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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Oct 21. 2024

어김없이 나타나는

가을에서, 구파발역에서

붕어빵 2천 원어치 사 들고 집에 돌아가

팥 두 개는 내 것 슈크림 두 개는 줴냐의 것

아저씨는 해마다 겨울이면 역 앞자리에 등장해

모두 다 숨는데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어

하루에 고작 9번만 운행하는 일영리로 가는 마을버스 그 안에서 팥은 잘 식지 않아

가랑이에서 그 사이에서 여전히 뜨거워

운전기사는 핸들을 꽉 쥐고 천정이 낮은 버스는 지친 승객을 싣고 우렁차게 달려

내 손은 차갑고 사람들의 표정은 미지근해

붕어빵은 슬슬 적당한 온도로 먹기 좋게 식고 내 손은 따뜻해졌어

버스 안에서 들리는 익숙한 그 옛날 조지 마이클의 목소리

항상 들리는 소리가 있어. 어김없이 나타나 감동을 주는 노래가 있어

그러려고 수많은 명곡을 세상에 남기고 일찍 가버렸어

집에 돌아와 발 디딜 곳 없는 현관 신발장에 무거운 신발을 패대기치고 간신히 집으로 들어와

오늘도 못난 집사를 반겨주는 모모. 언제나 나타나는 네가 있어

그리하여 아직 나는 다행이야

옷 장엔 올여름 가을 한 번도 손이 안 간 옷들이 그대로 걸려 있어

올해는 입는 거 읽고 쓰는 거 모든 걸 다 마다 했구나

겨울에는 더 한 없이 움츠려 들 텐데 올해는 일찌감치 글렀구나

씻으러 가는데 그 옆에 외로움을 모르는 한 사람이 세상모르게 자고 있어

언제나 그 자리에 오직 한 사람이 있어. 언제나 그렇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어

여전히 너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아직 나는 다행이야

혹, 줴냐도 모모도 외로움을 알지 못하는 데 나만 알까

아니 너도 나도 그 벼슬 같은 고독을 이고 사는데 나만 아우성인 걸까

녀석, 희한하게도 너의 얼굴엔 욕심과 근심이 없어 보인다. 한결같이.

내일은 무심으로 무성한 너의 머리와 수염을 밀어줄게.

잠들기 전 아쉬움에 색연필을 들었어. 하얀 도화지에 모모를 그려 두었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있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들이 있어.

곁에 있을 때 좀 더 그려 두어야겠어. 옳지, 그래야만 해

그나저나

언제나 너는 그저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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