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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사랑해요, 고양시

by grey dopamine

택시를 탔습니다. 비가 옵니다. 빗방울이 조금씩 거세지는 것을 보니 내려야 할 때쯤엔 주룩주룩 쏟아질 것 같습니다. 지난번보다 비가 따뜻합니다. 겨울이 끝난 것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들이 다시 살아날 때입니다. 멸종한 줄 알았던 벌레들도 다시 기어 나오겠지요. 겨울이 끝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창밖에 '어서 오세요, 고양시'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를 지나치니 그다음엔 '사랑해요, 고양시'라는 간판이 이정표 옆에 붙어있습니다. 그리운 것이 생각나버렸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모두 살아나는데 정작 그리운 것은 영영 살아나질 않습니다. 죽은 것처럼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개나리가 살아납니다. 노란 꽃을 보면 그리운 마음을 견딜 수 없어집니다. 문득 겨울이 죽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세상도 모두 이대로 잠겨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면 사랑도, 미움도, 그리움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 다시 살아나는 것들을 보며 가슴 아플 일도 없을 테니까요. 이제 택시에서 내려야 합니다. 비는 어느새 그쳤습니다. 하루가 움직입니다. 개나리 사이로 얼핏 아기의 꼬리를 봤습니다. 웃어야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기사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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