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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영 Apr 25. 2021

힘들 때 쓴 일기

2021년 2월 3일

2021년 2월 3일 일기


  날짜를 1월이라 적고 며칠인지 캘린더를 확인하니 어느덧 2월로 넘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작년에게 속이 쓰린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한 것이 어제만 같은데 벌써 또 한 달을 지나왔다고?

속수무책으로 나는 시간을 놓치고 있었다.

놓치고 있었다는 표현은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는 길에 나서는데 눈이 펑펑 내린다. 눈은 내릴 때는 예쁘다. 운전자에게는 바닥에 쌓여가는 눈송이 무게만큼이나 퇴근길이 걱정이겠지만, 차 없이 도보하는 나는 눈으로 세수를 하고서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빤히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

나는 겨울이 싫었지만, 올해 들어 겨울이 좋았다. 특히 눈이 내릴 때면 드는 포근한 그 느낌이 좋았다. 날씨가 맑은 날에 밤하늘은 까맣게 후퇴해 별들을 더 빛나게 하지만, 눈이나 비가 내려 흐릴 때는 더 부드러운 색이 된다. 회색보다 연보라에 가깝다. 저 안에서 잠에 들면 악몽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좋은 것을 보면 왜 죽음이 떠오를까. 긴장 상태에 있다 마음이 사악 풀어져 '죽으면 하루하루가 이렇게 맘 편하겠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나는 오늘도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 죽음은 끝이고, 끝이란 휴식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휴식을 취하고 싶다. 오늘 너무나도 예쁘고 포근한 눈 내리는 밤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나의 임종 때 창 밖이 이런 풍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추운 만큼 나는 느리게 썩을 수 있겠지? 죽고 나서는 이렇게 눈송이가 뺨에 닿을 때 느껴지는 차가움을 느낄 수 없겠지? 그때는 내 체온이 없을 테니까. 눈길을 걸을 때 발자국도 남지 않을 거야. 그걸 본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발자국이 남지 않는 나의 발자취를 보며 서글퍼할까, 기뻐할까.



 죽음은 좋을 것이다. 사랑했지만 사랑한다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무한히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장소일 테니까. 하지만 아직 이곳에서의 책임이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견뎌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몇십 년간은 버티겠지. 버티다 버티다, 때가 되었다 하늘이 부르면 갈 수 있겠지.

죽음은 돌아갈 수 있는 곳, 나의 휴식처, 막상 맞닿으면 두려움에 떨겠지만 이렇게 힘든 날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작은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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