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령대 뺨따구 만행사건
찹쌀, 치욕과 마주하다
세상에는 성공담을 담은 이야기나 책은 많은데 망한 사람의 책은 없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듣는 이야기가 사업했다가 망했거나 사기당해서 망한 이야기인데, 그것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담은 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가 없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조금만 잘못해도 왜 반성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학교와 집에서 숱하게 반성문을 썼지만, 커서는 반성문 쓸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은 전교 꼴찌반이었다. 덕분에 나는 상위권을 유지했는데 우리 반에서 유일무이하게 빛나는 아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교 1등 준상이었다. 그 아이는 그냥 누가 봐도 바르고 착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전교 1등이었다. 성격이 다소 괴팍한 음악선생이었던 우리 담임은 늘 찡그린 얼굴로 조회와 종례를 했는데, 특히나 중간고사나 기말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발표되면 꼴찌반 담임 특유의 꼬장을 부리곤 했다. 그런 그도 염화시중의 미소를 품고 너그럽고 따스한 눈빛을 보내는 곳이 한 군데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교 1등 준상이었다.
우리 반 담임은 시험 성적 등수대로 자리 배정을 했는데, 1등과 70등 2등과 69등이 같이 앉는 극악의 자리 배치였다. 첫 시험을 운 좋게 잘 본 나는 12등인가를 해서 58등인가 싶은 아이와 앉게 됐는데 그 애는 압구정동에 사는 부잣집 아이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상태여서 평소 다른 친구들과 다름없이 지냈는데, 그 아이의 집이 부자여서인지 아니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대단한 분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여러 아이들이 그에게 와서 친한 척을 하고 같이 있고 싶어 했다.
어쨌거나 나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 넘사벽이자 엄친아인 준상이와 별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기차(별명)가 준상이와 중 1 때 같은 반이어서 말을 섞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대화를 나눠보니 역시 준상이는 전교 1등 다운 아이였다. 착하고 부드러운 말투, 너그러운 마음씨,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아이였다. 나와 기차가 거친 농담이나 장난을 치면 화들짝 놀라기도 하며 재밌어했다. 준상이가 보기에는 맨날 축구나 짬뽕(테니스공으로 하는 손야구의 일종)하며 놀고 장난치며 지내는 기차나 내가 신기했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에 가끔 놀러 오는 다른 반 애들이 있었는데, 한 명은 내 친구 찹쌀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백가발이었다. 백가발은 초등학교 때부터 새치가 많아서 붙여진 별명인데, 그 애는 우리 반 윤상(별명:노인네)이라는 애와 단짝이었고 윤상이가 준상이랑 친한 바람에 얼떨결에 준상이 와도 친하게 지낸다고 기차가 말해줬다.
거침없는 성격의 기차가 백가발에게 물었다.
"야, 백가발, 너 언제 미국으로 이민 가냐? 너 4학년 때부터인가 이민 간다고 했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백가발이 말한다.
"어, 그게, 조금 있으면 갈 것 같아".
뒷자리 아이와 지우개 따먹기를 하며 기차가 또 대꾸한다.
"저 새끼는, 6학년때도 조금 있으면 간다더니만 또 똑같은 얘기네".
못 들은 척, 백가발은 전교 1등 준상이에게 수학문제 풀이를 물어본다.
그때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갈 때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치렀는데 해마다 바뀌기는 했지만, 200점 만점에 140점 정도 이상을 받아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200점 중 20점은 체력장 점수로 100미터 달리기, 턱걸이, 넓이뛰기, 윗몸일으키기, 공 멀리 던지기, 1km 오래 달리기 종목이다. 여학생들은 턱걸이 대신 턱걸이에 오래 매달리기)
찹쌀은 체력장에 특화된 아이여서 우리들이 체육시간이나 아침저녁으로 오래 달리기를 연습할 때면, 그늘에서 담임인 체육선생의 어깨를 주무르거나 선생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다.
그러던 찹쌀에게 일생일대의 치욕적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게 바로 '구령대 뺨따구 만행사건'이었다.
그 당시는 비가 오는 날 빼고는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각종 전달 사항을 듣고, 청결 상태 검사, 교복 상태 검사 등을 받고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으로 끝나는 행사가 있었다.
평소와 같은 월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우리 반 담임이 사회자로 등장해 학생들의 오와 열을 맞추고 장내를 정돈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늘 그렇듯 심기가 안 좋은 담임이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치고 떠들고 있었다.
담임이 소리쳤다.
"너, 나와!"라는 말에 일순간 전교생이 조용해졌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며 담임의 손가락을 보니 우리 반 쪽이었다. 앞줄에 서있던 이티(창근)가 손을 들고는 외쳤다.
"저요?"
담임은 고개를 저었다.
"그 옆".
"저요?"(부시맨)
"아니, 그 옆, 그 뒤에 뒤에. 나와".
아뿔싸, 내 친구 찹쌀이었다.
찹쌀은 다 떠들었는데 왜 나냐는 표정으로 교단으로 올라갔고, 그가 좋아했던 노틀담(은경)과 1학년이던 여동생과 여동생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불꽃 싸다구를 맞고 주저앉았다.
담임이 말을 이었다.
"넌 조회 끝날 때까지 교단 아래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근 1시간 동안을 전교생과 마주 보고 무릎 꿇은 채 손들고 있어 본 적 있는가. 그게 바로 찹쌀 인생 최악의 치욕적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