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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Oct 31. 2023

핼러윈에 진심인 나라

아이의,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핼러윈을 준비하는 자세

  여름부터였다, 미국에서 핼러윈을 준비한다는 것은.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는 매장에 슬슬 핼러윈 용품이 진열대를 차지하더니 9월엔 온통 호박, 해골, 마녀, 유령등 온갖 으스스한 것들이 어딜 가나 잠식하고 있었다. 서서히 핼러윈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날들 있었다. 10월이 되니 점점 집마다 핼러윈 데코를 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핼러윈이 내일이다.  

  사실 핼러윈을 딱히 챙기지 않았다. 한국에서 있을 땐, 여느 나이 많은 어르신들처럼, 나 어릴 때부터 있었던 놀이문화가 아니기에 낯설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고유축제, 명절 등 챙겨야 할 것도 많은 워킹맘으로서 굳이 그것까지 챙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뭔가 일상에서 해야 하는 의무(?)가 늘어난 것만 같아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그게 되지 않는다. 이미 학교에서부터 핼러윈 맞이 이벤트가 메일로 날아온다. 호박으로 좋아하는 책 캐릭터 꾸미기, 핼러윈 빙고행사, 제일 좋아하는 책 캐릭터 의상으로 핼러윈 퍼레이드 등 거부해 왔던 핼러윈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몸풀기로 우선 호박농장에 들러서 가볍게 이 계절의 정취를 느끼며, 호박으로 예열을 시작한 핼러윈 분위기는 의상과 소품을 사고, 집을 꾸미면서 정점을 달려간다.

학교에서 하는 핼러윈 맞이 호박 꾸미기 행사. 애들숙제지만, 내 지분이 꽤 크다.

  특히 그냥 동네 산책만 해도 하루가 집마다 다양하게 늘어나는 핼러윈 데코들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귀여워서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부터 밤에 언뜻 보면 소리를 꽥 지를 것 같은 조형물들까지 컨셉도 가지각색이다. 아이들은 다른 집 핼러윈 데코를 보고 자꾸 벤치마킹을 하면서, 이것저것 사고 싶다고 아우성 댄다. 내후년 가을엔 미국에 없을걸 생각하면 생필품 외에는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지만, 아이들 성화에 아예 안 할 수 없어서 미국의 다이소 같은 달러트리의 1달러짜리 소품들을 담아와서 우리 집도 조촐하게 꾸며본다.

다들 핼러윈 맞이 집꾸미기에 진지하다.

  미국에서 핼러윈을 준비하며 드는 생각은, 미국의 다른 기념일들도 그러하듯 나이에 상관없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아이처럼 즐기기 위한 핑곗거리가 아닌가 싶다. 평소라면 고르지 않을 옷을 입고, 내 집을 괴상망측하게 꾸미며, 각 집에 문을 두드리며 간식거리를 받아가는 재미있는 놀이. 처음에 탐탁지 않았던 나도, 핼러윈을 대하는 여기 현지인들의 표정을 보면서 마음이 점점 펴진다.

  특히 핼러윈 전 주말에 곳곳에서 펼쳐진 행사를 보며 생각이 확 바뀌었다. 다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왔지만, 막상 표정에는 그 어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있는 듯하다. 나 역시 아이들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하며, 좋아하는 캐릭터를 따라 옷을 입어본다. 그리고 무슨 용기가 났는지, 사람들 앞에 아이들과 의상 자랑도 해본다. 일상이란 직선에서 불쑥 튀어나온 못처럼, 낯선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그렇게 핼러윈이 내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지루한 일상에 작은 쉼표를 선물한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공식적인 어린이날이 없다.  아이들이 미국이  아쉬워하며 뭔가 불공평하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이번 핼러윈을 보내며 그런 말이 쏙 들어갈 듯싶다. 시종일관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가족이 모여 들뜬 기분으로 뭔가 준비하고 함께 즐기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을 느낀다.

   이번 기회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봄에는 딱 맞았던 아이 잠옷이 칠부가 되어버렸다. 부쩍 짧아진 소매만큼, 아이가 나를 찾을 시간이 성큼 줄어듬을 느낀다. 여전히 주말이면 아이들의 난리법석을 멈추는 방법으로 복식 호통과 함께 뱀 지나가는 소리 '스읍'으로 째려보기를 시전 하지만, 잠든 아들의 긴 속눈썹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미래의 어느 날, 이렇게 아이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소소한 장난에 진심이었던 지금을 그리워할 것을 상상하며 그렇게 소중한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덧.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나도 핼러윈 맞이 의상을 준비해 본다. 지난봄에 영어학원에 입고 갔던 옷이었는데, 캐릭터 '웬즈데이'가 연상된단 말이 생각나서 마침 핼러윈에 입어본다. 다 큰 어른인 나까지 의상을 돈 주고 사기엔 죄책감(?)이 들어서, 평상복인듯한 옷에 알듯 말듯 화장을 하였건만, 아들은 성이차지 않나 보다. 핼러윈 당일에, 로션도 스스로 안 바르는 아들이 직접 날 분장(?) 해주겠다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고, 씩 보조개를 보인다. (끔찍한 분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들이 흡족해할 만한 의상을 사야 하나 고민이 된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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