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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터 Nov 12. 2023

여행 지원금 25만 원 주는 나라

여행 지원금 받으러 대만 여행 갑니다

20년 지기 친구와 함께하는 해외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 초중고를 같이 나와 지금까지 나의 가장 친구 1위에서 떨어진 적이 없는 박매트 씨는 그리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행 중독인 나와 달리 박매트 씨는 주로 빛 한 점 없는 집에서 냅다 누워있는 것을 즐겼다. 종종 나의 간절한 부탁에 기꺼이 함께 국내여행을 가긴 했지만, 해외여행을 갈 기회는 없었다. 올해 안에 해외여행을 같이 가고 싶다는 나의 바램에 우리는 여행지를 정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깝고 만만한 일본에 갈까, 했기만 박 매트 씨가 일본 여행을 이미 너무 많이 다녀와서 새로운 곳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럼 어느 나라가 가장 가고 싶냐는 나의 질문에 박매트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만 가고 싶어.”


대만은 이미 가본 곳이었지만, 예전에 혼자 다녀왔기에 친구와 함께 가면 그때와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렇게 대만 여행을 가기로 하고 우리는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여행 전날, 배낭을 메고 박매트 씨의 집으로 갔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려면 인천에 있는 박 매트 씨 집에서 하루 묵고 택시를 타고 새벽에 나가야 했다. 짐을 다 싼 박매트 씨가 말했다.


“내가 보내준 링크 했어?”


박매트 씨가 보내준 링크는 대만 여행지원금을 신청하는 사이트였다. 대만에서는 25년까지 추첨을 통해 여행객에게 지원금을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아직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하니 박매트 씨가 말했다.


“빨리해. 이것 때문에 대만 가자고 한 건데.”


너무 멀지 않으면서 적당히 이국적인 곳이라서 대만에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본래의 목적이 여행지원금이라니 웃음이 났다. 찾아보니 3명 중의 한 명이 당첨될 확률이고 당첨만 되면 25만 원이 생기는 건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빠르게 지원금 신청을 마치고 다음 날 공항에서 당첨되기를 바라며 잠을 청했다.


대만의 길거리


여행 당일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박매트 씨의 남자친구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까지 태워다 주기 위해 왔다고 차 뒷자리에서 냅다 자도 괜찮다고 박매트 씨가 말했다. 박매트 씨의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는 거라 어색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차를 운전하는 박매트 씨의 남자친구, 조수석에 앉아있는 박 매트 씨, 그 뒷자리에 앉아있는 나. 차 바깥은 해 한 점 없이 가로등 불빛으로 간신히 밝힌 어두운 도로 위의 풍경이 보였다. 컴컴한 바깥 풍경처럼 차 안의 분위기도 어색하고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인천 공항과 가까워질수록 차 안은 헛소리로 가득 차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헛소리는 웃음 포인트가 특이한 박매트 씨와 나만 통하는 삶에서 중요 것도 영양가 있는 말들은 아니지만 배꼽이 떨어질 듯 웃게 되는 말들이었다. 박매트 씨의 남자친구분도 웃음 포인트가 비슷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오토바이 할아버지와 박 매트 씨의 뒷모습


두 시간 남짓 되는 비행을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 게이트를 나왔다. 저 앞에 여행 지원금을 추첨하는 공간이 보였다. 주황색 톤으로 꾸며진 곳에는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로 꽉 채우고 있었다. 다들 저마다 핸드폰으로 인증을 한 뒤, 태블릿 화면에 나온 버튼을 눌러 추첨했다. 꽝이라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당첨이 믿기지 않는다는 환호가 뒤섞이며 웅성거렸다. 박매트 씨에게 꼭 둘 다 당첨되어서 50만 원으로 호화스러운 여행을 해보자며 경건하게 태블릿 앞에 섰다. 큐알 코드로 인증을 하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곰돌이 얼굴 모양이 그려진 동전 일러스트가 화면에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을 중 하나를 누르니 결과가 나왔다. 깜찍하게 얼굴을 찡그리고 몸으로 엑스 표시를 한 곰돌이의 모습과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너무나 허무하게 탈락이었다. 아쉬웠지만 박매트 씨는 꼭 당첨되길 바라며 자리를 비켰다. 박매트 씨의 여행지원금 추첨 결과도 처참했다. 전날부터 시끄럽게 웃음소리를 뱉어내던 우리의 입이 절망으로 닫혔다.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대만 여행의 꽃 지우펀


엘리베이터를 타고 SRT를 타러 공항 지하로 내려갔다. 도착하니 열차가 막 도착했다. 우리가 타야 할 열차는 17분 뒤 도착인데 이 열차를 타도 괜찮을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왠지 그 열차를 타면 우리가 가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열차에 올랐다. 기다리거나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박매트 씨의 말에도 괜찮다고 말하며 좌석에 앉았다. 잠시 후 열차가 출발하고, 지도에 떠 있는 내 위치가 숙소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알아보지 않고 막 탄 거였지만 다행히 우리가 가는 방향의 열차였다. 그때 박매트 씨가 말했다.


“반대로 탄 거였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어? 그러면 다시 내려서 반대로 가는 거 타지 뭐”


그렇게 대답하니 박매트 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와 진짜 여행 막 하네?”

“그럼. 어쨌든 숙소에 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렇게 또 한 번의 헛소리를 하며 함께 웃기 시작했다. 여행지원금 때문에 온 대만 여행이었지만, 그것에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당첨 운은 없었지만, 열차 운이 좋았고, 열차를 반대로 탔다고 해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여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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