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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Jul 21. 2024

부대끼며 사랑하고 상처받을 용기

다이앤 풀 헬러, <왜 내 사랑은 이렇게 힘들까>를 읽고

최근 나에 대한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았다. 새로운 사실도 있었지만, 대개는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번에 한 애착유형 검사가 그랬다.


애착유형 검사를 하게 된 것은 독서모임을 위해서였다. 이번 책은 <왜 내 사랑은 이렇게 힘들까?>라는 책이었는데, 각 애착유형의 형성 원인과 특성, 그리고 개선하기 위해 시도해 볼 수 있는 노력들까지 친절하게 제시되어 있는 책이었다. 인터넷 간이 검사 결과, 역시 나는 회피 만렙이었다. 내 결과를 보고 친구들이 무슨 메이플스토리 도적이냐고 놀렸다. 나도 웃으며 그냥 나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제가 원래 이러이러한 식으로 행동하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이번에 같은 조로 얘기를 나눈 친한 친구들과는 사실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책을 읽고 공유한 적이 있었다. 2년 전 즈음에 내가 독서모임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도 어릴 때의 경험이나 애착이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때 나는 독서모임 사람들과 친해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가 편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앞으로도 말 놓을 일 없이, 그냥 ‘소연님’으로만 나를 대해줬으면 했다.


대개 나는 그런 편이었다. 마냥 사람 좋아할 것 같은 첫인상과 달리, 보기보다 사람을 가까이 대하는 걸 어려워했다.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잘 열지 못했다. 혹시라도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나에게 실망할까봐 무서웠다. 그러지 말아야지, 항상 반성하면서도 그러지 않는 법을 잘 몰랐다. 그렇게 마주하는 모두에게 은근한 벽을 두르고 있는 나는 나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다.


그런 내게 언젠가 읽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유토피아였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누구도 가까운 관계를 맺지 않는다. 친구도, 연인도, 부모도 없이, 모두가 필요에 의한 가벼운 관계를 맺는다. 감정적인 교류가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손쉽게 떠날 수 있는 관계다. 다시는 못 보게 되더라도, 누가 죽더라도 전혀 슬플 일이 없다. 나는 그 세상이 좋아 보였다. 타인과 부대끼면서 고민하고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니, 그런 아픔이 거세된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세 달 뒤에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을까? 내가 내린 답은, ‘세상과 단절된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잊힌 채 재밌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다가 죽는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내가 그만큼 소설이나 만화 같은 콘텐츠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직시하기가 무서웠던 거다. 내가 슬플 것도, 내 주변 사람들이 슬플 것도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 사실이 누구한테도 예리하게 와닿지 않도록 가상의 이야기 속에 파묻히고 싶었던 거다. 결국 회피였다.


이번에 독서모임에 임하면서의 마음가짐은 2년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모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지난 2년 동안 나는 모임 운영진이 되었고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성격적 결함에 대해서 털어놓는 것을, 나는 또 조금 망설였지만, 이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내가 뭘 추가로 말하든 말든 나와의 관계가 달라질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하자, 문득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를 기꺼이 드러낼 수 있도록 내 벽을 허물어준 사람들의 존재가.


이 책이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안정애착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비록 성장 과정에서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했더라도, 이후 만나는 인간관계를 통해 충분히 안정애착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불안정 애착 자체도 문제는 아니라고 말해준다.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은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는 회피든 불안이든 살아남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중 안정애착을 지향하는 이유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본능적인 행복과 충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이 책은 끝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나한테 무슨 좋은 점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왜 나랑 친구 해주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내뱉은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곁에 남아 있어 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지인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것도 많이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지금껏 낯선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해왔으니, 이제는 내 친구들에게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드러내려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부대끼고 직면하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하다 보면 더욱더 나 자신을 긍정하고 나를 둘러싼 관계들에 의연해질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사랑받고 사랑주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만약 내게 남은 시간이 세 달 밖에 없다면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을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혼자 외롭게 죽는 게 지금의 내가 바라는 내 삶의 최선의 마무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서는 아끼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전하고, 앞으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걸 바라지 않을까. 확실히 그동안 내가 너무 나 스스로를 외로움을 바라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글을 쓸 거 같다. 생각보다 더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살았는지 글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큰 나 자신을 발견하는 요즘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확실히 내가 어떤 방향으로든 변하고 있긴 하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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