저자 테가트 머피는 대학 졸업 후 40년간 일본에 거주하며 자신이 보고 배우고 취재한 일본의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이 책에 총망라해놨다. 일본에 대한 애정을 갖고 따끔한 충고도 하지만, 더불어 일본의 현 상황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로를 거치며 형성됐는지 독자들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는 자신이 미국인임에도 자신의 나라 미국이 일본의 정치체제의 어떤 부분을 망가뜨렸는지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테가트 머피가 기자를 업으로 삼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기자정신이 빛나는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모든 기자가 자신이 취재하는 나라에 40년 간 살아본 후에 두툼한 책 분량의 기사를 쓰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건 전혀 현실적이지도 않거니와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본이라고 하면 무조건 감정이 앞서는 경향이 있다. 언론의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그런 상황을 심화시킨 책임이 크다.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려는 노력 없이 그저 상대를 감정적으로 적대시하는 기사는 잠깐 기사 조회수가 높겠지만 그 결과는 장기적으로 양국 관계의 긴 그림자를 더 짙게 드리울 뿐이다. 감정은 오해를 낳고 결국 갈등을 부추긴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말한 것처럼 “전쟁은 언어가 실패할 때 일어난다.” 언어로 소식을 전하고 현실을 해석하며 역사를 기록하는 기자의 일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굴레>는 기자 지망생이라면, 그리고 동북아 평화공존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