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의 웹툰이 또 다시 이슈가 되었다. 이미 이전에도 비슷한 일로 지적을 당한 적 있는 종류의 사안이었는데,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에서의 표현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이유였다.
네티즌들의 의견이 갈렸다. 기안84는 만화가로서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웹툰이 도덕적으로 옳아야 하느냐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여성혐오적이라는 점이었다. 기안84에 대한 나의 개인적 감정은 호와 불호 사이 그 언저리에 있다. 만화가로서의 자유로운 모습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도 예능이나 웹툰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호감이 가지는 않는다.
<나 혼자 산다>를 즐겨보는 우리 엄마와 얼마 전에 이 이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기안84를 옹호하는 입장이셨다. 만화 안에서의 내러티브가 있고 그 내러티브를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쓰일 뿐인 장면이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게 왈가왈부 한다는 말씀이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최근 내가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고민했던 만화책시리즈를 왜 구매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는지, 기안84의 현재 이슈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엄마랑 대화를 나눴다.
내가 모모피아노 블로그에 가끔 올리는 이미지는 일본 만화 <피아노의 숲>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장면들이다. 나는 중학교 때 만화가게에서 만화책으로 읽었다. <피아노의 숲>은 피아노 천재 소년 이치노세 카이의 성장기를 다룬 만화로, 1998년에 연재를 시작하여 2015년에 완결이 났다. 인기가 많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개봉했다.
이 만화를 처음 읽기 시작한 시절엔 내가 피아노를 전공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라 피아노와 음악의 세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만화에서 주인공 카이가 연주하는 음악이 어떤건지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에 음악 제목을 검색해보고 씨디를 찾아 들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조예가 전혀 없었지만 만화책이라는 흑백 2D의 세계를 좀 더 3D처럼 느끼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음악을 찾아 들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 만화를 내 제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중고책 장터를 기웃거리게 되는데 아직 사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90년대의 콘텐츠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만화도 일명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다. 주인공의 집안은 가난하고 아버지는 누군지 알 지 못한다. 어머니는 아주 어린 나이에 주인공을 낳았고, 뒷골목 화류계에서 일하고 있다. 주인공의 같은 반 아이들은 이를 알고 주인공을 아주 깔보고 무시하며 놀리기 일쑤다. 내가 이 만화를 본지가 벌써 20년이 되어 가는데도 이런 배경이 기억에 또렷하다. 물론 이 배경은 그저 성공담을 이루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장치 하나 때문에 나는 아이들에게 만화를 소개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은지가 몇 달 째다. 사실 이 만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비하면 이런 배경 같은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장치 하나가 아이들에게 어떤 파동을 주지는 않을까 노파심이 생긴다.
기안84의 이번 이슈는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다. 뭐, 기안84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어쩌면 이 여성혐오적 내러티브는 장치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피아노의 숲은 90년대의 이야기이고, 기안84는 현재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만화로서 동시대의 정서를 파악하지 못할 뿐더러 여성혐오적인 메세지까지 담고 있다. 대중의 정서에 섬세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구식의, 여성혐오의 정서를 답습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런 이슈가 반복되는 기안84에 피로감을 느끼고 비판하고 있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의 학부모님과 대화를 나눴는데 학부모님께서 요즘에는 초등학생이 읽을만한 재미있는 만화를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만화책은 다 학습만화라며, 수학만화, 과학만화, 역사만화 같은 교육적인 내용을 위한 만화만 있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없다고 하셨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더 아이들에게 <피아노의 숲>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도 고민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고민을 끝내고 중고책을 구입하긴 할 것이다.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