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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Oct 12. 2024

어서 와, 이건 처음이지?

낯선 광경 앞에 감탄, 나의 좁은 세계를 깨달으며 겸손해진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초반 3일을  8시간 정도 차를 타고나니, 다음부터는 차에서 있는 3시간쯤은 가볍게 버티며 오히려 차에서 내릴 때 벌써?라는 말을 붙이기까지 이르렀다. 동시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새로운 환경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기존의 초심을 잃기도 했다. 여행 컨셉이 아이들을 위한 '주니어 레인저 배지 모으기'였는데, 이를 위협하는 게 등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맥주 브루어리 투어'였다.

   

원래는 쿠어스(Coors) 부루어리를 투어 하려 했으나 이미 마감되어 차선책으로 급하게 찾은 게 '블루문(Blue moon) 브루어리'였다. 계획표 상 근처에 주니어 레인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뒀는데 이를 제치고 어른을 위한 브루어리 투어 2탄에 돌입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 실망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맥주 시음기회가 상대적으로 전에 방문했던 버드와이저 브루어리에 비해서 빈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특정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의 역사와 과정이 궁금한 게 아니라 충분한 양의 맥주를 투어에서 제공되느냐가 주요 포인트였던 것이다. 뒤늦게 깨달은 진심과 함께 그 전날 갔던 브루어리가 제공하는 혜택과  비교되면서 만족도가 급감했다. 경험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교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만족과 실망들. 하나만 갔더라면 몰랐을 것들이었다. 다양한 경험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진리(?)를 깨달았고,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란 컨셉을 되찾고 흔들리지 않는 계기였다. (이렇게 포장했지만, 실상은 한 번만 더 부르어리 갔다가는 두 아이의 거센 항의와 질책에 여행의 중단에 이를 지경까지 갔다. 맥주는 그냥 마트에서 사 먹는 걸로. 하하하)   


  여행 넷째 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레드락 공원(Red Rocks Park and Amphitheatre)'였다. 이곳은 수백만 년 전부터 만들어진 붉은 사암 사이에 위치한 야외 공연장이었다. 자연이 만든 붉은 바위들이 위에 인간이 건축한 야외 공연장은 근사했다. 일정상 공연은 볼 수 없었지만 한참 밑에서 음향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잠시 악기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는데 내 심장으로 바로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잠깐 들었지만 기대가 되는 공연이었다. 기회가 된다면(아마 다음생이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캠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캠핑장에 오니 공연을 못 본 아쉬운 마음이 솜사탕 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멀리 보이는 산과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캠핑을 한다고 생각하니 또 설레었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은 감탄도 잠시. 다시 현실로 돌아와 텐트 설치와 식사해결이란 과제에 몰두했다. 그리고 이후에 많은 캠핑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캠핑장에서 본 자연풍경이 멋질수록 문명의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전기는 고사하고 물을 쓰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그나마 재래식 화장실이 가까운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해도 좋을 만큼 수려한 자연풍경이었다.  

  

  아이들과 캠핑 시 장점이 또 하나 있다. 취침시간이 빠르다는 것이다. 해가 지고 나면 깜깜해져서 딱히 할 게 없어서, 평소보다 더 빨리 잠에 든다. 단점이라면, 아이들이 잠들면 그때부터 자유 시간이지만 애석하게도 나 역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대로 잔다. 대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출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캠핑 후 다음날은 평소보다 1.5배 더 초췌한 몰골로 돌아다닌다. 출렁이는 에어매트리스 위에서 아이 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서 잔 탓도 있지만, 따로 샤워장이 없던 이 캠핑장의 경우는 못 씻어서 행색이 더 꼬질꼬질했다. 그래서였을까. 다음 행선지로 가는 도중에 온천이 있는 게 반가웠다. '글렌우드(Glenwood)'는 로키산맥을 보며 즐기는 미네랄 온천이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긴장된 근육이 흐물흐물 풀리는 기분이었다. 튜브에 탄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느라 온천 특유의 고즈넉함은 느낄 수는 없었지만, 대신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튜브 금지, 소란 금지 이런 푯말이 있었음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말이다. 하하하)  

[ 다이빙을 하는데도 엄마는 필수 참석인이다. 잘 찍고 있지? 연신 확인하고 신나게 뛰어내리는 아드님. 아들이 10번 넘게 신나게 뛸 동안 난 땡볕에서 사진을 찍었다. 허허 ]

  온천을 마치고는 열심히 달려서 유타주에 있는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에 갔다. 물, 바람, 기온 변화에 의한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약 2,000개의 아치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부터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막 기후였다. '덥다'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한 뜨거움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고 조금만 말을 해 도 곧 목이 건조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해가 없는 새벽 또는 저녁에 구경할 수 있다기에 해가 지고 서둘러 갔다. 원래는 저녁에 2시간 정도 트래킹을 하려고 했으나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과 수면 시간이 다가옴과 비례하여 커지는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못 견디고 다시 숙소로 왔다. 다음날 새벽 5시 기상하여 다시 오기로 하고 말이다.


 해가 뜨기 전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목표로 한 '델리케이트 아치'까지 왕복 3시간 정도 걸렸다. 확실히 해가 뜨고 나서부터는 급격하게 더워져서 아침 9시경에는 어깨가 절로 축축 처졌다. 사실 아치스 국립공원에는 다양한 아치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좀 더 쉬운 코스를 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기에 하나만 간다면 상징성이 있는 곳을 가자, 해서 간 곳이 델리케이트 아치였다. 가서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가는 길은 녹녹지 않았다. 평범한 기후에 평지를 3시간 걸어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눈뜨자마자 사막에서 3시간 트레일 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비법(?)이 있다면 주위를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6세 아동에게는 끝말잇기가 제격이었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적당히 뜸 들이면서 시간을 벌며 쉬기도 하고, 마지막엔  생각 못하는 척하면서 아쉽게 져주기로 끝내면 완벽했다. (그렇게 3시간 끝말잇기를 하고 난 후면 2시간은 아무 말도 하기 싫 부작용이 있긴 하다. 하하하)


  이제껏 보지 못한 것을 접했을 때, 기분은 묘하다. 콜로라도에서 거대한 붉은 바위들에 둘러 쌓여 드럼소리를 들었을 때, 유타에서 자연이 만든 거대한 아치들을 봤을 때 내가 알던 세계에는 없던 것들이었다. 고작 할 수 있는 반응이란 게 탄성을 자아내는것 뿐이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겸손함을 찾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위는 회색이었는데 붉은색 바위가 대부분인 곳을 방문하고 바위색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오전 9시 하면 보통 여름에도 선선한 날씨를 떠올렸는데 이젠  숨이 막힐듯한 더위가 시작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여행이란 건 이렇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하나씩 오감을 통해 부서뜨리는 과정이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심장과 머리에 노크를 하고 다가와서 '어서 와, 이건 처음이지? 자, 봐봐. 이런 것도 있어'하고 나를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이 다음에 방문했던 모뉴먼트 리에 있는 숙소도 평소의 우리였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인데,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유연함을 발휘해서 방문했다. 유명 체인 호텔도 아니고, 주변에 볼 거라곤 돌덩이(?)인데 가격은 (우리 기준에) 사악한 편이라서 주저했지만, 주변에 여행 다녀온 사람들이 꼭 가야 한다고 하는 추천을 믿고 가봤다.   

[ 이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그 얼마나 사정하며 셔터를 눌러댔던가 ]

 

  덧. 모뉴먼트 벨리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았다. 찾아보니 영화 '포레스트 검프' 촬영 장소였고, 주인공이 돌연 달리기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간 곳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차가 오는지 눈치를 살피고, 애들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인증샷을 남겼다. 사진 찍자고 하면 엄청 투덜대다가 막상 사진을 찍으면 서로 먼저 찍겠다고 다투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가며 빠르게 버튼을 눌러댔다.

   이 길에서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이 했던 대사("I'm pretty tired... I think I'll go home now")가 떠올랐다. 그리고 읊조렸다, '피곤해... 집으로...'라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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