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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Oct 09. 2024

프롤로그 : 36일간 미국여행을 아이 둘과 차로 하면?

'미국'과 '여행'까진 좋은데, '자동차'와 '아이'가 더해지면...

   좋은 기회였다. 미국에서 2년 동안 아이와 사는 것은 꿈에 그리던 일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으니 약 2달 반의 긴 여름방학을 채우는 일이었다. 첫 번째 여름방학을 집에서만 보내고 깨달았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여름마저 집에서 버티기엔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너무 가혹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살고 있는 미국 동부에서 한참 떨어진 미국 서부를 여행하기로. 막연한 계획일 땐 몰랐는데 구체적 날짜가 첨부된 스케줄을 세우다 보니 점점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은 여행 간다고 하면 차로 5시간 정도까지는 갈만한 거리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 여행지까지는 하루에 차로 갈만한 거리를 넘기에, 처음엔 당연히 비행기를 타고 가서 차를 렌트한 후 호텔에서 묵으며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대충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멍해졌다. 처음부터 무급여 육아휴직자인 나, 올 여름부터 저급여 육아휴직자로 변신한 남편 이슈로 주머니 사정은 궁핍했기 때문이다.

  포기할까 싶었는데, 가장 큰 변수가 아이들이었다. 미국에 단기로 나온 아이들에게 "여름 방학=장기 여행"으로 자리 잡아서 아이들끼리 어디를 여행 가는지는 이미 다 공유되고 공된 상태였다. 우리 아이만 아무 데도 안 가면 이상해지는(?), 상향평준화된 여행문화가 나를 재촉했다. 그래서 여행은 하되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비행기'보다 저렴한 '자동차'로, '호텔'은 지양하고 '모텔'과 '캠핑'을 선택하고 웬만한 건 다 자급자족하겠다는 마음으로 전기밥솥과 생쌀부터 챙겼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6인승 SUB가 트렁크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 4명의 좌석만 겨우 빼고 짐으로 빼곡했다. 운송수단의 변화에 따른 순수 이동시간 증가로 여행일정도 늘어났고, 그에 따른 날짜별 세부 계획서도 30장을 훌쩍 넘겼다.

[ 한달간 살림살이를 자동차에 테트리스하 듯 요리조리 구겨 넣는 것만 해도 한참 걸렸다. 여행욕구 감소에 효과적인 사진.  ]

 

  '미국'과 '여행'까진 좋았다. 여기에 '자동차'까지도 괜찮았는데, '아이 둘'과 '한 달'이 더해지는 순간 가벼움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반감되며 묵직한 숙제처럼 다가왔다. 사실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이자, 꿈에 그리던 시간들임은 분명했다. 미국을 한 달 넘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여행하는데 무슨 앓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마치 뷔페에 산해진미가 다 있지만, 그게 한데 모여 섞여 있을 때는 자칫 뭘 먹었는지 기억에 남지도 않고 음식 본연의 맛을 즐기기 어려운 구조와 비슷했다. '자동차로 미국 한 달간 여행'에 '(눈만 뜨면 싸우는 형제)아이 둘'과 '(쉬지 않고  다투는)우리 부부' 조합은 예상외의 행복과 고난을 동시에 선물했다.

  추억이란 언제나 시간이란 뽀얀 필터를 거쳐 아름답게 기억되기에 여행을 마친 지 2달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다시 안 올 소중한 시간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세포에 새겨진 고생(?)의 흔적은 내 안에 선명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초코와 빵 덕후인 내가 누텔라와 식빵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매번 차에서 식빵에 누텔라를 듬뿍 올려 한 끼를 때우던 게 질려서이다. 그렇게 여행을 생각하면 양가적 감정이 든다. 굳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크냐고 묻는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는 여행방지 예방주사를 맞은 듯이 당분간은 여행 가고 싶은 병이 안 걸릴 듯하다.

 

  객관적인 기억이 주관적인 추억이 되기 전에, 길었던 여행을 글로 남겨놓으려 한다. 고생했던 기억에 압도당해서 좋았던 부분까지 잊지 않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좋아서 그 과정까지 미화되는 것까지는 방지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덧붙여서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여행을 고려 중이라면 따끈따끈한 날것의 후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굳이 안 해도 된다는 수줍은 결론도 함께 덧붙입니다. 하하하) 동시에 여행이 여의치 못해 막연히 부러워하실 만한 분들에게는, 멀리 서는 희극이지만 가까이서는 비극인 일상을 비춰드리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조심스레 글을 쓴다.   


  이 여행의 유일한 목표는 '무사귀환'이었다. 짠내 나면서도 달달하고, 찌질하면서도 넉넉했던 "아이와 함께한 36일간의 미국 로드트립"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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