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밤 고요한 밤
매년 12월이 되면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 거룩한 밤 고요한 밤. 노래가 낮게 울려 퍼지면 그날은 언제나 찬란하던 성당 내부가 대도시의 밤하늘처럼 까맣게 소등되고, 신부님 손 위에 아기 예수님만 빛난다. 외가, 친가 모두 천주교지만 성실하지 못한 신도인 우리 가족은 일 년에 한 번 성탄미사만큼은 챙겨 나가곤 했다. 2020년의 긴긴 펜데믹과의 싸움에서 또 한 번의 폭격을 맞은 지금, 우리 가족의 그 연례행사는 취소될 듯하다. 하지만 똑같이 어딜 가나 캐럴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작년 크리스마스가 유독 생각이 난다.
작년 8월 내가 독립했고, 한 동안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서야 전화기 넘어 서로의 말이 오가고, 겨울이 되어서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을이었던 엄마의 생신을 지나고 뵙자니, 뒤늦은 생신선물로 떠올린 것은 요샌 성당에 자주 참석한다는 말씀에 떠올린 미사보였다. 오랜만에 미사에 나가려니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미사보가 안 보인다는 말씀을 흘려듣지 않고 기억해두었다.
엄마가 성탄미사에 가신다길래 나도 같이 가겠다 했다. 날씨가 춥고 엄마의 운전이 아직은 불안하니 모셔다 드리는 겸 같이 미사 드리자 했다. 미사 시간을 확인하고, 미사를 드리기로 한 성당은 당일 성물방을 열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동 성당을 먼저 방문했다. 멀리서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이 보였다. 반가웠지만 잠깐의 인사도 부담스러울까, 빠르게 지나쳤다. 순결하도록 하얗게 빛나는 미사보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미사를 드리기로 한 성당에 갔다. 공손히 이마 중앙,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 순으로 십자가를 긋고 포근한 빛에 감싸여있는 성모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나는 평소 성당에 나오지 않는 만큼 그 따뜻한 불빛을 최대한 두 눈에 담아두었다. 들어가기도 전부터 묘한 감정을 억누르며 엄마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19년 12월 24일, 성탄미사가 있던 그 날은 외할머니 기일과 겹쳐 엄마는 미사에 외할머니 성함을 올리셨다. 맨 앞의 성씨 한 글자와 그 뒤 언제나 익숙한 세례명. 엄마 말고도 몇몇 분이 성함을 더 올리셨지만, 외할머니 성함이 맨 처음 읽혔고 엄마는 그를 듣자마자 소녀처럼 팔꿈치로 나를 툭툭 치며 '외할머니 이름'이라며 속삭였다. 이 미사에 엄마와 나뿐 아니라 외할머니가 함께 계신 느낌이었다. 한 어머니의 딸과, 그 딸의 딸 셋이 함께 올리는 미사.
그렇게 이 미사에 함께 할 이들의 성함이 다 읽히고, 그 어느 때처럼 거룩한 밤 고요한 밤 성가가 첫 번째로 울려 퍼지며 그 어느 때처럼 아기 예수님을 든 신부님과 사제들이 제단 쪽으로 걸어 나왔다. 사제들 중 한 남자아이의 얼굴이 익숙했다. 그 아이도 얼굴을 보아하니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오늘 유독 반가운 얼굴을 많이 보네, 날이 날인가 보다 했다. 시선을 자꾸 그쪽으로 보내면 느껴져서 알아챌까, 더 이상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는데, 신앙에 열심인 학생인 것은 알았지만 표정이 꽤 엄숙 경건해서 귀여운 마음에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다시 그 어느 때처럼 성탄 특유이 거룩함이 성당 안에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하더니 곧 가득해졌다. 그 거룩한 향은 신부님이 치는 향에서 나오는 것일까, 성탄을 기념하는 따뜻한 불빛에서 나오는 것일까. 거룩함인지 무엇인지 모를 어떤 느낌이 내 마음을 휩쓸더니, 파도에 온갖 것이 섞여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눈물이 올라왔다. 창피해서 얼른 훔치는데도, 훔치는 것 만으로 숨겨지지 않을 만큼 눈물이 흘렀다. 아기 예수님 빼고 온통이 까매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신부님 옆에 있는 그 학생도, 옆에 있는 우리 엄마도 내 얼굴을 보지 못할 테니까.
올해 엄마 마음 아프게 해서 잘못했다고 회개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기도했다. 그렇지만 독립은 옳은 결정이었고, 지금을 놓고 보았을 때 모두의 관계를 결국 더 좋아지게 했기 때문에 여전히 후회는 없다. 그저 언젠가는 마주해야 했고, 피할 수 없었던 그 갈등의 고비를 서로 잘 넘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했다.
독립, 그것은 자식도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힘겨움이 있지만 보내야 함을 알고 보내는 부모님에게도 힘겨움이 있다. 하지만 어차피 결국은 해야 한다. 하나의 제대로 된 인격체가 되려면, 더 큰 세상을 담고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작년 크리스마스는 엄마와 내가 분리되는 고통 속에 있다 예수님 안에서 함께 있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 외할머니도 함께 하셨을까. 외할머니와 엄마도 이런 시간을 겪으신걸까. 어쨌든 결국은 그 모두가 함께했으니까. 서로를 힘들게 하다가도 결국 사랑하는 크리스마스의 그 엄마, 그 딸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