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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Oct 20. 2024

이 세상이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사실 이 책을 읽은 것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이번에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전국이 들썩이는 와중에, 나도 이 글을 통해서 그 벅찬 마음을 기록하려 한다.




<소년이 온다>는 3년째 내가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을 가입하게 만든 책이다. 생일선물로 받고 묵혀두던 이 책 바로 며칠 뒤 정모도서로 선정한 모임을 우연히 발견했다. 운명이라 여기고 그렇게 첫 모임을 참여하고, 책들이 마음에 들어 연달아 그다음 모임들도 참석했다가 소중한 친구들도 생기고, 운영진도 하고, 더 소설에 진심이 되어…, 설을 직접 쓰고 싶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날 모임에서는 책에 대한 다양한 감상과 질문을 나누었다.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이 책의 의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주어졌.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책을 읽게 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5.18이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적 사건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이 책을 통해서 현재까지 계속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마지막 챕터를 읽으며 눈물 지으면서도, 나는 이내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곤 했다. 지금껏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나와 상관없는 옛날 일일 뿐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그날의 일로 아직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챕터마다 시점과 시간대가 바뀐다. 첫 번째 챕터는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소년의 시점으로, 그다음 챕터는 현장에서 죽어서 유령이 된 소년의 시점으로, 그다음 챕터들은 그날 이후 정치적으로 핍박받는 사람들의 시점으로…, 마지막 챕터는 그날 소년을 잃고 삼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해내는 어머니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책을 덮으며, 그날로부터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작 중 인물들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일 거란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잊힌 사람들을 다시 조명하고 보듬어주는 작품이라니, 정말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몇 달 전 소설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그 수업에서는 격주로 주제에 맞게 짧은 소설을 쓰는 과제가 있었다. 그중 마지막 과제는 ‘이 시대가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하냐는 질문에 선생님이 예시로 드신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소년이 온다>였다. 선생님께서는 과거 1980년도의 사건을 21세기까지 유효한 이야기로 다시 쓴 작품이라고 이 책을 설명하셨다. 즉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에 쓰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작품, 과거를 과거로 두지 않고 현재까지 연결 짓는 작품, 나와 동시대에 공존하고 있는 상처들을 어루만지는 작품, 그러니 ‘이 시대가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책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벅찼다. 나는 내가 소설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게 이런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 한강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누군가는 소설이 하등 쓸데없다고 말하지만,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공감과 위로가 분명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해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무언가가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확실히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애틋한 시선으로 사람을 포착하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글들이 너무 소중하다. 부디 앞으로도 이런 글들이 많이 쓰이고 읽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더 치열하게 쓰고, 읽고, 느끼고, 위로하자.


캄캄한 이 덤불숲에서 내가 붙들어야 할 기억이 바로 그거였어. 내가 아직 몸을 가지고 있었던 그 밤의 모든 것. 늦은 밤 창문으로 불어들어오던 습기찬 바람, 그게 벗은 발등에 부드럽게 닿던 감촉. 잠든 누나로부터 희미하게 날아오는 로션과 파스 냄새. 삐르르 삐르르, 숨죽여 울던 마당의 풀벌레들. 우리 방 앞으로 끝없이 솟아오르는 커다란 접시꽃들. 네 부엌머리 방 맞은편 블록담을 타고 오르는 흐드러진 들장미들의 기척. 누나가 두번 쓰다듬어준 내 얼굴. 누나가 사랑한 내 눈 감은 얼굴.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뒤로 어떤 말들이 더 오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표정, 가장 끔찍한 이야기를 덮어두고 말을 이어가는 일의 어려움, 어색하게 이어지던 침묵을 기억한다. 아무리 말을 돌려도 어느새 처음의 오싹한 빈자리로 되돌아오는 대화에 나는 이상한 긴장을 느끼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르치던 학생네가 중흥동 그 집을 샀다는 건 나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는가? 왜 그 학생의 이름을 말하기 직전에는 알 수 없는 망설임이 끼어드는가?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에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그러니 내일이 되어 일곱번째 따귀를 잊을 필요는 없었다. 일곱번째 뺨을 잊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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