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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영 Sep 22. 2021

엄마의 섬망과 퇴사

생신 기념, 딸이 엮어낸 엄마의 시집

  마지막으로 엄마에 대한 기록을 남겼던 것이 퇴원 전이었으니, 이번에는 퇴원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요약해서 기록해볼까 한다. 나의 글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근심 걱정이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과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9/7(화) 엄마가 퇴원(8/14 모야모야병으로 인한 뇌출혈로 응급수술 받으시고 약 3주 입원)하셨다.

비교적 젊으신 나이인지라 회복이 빠르셨다(올해 54세).

힘들었던 부분은 크게  가지이다.

- 엄마의 기억력이 아직 온전치 않아 아이처럼 사고를 치시거나, 틀린 부분을 맞다고 고집하시는 .

- 그리고 엄마의 실업급여와 관련한 퇴사문제.


항시 옆에 붙어 식사와 약을 챙겨드리는 것이 답답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독립해서 나간 이후, 오히려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처음으로 생겨 좋다.





하지만 오늘은 힘들어서 화가 났던 날들 대한 이야기를  보따리 풀어보려 한다.


<사건 1> 70만원어치의 쇼핑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동안 집에 들이지 못했던 택배 박스가 수북했다. 그중  똑같은 정수리 가발이  개나 왔다. 하나를 시켰는데, 그것을 잊고 수량도 잘못 체크하여  개가    같았다. 삭발을  엄마의 머리에 부분 가발을 얹으니 투블럭이 되어, 우리 자매는  터졌다. 부분가발은 그렇게 값이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사이즈가   박스  개가 새로이  있었다. 하나를 열어보니 탄산수 제조기였다. 전날 엄마가 70만원어치 결제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취소 신청을 넣었는데, 아무래도 늦었나 보다.  건도 취소되지 않았고 15만원어치의 탄산수 제조기가  개나 왔다.

안타깝게도 두 탄산수 제조기를 두 눈앞에 마주했던 시간은 내가 피곤에 쩔어있을 때였다. 퇴원 당일 밤, 엄마의 잘 떠지지 않던 왼쪽 눈의 통증이 심해졌고, 나는 바로 그다음 날 그 병원의 안과 진료를 연계받았다.

안과 진료받기 전, 엄마의 회사 사람들과도 만났다. 내미셨던 퇴직원에는 연필로 써야 할 내용이 미리 기재돼있었고, 찝찝한 마음에 더 알아보고 이번 주 안으로 전달드리겠다 했다.

또 병원 간 김에 보험처리에 필요한 서류들을 또 신청하고 받아와야 했었는데, 그 절차가 꽤나 번거로웠다.

나는 거동이 느리신 엄마를 모시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종합병원 안을 왔다 갔다 하며 그날 해야  일들(엄마 회사 사람들과 퇴사 의논 - 안과 진료 - 보험 서류 떼기) 마무리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안에서 창문을 내리는 것과 차문을 여는 것을 혼동하여, 창문을 내리려다 차문을 열어버리셨. 전부터 헷갈려하시는 조짐이 보여 창문을 열고 싶으면 혼자 열려하지 말고 말씀을 하시라고 신신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오늘 하루 정말 고되다' 열이 올라오던 찰나, 큰 탄산수 제조기 두 세트를 보고 끈을 놓아버린 것.

그날 엄마한테 화를 정말 크게 냈다. 아직 회복도 온전치 않으신데 그럴 수 있지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 당시 왜 그렇게까지 화가 올라왔을까 생각하면, 내가 너무 힘에 부쳤던 것 같다.


엄마가 평생 일하며 힘들게 모으신 , 그게 이번 일로 허망하게 공중분해되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엄마가 미리 알려줬던 보험 서류들을 다 뒤지고 보험사에 문의하여 보험금을 신청하고, 산정특례를 알아보고 병원에 신청하고, 실업급여를 알아보고 엄마 회사 사람들을 몇 번이나 만나 뵈었다.

유선이나 인터넷으로 모든 절차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지만, 이렇게 중요한 일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의 시간(본인 올해 연차도  끌어 ) 힘을  이렇게 노력했는데, 물을 가득 채워놓은 독의  부분이 깨져버린 느낌이었다.


엄마는 혼이 나는 아이마냥 당황하시고 미안하다 말씀하셨다.  모습을 보니 내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화가 났었는지, 하지만 엄마가 아직은 그럴 수도 있었는데 내가 지나쳤다 말씀드리며 죄송했던 마음만큼 그날  꼭 안아드렸다.


하지만 이후로도, 섬망이 있으셔 우리   사이에 딸이    있다고 찾으시고(우리가 부정하면 감정이  요동치심), 아래 퇴사처리 진행 과정 중에도 기억 착오로 "어떤 사이트에서 어떤 서류가 확인되어야 하는데, 네가 일처리를  못했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셔 화가  올라와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한 기복이 었지만, 빠르게 나아지셔 지금은 기억력 면에서 완전하시다.

이제 더 이상 셋째 딸을 찾지도 않으시고, 최근의 일은 오히려 나보다 기억을 더 잘 하신다.






 그리고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났던 엄마의 퇴사 과정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건 2> 권고사직 안돼서 결국 자발적 퇴사 - 실업급여 수령에는 문제가 없을까?


1. [8/14] 엄마 쓰러지셔 이 날부터 결근

2. [8/15] 엄마 ,  찾아올  직원분들께 감사인사 드릴  회사 방문

2. [8/31] 퇴사처리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부장님, 소장님 병원 오셔 말씀

3. [9/7] 부장님, 소장님, 본부장님 병원 오셔 퇴직원 서류 작성하라고 전달 주심

4. [9/9] 고용노동부 방문해서 이렇게 퇴사하면(질병으로 자발적 퇴사) 나중에 실업급여 수령 가능한지 문의, 더 필요한 서류(질병 퇴사 확인서) 안내받고, 퇴직원과 질병 퇴사 확인서 회사 방문하여 다시 전달

5. [9/11] 우리한테 전달 주셔야 질병 퇴사 확인서 지난번 말씀과 다르게 작성 주심

6. [9/13] 고용노동부 다시 방문하여 이렇게 작성해도 되는 건지 문의

7. [며칠 전] 고용노동부 답변대로 회사에 재작성 요청, 며칠 전 다시 받음


< 과정  회사의 대처에 화가 났던 부분>


* 장시간 자리를 비워둘 여건이 안되니 퇴사처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회사가 먼저 언급, 추후에 실업급여 수령이 어렵지 않도록 권고사직처리 가능한지 문의드리니, 처음에 가능할 것 같다고 말씀 주시고는 후에 본부장님이랑 같이 오셔 그건 어려우니 자발적 퇴사 일반 퇴직원 내미심.


* 이때 실업급여에 대해 먼저 알아본 본인이 "질병으로 자진 퇴사하고 나중에 실업급여 수령에 문제가 없으려면, 휴가를 먼저 요청하고 회사 측에서 거절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휴가 사용이 어려우시다는 거죠?" 질문드리니,   있다/없다라고 정확히 대답하지 않으시고 우회적으로 "우리도 사실 힘이 든다,  직원을 빨리 뽑아야 한다, 그러니 퇴사처리를 진행해야 한다." 식으로 대답.


* 권고사직 처리  회사 쪽에서 손해인 점들을 본인도 알기에, 우리가  번거로워지더라도 질병으로 자진 퇴사하는 방향으로 실업급여를 자세히 알아보려 지역 고용노동센터 방문하여 질병 퇴사 확인서 받아온 것임.

근데 회사가 메일로 발송해준 질병 퇴사 확인서 문항  "휴가를   있었는가?(있었다면  기간은?)"란에 "  있었다. 3개월"이라고 적어놓은 것임. 이를 보고 동생과 나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남.

이렇게 체크하면 휴가 신청을 하지 않고 퇴사 신청을 넣은 꼴이 되고, 그렇게 되면 실업급여 수령에 문제가 생긴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


* 고용노동센터 다시 방문하여 말씀하셨던 것과 다르게 이렇게 작성을 해주셨다, 문제가 없는 것이냐 문의드리니, 치료 기간이 긴 경우 내부규정상 휴가를 3개월 줄 수 있어도, 그 3개월 이후 또 휴가를 주기가 어렵거나 퇴사처리를 진행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괜찮다" 말씀 주심(참고로 지병이 가벼워 3개월 이내에 완치가 되고 재취업을 할 수 있다면, 이 경우는 안 괜찮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추후 실업급여 신청 시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치료를 받았다는 내역 추가로 제출 필요.)

근데 기본적인 1번 문항(업무내용)을 공란으로 줘서 이 부분은 다시 작성을 해주셔야 한다 말씀, 말씀대로 1번만 다시 작성해서 달라 다시 메일드림.


* 그런데  1 문항(업무 내용) 쓰는  그리 어려웠는지 본부장님 오실 때까지 며칠을 기다리더니,  이후 다시 전화 주셔 그래서 어떻게 수정을 해야 하는 건지 재차 물으심(메일과 문자 용 확인하시긴 한 건지..?)

그렇게 1번 내용만 추가해서 다시 주심.



그렇게.. 엄마의 퇴사는 마무리되었다.

동생이 얼마 전 회사의 연락을 받고 퇴직금 계좌를 개설했는데, 퇴직금 확인은 아직 해보지 않았다.

문제가 없길 바란다.  이상 회사 사람들과 연락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엄마 생신 선물로 그동안 쓰셨던 시들을 책으로 묶었다.

혼자 쓰시고 간직해오셨던 시만 50편이 넘어, 생각보다 작업시간이 오래 걸렸다.

각각의 시에는 계절별 단상이, 꽃에 대한 찬사가, 노화에 대한 순응 주로 담겨 있었다.

단순히 시가 좋다는 마음만으로는 이렇게까지 써내지 못할 것 같다.

엄마에게 시는 일상생활의 고단함, 고됨 중에 탈출구 같은 역할이었을 것이다.


시집 표지 디자인





자신의 어머님(외할머니)을 떠올리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입장은 참 오묘하다.

내가 엄마를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똑같이 엄마도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느끼실까.

그렇다면,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엄마가 혼자 시를 기록하셨던 사이트 닉네임이 '달보드레(약간 달큼하다)'였다.


앞으로는 달보드레한 여생만을 즐기시길 바라는 딸의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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