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길 : 하루에 약 8시간씩 차 타고 이동하기
"엄마, 얼마나 남았어?"
여행 중 가장 처음 듣고 제일 많이 들었던 아이들의 질문이다. 특히 초반에 3일은 하루에 평균 8시간 이동으로 일과의 대부분이 차량탑승이었다. 에너지가 넘쳐나는 아이들과 장거리 장기여행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 찾기'이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도 평소 동네에서 하는 땅파기, 개미관찰 등을 하는 애들이기에 멀리 가야 할 이유를 꼭 부여해줘야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주니어 레인저(Junior ranger)'였다. 이는 미국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각 장소마다 자연 및 역사 관련 주니어 레인저 책자를 받아 활동을 완료하면 주니어 레인지 배지(또는 패치)를 받는 프로그램이다. 장시간 차 타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이유, 왜 여행을 하는 것인지에 대답, 엄마의 지시에 성실히 따랐을 때 보상 등 '주니어 레인지 배지'는 만능이었다. 덕분에 지루한 차량 이동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었다. 최소 1일 1 주니어 레인지 뱃지 획득을 목표로 하고, 동선 상 있는 주니어 레인지를 주로 했다. 3일간 이동 중에 총 4군데를 둘러보았는데 "Lincoln Boyhood National Meomorial"이 가장 인상 깊었다. 링컨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보낸 인디애나주 농장에서 그의 삶과 유산을 기리는 역사적 기념지로서, 보통 미국 역사유적지는 한국인인 우리에게 좀 낯선데 비해서 그나마 친숙한 인물이 조경 등도 잘 돼있어서 산책하기도 좋았다.
https://www.nps.gov/kids/become-a-junior-ranger.htm
아이들에게 주니어 레인저가 중요했다면, 나는 먹거리와 잠자리를 신경 써야 했다. 타이트한 주머니 사정으로 긴축재정을 해야 했지만, 예외적으로 여행의 처음과 끝은 호텔에 묵기로 했다. 그 외에는 저렴한 숙소 또는 캠핑장을 이용하고 식사도 가능하면 직접 밥을 해 먹었다. 그렇게 집이 아닌 곳에서 먹고 자고 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식사도 사 먹을 것을 예상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장거리 이동 후 늦게 숙소에 도착했기에 다시 식당을 찾아 나서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기밥솥, 정수기, 커피포트를 담은 가방과 아이스 박스에 음식을 담아서 방에서 식사를 조촐하게 해결했다. 우리에겐 햇반도 사치품이었다. 쌀로 밥을 지어먹는 게 더 싸기도 했지만, 햇반을 가득 사서 차에 싣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식사 담당, 남편은 운전 담당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이 시작되었다.
첫째 날은 루이빌, 둘째 날은 세인트 루이스, 셋째 날은 캔자스 시티를 잠시 보는 것으로 했다. 우리가 사는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들로서 일부러 이것만 보러 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지나가는 길에 시간을 내서 잠시 구경하고 다시 차에 타는 것을 반복했기에 덜 지루했다. 루이빌에서는 대형 방망이, 세인트 루이스에서는 게이트웨이 아치스, 캔자스 시티에서는 넬슨-앳킨슨 미술관 앞 배드민턴공 조각 앞에서 각각 인증샷을 남겼다. 이 모든 게 '거대하다'란 특징이 있는데 사진보다 실제로 봤을 때 그 크기에 압도되었다. 요즘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간접체험이 가능하지만, 고개를 들어 한참 올려다봐야 그 끝이 보일 만큼 거대한 것들은 직접 보니 평범한 것도 색달라 보였다. 야구방망이, 배드민턴 공 등 익숙한 것들이지만, 그 크기를 엄청나게 키우니 낯설게 다가왔다. 뭐든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 시대에 굳이 힘들게 시간과 비용을 들어 여행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가 세상을 보듯이, 평범한 풍경조차 사진을 찍고 감탄을 하며 한번 더 눈길을 보내는 것, 그렇게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사실 차량탑승이 주요 일과였던 날들이었기에, 짧게 머무른 장소들에서 애써 의미를 찾아봤다. 하하하)
앞에 일정이 어린이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중간에 '버드와이저 브루어리 투어'는 '으른'을 위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버드와이저 브루어리 투어 설명을 영어로 가이드가 해주기에 영어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합류시켰다. 투어 후 마지막에는 직접 고른 맥주를 한잔씩 주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레모네이드 등 음료를 줘서 사실상 아이들도 만족했다. 투어가 끝나고 브루어리 내 식당에서 받은 음료와 함께 햄버거 등 간단한 식사도 가능했고,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았다.(어른들이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순간, 아이들이 귀찮게 하지 않을 장소라는 이야기를 길게 쓰고 있습니다. 하하하) 입장료가 있고 미리 예약을 해야 했지만, 들인 수고로움에 비해서 만족도가 높은 장소였다.
그렇게 여행은 순조롭게 시작되었고, 이때까진 몰랐었다. 여행의 참맛은 이다음 날 캠핑장에서 캠핑 후부터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차만 타면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물음, "엄마, 얼마 남았어?"가 있었다면, 이때부터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여행, 얼마나 남았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