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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01. 2024

우리 모두는 천천히 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천선란, <천 개의 파랑>을 읽고

한국현대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책을 오늘에서야 드디어 완독 했다. 처음 읽기 시작한 지 몇 달 동안 미적거리며 진도가 잘 나가지 않다가, 독서모임 때문에 4월의 마지막날까지 책 한 권을 읽어야 했기 때문에 급히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그동안 왠지 모르게 잘 안 읽히던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각자 사연이 있으며 서로 거리감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서로 이해해 나가는…, 전체적으로 가벼운 듯 왠지 애틋하고 벅차오르는…, 어찌 보면 요즘 흔한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식당 종업원, 경마장 말의 기수를 비롯한 다양한 직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체된 근미래. 중심인물들은 친구가 없는 예비 로봇공학도 연재, 소아마비로 다리를 못 쓰는 연재의 언니 은혜, 사고로 남편을 잃고 두 딸을 홀로 키우는 그들의 엄마 보경, 말 투데이의 망가진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 콜리이다. 관절이 닳아서 더 이상 경주에 참여하지 못하고 안락사당하기 직전인 투데이를 구하고자 인물들이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다양한 깨달음과 명언이 터지는 소설이다.


지금까지 나의 설명에서 느껴지듯이…, 사실 읽는 동안 이 작품한 내 감상은 굉장히 애매했다. 읽으면서 시시각각 ‘와, 별로다’와 ‘와, 좋다’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불호였던 포인트는, 사실 요즘 현대소설들이 대체로 그렇긴 하지만, 훈훈함을 주기 위해 작위적으로 설정된 인물과 사건이 몰입이 안 되었다. 완전 청소년 소설이라고 느껴졌다. 청소년인 주인공들의 다소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계획을 주변 어른들 모두가 따라주는 주요 플롯이 특히 그랬다. 인물 설정들도, 하나같이 각종 사연들을 가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다들 성숙한 인물들. 그리고 각박한 현실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는 인물들. 언젠가 누가 내 글을 보고 인물들이 다 이상적이고 착한 게 비현실적이라고 했었는데, 그게 이런 의미구나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문장이 너무 많았다. 많고, 수려하고, 조금씩 변주되는 문장들로 인물들의 심리를 여러 번 묘사하는데, 가끔 그 감성이 나랑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아서 튕겨져 나올 때가 많았다. 과한 아련함, 과한 비장미. 이 역시 내 글에서도 단점이라 느끼는 부분이라, 또 거울치료가 되었다.


담고 있는 메시지도 너무 많았다. 장애인인 은혜는 장애인을 부족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에 대해 비판하고, 로봇 콜리를 통해서는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경계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리고 중심소재인 말, 투데이를 통해서는 동물이 필요가 없어지면 죽이는 인간들의 잔혹함을 비판하고 있다. 또 사회 비리와 계층 차이, 그 사이사이 가족 간, 친구 간 서로 소통을 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 풀어가고 이해하는 과정까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온갖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을 이상적으로 버무린 작품 같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인생작품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전체적인 설정이나 플롯은 너무 작위적이어서 다소 닭살이 돋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각 문장이나 비유적인 표현, 그리고 비록 위에서 너무 많다고 비판하긴 했지만 담긴 메시지 각각은 무척 좋았다. 읽으면서 좋아서 밑줄치고 싶은 문장, 소름 돋았던 통찰과 주제의식들이 많았다. 다만, 그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느낌이었다는 게 문제일 뿐.


가장 핵심적인 이 작품의 주제의식 또한 이 시대에 필요한, 특히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메시지였다. 이 소설은 휴대폰 메모장 아래에 적어둔 이 문장으로부터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천천히 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쉬고 싶었지만 멈췄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까 봐 멈추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나도 깊이 공감했다. 지금 잠깐 멈춰있는 나에게도, 멈추는 게 쉽지 않았. 췄다가는 다시 달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고작 '일시정지' 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서로를 힘들게 만드는 걸까? 천천히라도 달린다는 행위 자체 행복할 수 있다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깨작거리던 이 책을 마침내 읽게 된 것은, 오늘 아침에 길리 해변에서 러닝 하다가 마차에 매인 말과 나란히 달렸기 때문이다. 그 말에게 묘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달리면서, 말이 불쌍해서 마차를 안 이용하겠다던 동행을 떠올렸다. 지금 마차를 끌고 있는 저 친구는 괴로울까. 그럼 경마장에서 뛰는 말들은 괴로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잊고 있던 이 책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나는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뛰다가, 결국 지쳐서 걸었다.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 늘 잊는다. 그 모든 순간 나를 빠르게 뛰어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다.


아무튼, 많이 비판했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책이란 울림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게 좋은 책이라고 기억될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박혔던 대화를 쓰고 마무리한다.

“미안, 인간이 원래 이렇게 주책없어. 그런데 너는 그리움이 뭔지 모르겠지? 부럽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이 책은 그리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현재에서 행복해지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행복하자, 의 속도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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