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를 보고 떠올린 비겁한 옛 친구 이야기
더 글로리를 보며 가장 만족감을 느낀 부분은 경란이의 최후였다. 연진이도 사라도 재준이도 혜정이도 명오도 다 받아 마땅한 벌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경란이가 받은 벌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여전히 그 패거리의 일을 해주며 빌빌거리고 겁은 많아서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사는 그런 모습이 딱 어울렸고 적당했다.
내가 드라마에서 경란이에게 주목한 이유는 한때 내게 경란이 같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항상 같이 팔짱 끼고 다닐 정도로 가장 가까웠지만 내가 다른 아이들의 타깃이 되니 비겁하게 외면했던 그런 아이. 그렇게 비겁한 인간은 얼마나 초라하고 비루하게 살게 되는지 보여줬다는 점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가 내 마음에 맺혀있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준 것 같다. 현실에선 잘 먹고 잘 살고 있을지라도 드라마에서만이라도 그렇게 친구에게 등 돌리는 나약한 인간도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았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학교 다니면서 따돌림을 세 번 정도 당했었다. 드라마에서처럼 고데기로 지짐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감정적 언어적 폭력은 어린 영혼에 고데기로 지진 것 같은 흉터를 남긴다. 따돌림을 두 번 당하고 나서는 따돌림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싫어서 일부러 반에서 따돌림당하는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군대같이 4년 내내 기숙사 생활하던 대학 때에도, 그것도 군대로 치면 말년 병장 같은 4학년 때 따돌림을 당했었다는 게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나의 따돌림의 발단이 되었던 건 학교 규율을 남들에게 지키라고 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지키라고 내가 동급생들에게 쓴소리를 한 것이었기에 지금도 부끄럽지 않다. 다만 모두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을 때 가장 친했던 친구조차 나와 말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참 아팠다. 그게 당시 나에겐 제일 쓰라린 고데기 자국이었다.
그 친구가 오랜만에 생각난다. 누구더라, 이름이. 나의 경란이는 이름이 어떻게 되더라. 그 이름을 잊고 살았다는 게 참 기뻤다. 나 그동안 잘 살았구나 싶었다. 김경란처럼 누추하고 비루하게 살아라, 하는 마음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살든지 말든지 관심 없어, 너는 내 인생에 낄 자격을 잃어버렸으니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퍽 마음에 든다. 나 문동은만큼은 아니어도 열심히 잘 살아왔네 싶다.
안녕 나의 경란아. 오랜만이야. 다시 만나면 내가 누구더라? 하고 물어볼 테니 그냥 나를 알아봐도 아는 척하지 않는 게 네 정신건강에 좋을 거야. 그 정도 용기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