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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Aug 25. 2023

누가 이 스쿨버스의 출발을 막는가

눈에 띄는 내 아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뭐든 여러번하면 처음의 강렬한 감정은 다소 사그라든다. 나에게는 그랬고, 내 아들에게는 안그랬나보다. 첫 등교날 스쿨버스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승차거부를 하는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내 아들이었다. 그동안 어린이집, 여름성경학교, 썸머브릿지 프로그램, 썸머캠프 등등 2달반동안 새로운 곳에 가고 적응하는 훈련을 꽤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첫날은 목놓아 우는 것으로 시작을 하는 아이의 강렬한 감정에 감탄한다.

  미국은 유치원(Kindergarten)부터 공교육에서 담당하여, 초등학교 내 유치원을 다니게 되고 0학년으로 분류된다. 내돈내돌봄인 어린이집(Preshool)을 마치고 당당히 미국의 교육혜택을 드디어 맛보게 되는 부모의 감격스런 맘과 달리, 아이는 마지막 반항의 울음으로 시동걸고 스쿨버스 계단으로 살포시 안아 올려놓는 엄마에게 공중발차기를 시전하기에 이르렀다. 다행스럽게(?) 기사님을 제외한 어른은 스쿨버스에 탈 수 없기에 난 더이상 스쿨버스에 타는 것을 도와줄 수가 없었고, 고학년인 교통도우미 누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버스에 탔다. 스쿨버스에 타고 내릴때 유치원생은 무조건 먼저 타고 먼저 내리는 규칙이 있어 우리 아이가 맨 앞에서 한참 실랑이를 버린탓에, 안그래도 첫날이라 늦은 스쿨버스는 더욱 지체되었다. 차에 타서도 계속 우는 아이를 창문으로 계속 바라본다. 혹시라도 울음을 그칠까 싶어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손키스, 하트, 웃긴표정 등등 1인 쌩쇼를 해보지만, 우리아이는 반응이 없고 다른 아이들만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한참 후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뒤늦게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내 발은 빠르고 가볍게 집으로 달려가지만, 마음은 매우 느리고 무겁다.

   원래는 아침마다 내가 좋아하는 아쿠아로빅을 하러 헬스장에 꼭 가는데, 그날은 건너뛰었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때,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두아들 덕에 다수의 경험으로 알게된 것이 있는데 아들이 내 눈앞에 안보인다고 해서 끝난게 아니라는 것이다. 두번째 통과의례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관으로부터 '전화연락'이다.

   아니나 다를까 1시정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울음을 그치는가 싶더니만 자기 얼굴 그리는 시간에 한번더 울다가 겨우 그쳤는데, 이제는 점심시간에 밥을 안먹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동안의 경험치로 여유있게 웃으며 대처한다.

  "아, 선생님 오늘 첫날이라 그럴거에요. 미국와서 어린이집을 6개월 정도 다녔는데 간식을 먹게된건 마지막 2주정도였고요, 말도 한마디도 안했고 화장실도 한번도 안갔어요. 몇주전에 썸머캠프에서도 첫날은 엄청울고 밥도 안먹었는데 끝날때는 또 잘 마쳐서 상도 받았어요. 아마 첫날이라 긴장해서 그런거 같아요. 집에 오면 밥 일찍 먹여야 겠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한껏 여유있게 웃으며 말했지만, 전화를 끊고부터는 또 멍하게 앉아있게 된다. 담임선생님이 보내주신 메일에 오늘자 단체사진 속 내 아이는 두눈이 팅팅 부어 눈감고 찍은 것 같은 모습에 한참을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며 확대해봐도 아이의 눈은 찾을 수 없으며, 아이의 입은 나 매우 슬퍼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멀리서 바라보겠다, 한발짝 떨어져서 응원하겠다 했지만, 막상 그게 잘 되지 않는게 또 나란 엄마인가보다. 하교 스쿨버스가 도착하기 15분전부터 정류장에서 아이를 기다리는데, 첫번째로 아이가 나오는데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얼굴에 또 왈칵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는다. 몇시간 전으로 추정되는 말라붙은 하얀 눈물 자국이 아이의 작은 얼굴에 선명히 그려져 있기때문이었다. 품에 꼭 안아서  용감하게 학교 잘 다녀온 것을 칭찬해주며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아이가 많이 우는 것은 날 닮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겠다. 뭔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고,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성격을 닮은 둘째를 볼때마다 이 아이가 받을 스트레스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대신 루틴을 파악하고 어느정도 적응만하면 누구보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할 것임도 짐작할 수 있다.

   새가 알을 깨는 고통을 거쳐야 새로운 세상을 만나듯, 지금은 학교라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성장통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병아리가 스스로 안에서 알을 깨야하지만, 겉에서 부리로 톡톡 실금 내주는 어미닭처럼 내가 도와줄 수 있는것이라곤 그런 아이를 격려해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며, 이제까지 아이가 스스로 이뤄온 일들을 상기시켜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이 자신을 소개하는 물건 4가지를 가져오라는 숙제에 아이가 지난 봄에 축구클럽에서 맹 활약했던 기억을 되살려줄 축구 티셔츠를 챙겨주는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다. 나머지는 또 아이를 믿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여기 미국학교에 Family Liaison(패밀리 리아종)이라고 선생님이 계시는데 학생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학생은 물론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주신다. 마침 또 한국분이셔서 영어로 말할때 내 생각을 반에 반으로 접어서 급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과 달리, 한국어로 여유있게 내 상황을 말할 수 있는게 참 좋다. 둘째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패밀리 리아종 선생님께 아이에 대해 여러가지 여쭤보셨고, 한국어로 직접 둘째아들에게 격려와 위로도 해주셨다고 한다. 지난 학기에 첫째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상담때도 같이 참여해주셔서 구멍난 내 영어실력을 매워주셨다. 여러모로 우리가족에게는 고마운 선생님이시다.

  아이가 자라는 일은 부모만, 또는 아이 혼자만 감당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여러모로 신경써주시고 격려해주시는 학교의 다양한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동시에 부족한 내가 혼자 아이를 돌보는게 아니라, 누군가 나와 함께 내 아이를 키우는 일 하고 있다는게 고마울 따름이다. 여러모로 감사한게 많은 요즘이다. (제일 감사한건, 아이들의 무사등교로 내 자유시간이 생기는게 제일 감사하다. 기-승-전-내 자유시간. 하하하)   


덧.

  어제 축구클럽에서 엄마들끼리 학교첫날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을 공유하고 있었다. 스쿨버스 앞에서 대성통곡한 둘째 덕분에(?) 내가 가장 임팩트가 컸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모두 동의하는 듯 하다가 다른 엄마가 이렇게 덧붙이다.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몰라요. 저희 아이는 첫날은 놀다오니까 학교 재밌다고 하는데 둘째, 셋째날이 되면 슬슬 정규과정을 들어가니까 학교가기 싫다고 떼써요. 하하하"

  듣고보니 일리있는 말이었다. 첫날 강렬한 한방을 날렸던 둘째는, 이제 둘째날이 되자 울지 않고 버스에 타고 더 이상 울지 않고 잘 놀다 돌아온다. 오늘 아침엔 본인이 좋아하는 과자간식을 가방에 쏙 넣고 간식시간을 떠올리는건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추가.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둘째, 셋째날은 별탈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어제 다시 오후에 학교에서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엔 상담선생님께 영어로 온 전화였는데 수업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울며 거부하고, 식사를 안하여 담임선생님은 물론 학생식당 이모님(참고로 한국분들이시다)들까지 걱정을 선사하는 관심학생으로 등극했다는 소식이었다. 짧은 영어로 방대한 아이의 그간 미국생활 패턴(?)을 공유하며 시간이 좀 걸릴것이며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겠다고 말했다. (잘 전달된거겠지? 하하하) 막상 집에 돌아온 아들은 배가 안고파서 안먹은거라면서 쿨하다.

  어제가 학교에서 오는 마지막 전화이기를 바라지만, 엄마가 혹여나 심심할까봐 할일을 만들어주는 둘째아드님을 더이상 방심하지 않고, 학교선생님께 또 전화올것에 대비하여 질의응답 리스트를 미리 영어로 작성해둬야겠다.

   아들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건강'에는 학교에서 밥잘먹는것도 포함이란다.)그리고 엄마의 생활밀착 영어공부 이렇게까지 안도와줘도 되는거 알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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