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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색림 Jun 06. 2022

사무실은 일 년에 두 번만

비행기 갈아타고 사무실 가는 길에서

구름바다 건너 사무실 가는 길. 코로나 전엔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한 번 갈아타는 것도 번거로워했었는데 이제는 사무실 한 번 가려면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곳에 산다 (그래서 사무실은 일 년에 두 번 정도밖에 안 간다). 2년 전 워싱턴 디씨 소재 회사로 이직한 후 원래 계획은 디씨로 이사 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제멋대로 흘러가지 않는가? 계획대로 흘러갔더라면 나는 여전히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언론사로 이직도 결혼도 이민도 내 인생계획엔 없던 일들이었다. 아무튼 내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산이 흔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출신인 나는 산도 없고 바다고 없이 평평하고 납작한 미 대륙의 심장부인 중서부에 살고 있다 (그래서 한국 가면 산이든 바다든 꼭 놀러 가려고 벼르고 있다). 내가 사는 도시는 시카고에서 차로 세 시간, 비행기로 30분 걸리는 중소도시이며 일리노이 대학 소재지다. 대학가라 젊고 활력이 넘치며 진보 성향의 주민이 대다수다. 시골로 둘러싸인 이 작은 도시는 예전에 잠깐 살았던 춘천의 미국판 같다. 물론 춘천과는 달리 호수도 산도 없지만, 춘천과 공통점이 있다면 도시 이름이 예쁘다는 것이다 (도시 이름이 “샴페인”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동네 주민이 된 것도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이곳에서 평생 살게 될지, 또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주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가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하는데, 한편으론 또 결말을 알고 읽는 책은 읽다 재미없어 집어던질 것 같다.


시카고 공항에서 다음 항공편을 기다리며 주절주절 써봤다. 써 놓고 보니 근래 가장 길게 쓴 글 같다. 언젠가부터 왠지 글쓰기가 두렵고 자신이 없어져서 글은커녕 일기도 안 썼다. 최근 몇 년 동안 인생이 엄청나게 달라지면서 한동안 정체성 혼란에 시달린 탓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세상사에 대해 글이 써질 리가 없다. 산도 바다도 없는 광활한 미 대륙 중앙에서 사무실에 가려면 대륙 동쪽 연안까지 이동해야 하는 사람의 일상은, 작디작은 한반도의 서울이라는 대도시 내에서만 출퇴근하던 사람의 시야와 세계관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내적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삶의 터전과 생활환경의 변화는 자아정체성과 자아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또다시질풍노도 #질풍노도몇변째냐 #사무실가는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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