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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Aug 26. 2023

특히 미국에서 안 가면 제일 좋은 곳

코로나 19에 걸린 어머님 아들 병원 데리고 가기  

  학교에서 둘째 아들이 식사거부와 울음시전으로 관심학생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영어로, 그것도 전화로 접하느라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어머님 아들에게서도 전화가 오기에 가뿐히 무시(?)하고 학교에서 온 전화를 성실히 끊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잠시 제쳐뒀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이 학교문제에 대해서 나름 선방(?)했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죽을 끓여달라'는 곱지 않은 발언을 한다.   

  사실 내가 요 근래 목이 자꾸 잠기고 아프고 미열까지 있어서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런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고작 레몬생강차를 만들어 마시는 것이 이었다) 아파도 나에게는 주어진 엄마의 역할이 있기에,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쉼이 없다. 저녁에 아이들 목욕 후 자기 전 책 읽기까지 하고 나면 그대로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 아침이면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어제는 상태가 더 심해져서 아침에도 아이들 겨우 학교에 보내고 침대에 몸져누워있었다.  

다른 요리는 안해도 생강레몬차는 꾸준히 만들어먹는다. 귀찮기도 한데 먹으면 효과가 좋다.

  그에 비해 어머님 아들은 자기 몸이 안 좋으면 철저하게 휴식모드로 들어가며 원래도 집안에서 가장의 역할과 요리, 주 3회 쓰레기 버리기 외에는 육아 및 가사에 있어서 나를 철저히 믿는 분이다. 그런데 어제는 칭얼거림(?)의 정도가 심상치 않았다. 속이 안 좋고 오한이 느껴진다며 약과 이불 등 돌봄을 요구하는 어머님 아들에게 (나도 아프지만) 간호를 제공해 드렸다. 그러더니 그다음 날 지인의 전화를 받더니 멀쩡한 목소리로 곧장 가겠다며 외출을 하신다. 당연히 괜찮아진 거라고 생각하며 안심이 되는 동시에, 아파 누워있는지 마누라에게 '괜찮냐'라고 묻지도 않고 휑 나가버리는 남편이 익숙하면서도 섭섭하기도 했다.

  남의 아픔엔 발 벗고 나서 친절하지만, 나의 아픔엔 자가치유의 힘을 믿는 남편 때문에 내가 아플 땐 더욱더 화가 난다. 하여 기본값이 분노인 상태인데, 다른 사람 도와주러 외출해 놓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해서 아픈 마누라에게는 죽을 끓여놓으라니.(이런$%@$%@^@$^@^. 하하하)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니까(현실적으로 남편 덕분에 비자가 나와서 미국에 사는 거니까. 하하하) 급하게 병원을 알아본다. 어제 마스크 쓰고 걸어가는 지인을 굳이 굳이 또 가는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고 온 게 맘에 걸린다며, 그분이 코로나 걸린 게 아닌가 하는 말을 남편이 흘린 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길 걸어가는 지인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으면, 집에서 수시로 뛰어다니는 장모님 딸도 신경 써라. 이런 #$@#@@%ㅃ%!#@%!%. 하하하)

  아직 집에 귀가하지 않은 어머님 아들이 오기 전까지 준비에 부산하다. 우선 현관 앞에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를 둬서 오자마자 검사부터 해본다. 코로나 양성일 경우를 대비하여 병원을 급하게 알아본다. 미국은 병원을 무조건 예약해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예약 안 하고 가도 된다는 곳 중 CVS minute clinic이란 곳에 가보기로 한다. 집에 오자마자 열을 재보니 40도씨가 넘었고, 당연히 코로나 키트에는 시뻘건 줄이 선명하게 두줄이 새겨져 있었다. (참고로 한 번도 코로나에 걸려보지 않은 남편은 두줄이 신기한지 매우 빨갛다며,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내 눈빛으로 남편 얼굴을 뚫을 뻔했다. 하하하)

이 붉은색 두 줄이 그리 신기하더냐. 나도 아픈데 어머님 아들을 간호해야 하는 내 속이 시뻘겋게 타들어간다.  하하하. 지퍼백에 넣어 이것도 병원에 가져간다.

  계획대로 돼 가는 듯싶었는데, 인터넷의 정보라는 게 실제와 괴리가 언제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막상 갔는데 당일 진료는 예약이 다 차서 안되고, 내일 오전진료만 가능하다는 키오스크의 차가운 화면만 뚫어지라 응시해 본다. 타이레놀만 급하게 사서 돌아와서는 고객님께서 요청하신 죽을 끓여놓고, 나는 아이들 오후 일정을 책임질 매니저로 돌아갔다. 마침 수영강습이 있었던 날이라 애들 샤워까지 마쳐서 돌아왔고, 어머님 아들이 생각나 열을 재보니 38도로 떨어졌다. 애들 재우고 밀린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나니 내 체력도 한계에 다 달았다. 식어버린 생강레몬차를 냉수처럼 벌컥벌컥 마시고, 한여름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잠에 든다.

안 그래도 MBTI 파워 J형인 나는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를 상상하며 표로 깔끔하게 증상과 복용약을 정리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좀 괜찮아졌다며, 병원 안 가도 될 것 같은 (헛) 소리를 해대길래, (잔말 말고) 따라오라고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병원 의사 선생님과 나눠야 할 대화를 영어로 예습(?)해야 했다. 그간의 투병상황을 A4용지에 날짜별 증상 및  복용약을 표로 그려 넣었다. 그리고 추가로 물어봐야 할 문장을 챗 GPT님의 힘을 빌려 완성하고, 추가적으로 어마무시하다는 미국 병원비를 대비하여 한국 여행자 보험에 제출해야 할 서류도 영어로 써서 포스트잇에 적어간다.

현지에서 산 타이레놀과 한국에서 들고 온 약을 교차 복용한 것을 말하려고 실물도 가져간다. 정산을 위해 관련서류 발급을 위한 메모까지 준비하면 병원 가기 준비 완료.

   병원에서는 65세 이상 등 코로나 고위험자가 아니기 때문에 따로 코로나 치료는 없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 검사결과 양성이면 우리가 보험이 없기 때문에, 주정부에서 검사비용은 지원을 해준다고 해서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한번 병원에서 했다. 목이 심하게 아픈 경우는 코로나 증상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있는 경우라면 strep throat(인두염) 검사를 권장한다고 해서 검사도 했다. (코로나와 달리 인두염의 경우 항생제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코로나 검사만 양성으로 나왔고, 처방전 없이 지금 복용하고 있는 타이레놀을 먹고 푹 쉬고 5일 동안 외출을 삼가라는 말만 덧붙여주셨다.

   의사선생님이 별 이상 없, 특별한 약처방 없이 기존에 먹던 타이레놀만 먹어도 된다는 말에, 본인 말대로 안 와도 될뻔한 거 맞지 않냐며 턱이 점점 하늘을 향해가는 어머님 아드님이셨다. 그래서 검사결과 이상이 없고 의사가 괜찮다고 하니까 다행인거지 만약에 인두염이었음 애들에게 전염성도 높고 반드시 항생제 처방받아야 하는 거라고, 논리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병원비도 인두염 검사비용으로 45달러만 나와서 결과적으론 무난한 미국 의료기관병원체험기였다.

    코로나의 발병원인이야 워낙 다양하니까 알 수 없지만, 가장 합리적 의심으로 굳이 지나가는 마스크 쓴 지인을 차로 목적지까지 태워다 줘가지고 이 사건의 시발점을 만든 것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특히나 같이 사는 동거인이 아픈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지인을 도우러 나갔다가 반시체가 되어 돌아온 어머님 아들을 나 역시 똑같이, 집안의 가구처럼 여기고 싶었었다. 그래도 아픈 사람이 딱해서 안 되는 영어에 차트까지 그려가며 통역사 자처하 병원 에 데려가서 별 이상 없다는 이야기 들으니까, 거봐 안 와도 되는 거였네, 라고 말하는 어머님 아들을 어디서부터 알려줘야 한단 말인가. 허허허

  우선 단순하게 알려줬다. 사람이 아프면 괜찮냐고 물어보라고, "괜찮아?" 5회를 시켰다. 그리고 다 죽어가던 반시체 살려놨으니 '생명의 은인'이라고 부르라고 알려줬다.(이건 안 따라 하더라. 쳇) 또한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서로 아플 땐 상부상조, 간호 품앗이가 되어야 하는 거라고 명확히 알려주었다. 덧붙여서 내가 다음에 아프면 본인 아플 때 한 것처럼 똑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이건 한인병원을 알아놓겠다며 꿍시렁 댔다.)

  매우 심각하게 안 아픈 게 다행이다.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괘씸하다. 아마 내가 코로나 19에 걸렸을 때 기억이 소환돼서 그런 거 같다. 1년 전 내가 코로나 19에 걸렸을 때 우리 둘째도 같이 함께 코로나 19 양성이었는데, 음성이었던 내 첫째 아들의 추가감염 위험을 들먹이며  어머님아들은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끼리 시댁에서 머무르고 환자인 나에게 또 다른 환자인 둘째 아들까지 넘겨놓고 피신해 버렸다. 물론 음식도 배달해 주는 등 생사여부를 확인하긴 했지만,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와중에 아픈 아이와 둘만 집에 있는 것은 참으로 가혹하였다. 그래놓고는 본인이 코로나 19에 걸리니, 본인의 치료에 매우 전념하고 병원에 가는 것도 내 손길이 하나하나 닿아야 하는 이 현실이 어쩐지 분하고 억울하다. 쳇.

  사는 건 Give and take 란 말은 맞지만, 그게 꼭 1:1로 내가 준 누군가에게 그대로 받는 건 아니라고 한다. 돌아보면 어릴 적 아팠을 때 외할머니는 밤새 내 옆에서 물수건을 갈아주시며 간호해 주셨다. 하지만 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요양병원에 계실 때 몇 번 찾아가지 못했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어머님 아들을 돌보는 것은 비록 그는 나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고 간호 상부상조를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조금은 덜 억울하다. 내 안에 타인이 주었던 친절이 있기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할머니의 거칠지만 따뜻했던 손길이 그리운 날이다.     


덧.

내 아들의 학교생활 상담에 대비한 영어공부에 이어, 이제는 어머님 아들까지 병원진료에 대비한 영어공부를 시키는 이 환장의 콜라보 조합. 요새 영어공부가 약간 느슨한 것은 맞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이벤트를 만들어서까지 영어 리스닝과 스피킹 연습을 해줄 필요까지는 없는데 말이지. 하하하

고맙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내 영어공부 안 챙겨줘도 된다고 거듭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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