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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영 Sep 04. 2021

꿈자리, 직감을 믿나요?

세 번째 시, 가을 단상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나, 직감 통해 예측할  있을까?

엄마와 나눈 꿈 이야기들 중, 기억나는 사건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14년도 초에 엄마가 물에 빠져 가라앉는 꿈을 꾼 것. 그 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아는 사람의 어머님께서도 그 해 잊지 못할 꿈을 꾸시곤, 올 해는 나라에 큰일이 나거나, 장사가 대박이 나거나 할 것 같다 말씀하셨다 한다.

두 번째는, 내가 아는 사람의 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다 차가 엎어진 날이 있었는데(다른 차량과 사고가 난 것은 아니고, 엄마가 무슨 일 없냐고 갑자기 연락을 한 것. 엄마가 살짝 잠에 들었는데, 안 좋은 꿈을 꿨다고 한다. 나는 소름이 돋은 채로, 사실 지금 일이 벌어져 상황 정리 중이다 답했다.


 언제 한 번 아빠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아빠가 어릴 적, 다리를 다친 아빠를 업고 집으로 돌아가며, 앞으로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장남인 네가 잘 챙겨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 그날 아빠는 할아버지가 계실 날이 오래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한다.


 요새 유독 아빠의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빠가 느꼈다는 그 느낌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내가 어떻게 되던,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되던, 무언가 우리 가족에게 큰 이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긴긴 여름휴가 동안 재회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휴가가 끝나고 나는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부모님을 떠올리는 자녀처럼.

요새 이상하게 이런 생각이 들어 우울한 느낌이 들더라, 여름밤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친구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다 손발이 떨리더라 그리고 네가 했던 그 이야기가 떠오르더라 말하기도 했다.

소설의 복선처럼, 나도 내 인생에 큰일이 있기 전 신호를 미리 받고 있었나 보다.


 머지않아 먹음직스러운 새하얀 무와 새빨간 고추가 동동 띄워져 있는 동치미 사진을 가족 톡방에 띄웠던 바로 그다음 날, 엄마가 쓰러졌다.

내 직감은 불완전했는지, 대사건이 있기 전날은 오히려 느낌이 없었다.

크게 했던 걱정과 달리 엄마는 빠른 회복으로 다음 주 퇴원 예정이지만,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고 한 번 쓰러진 엄마의 여생이 길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다음에 해야지, 다음에 해야지, 미루기만 하던 엄마를 위한 일들을 이제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생신이 머지않았다.

이번 주까지는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드릴 엄마의 시 정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오늘 발견하고 정리한 시는 마침 엄마가 18년도 이맘때쯤 지은 시다.

요새 날이 많이 선선해졌다. 비가 한바탕 내리더니, 하늘은 더 높아졌다.

18년도의 엄마도 그런 가을을 맞이하며, 땅 위 생명을 노래 부르고 있다.





가을 단상


고샅길 길섶에는

닭벼슬 닮은 맨드라미의 시붉은

정열이 하늘을 찌르고


낮은 지붕 위에는

설익은 호박이 샛노란 꿈을 꾸며

툰실히 익어가네


고샅길 담장 아래에는

여린 채송화의 주홍빛 연서가

행인을 붙잡고


오롱조롱 휘늘어진 풋대추가

담장 밖을 뛰어나와

처서 지난 햇살에 선탠을 하고 있네


공중을 맴도는 고추잠자리 떼들

정착하지 못하는 내 상념처럼

붉게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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