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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Nov 04. 2024

퇴사하지 않는 마음가짐

내가 회사를 버티는 방법



요즘 부서 분위기가 아주 개판이다. 회사를 다닌 지금까지의 6년 동안 가장 최악이다. 그동안 일은 힘들지만 분위기가 좋아서 다들 버텨왔다. 그런데 사람 때문에 좋았던 분위기는 보직장 한 명만 잘못 들어와도 순식간에 나락 갈 수 있는 거였다. 지금은 모두의 얼굴에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다. 다들 수시로 한숨, 혹은 쌍욕을 내뱉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다들 힘들어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상대적으로 잘 지내는 사람이 되었다.


7월에 복직한 이래로 지금까지 몇 달 내내 나는 부서이동을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 부서의 관리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부서, 인사팀까지 나는 더 이상 여기에 못 있겠다고 피력했다. 그런데 부서이동 시도는 실패했고, 갑자기 조직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내 관리자들이 싹 다 바뀌었다. 나에 대해 모르는 새로운 관리자들에게 다시 처음부터 나의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 올해 실적을 위해 급히 끝내야 하는 일들이 쏟아졌다. 부서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만 당장 눈앞의 업무가 더 급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11월이 되었다.


급히 업무를 쳐내면서 나는 빠르게 다시 부서에 녹아들어 갔다. 부서이동을 해내려면 직무 스트레스라 적힌 정신과 진단서를 들이밀면서 이 업무에서 손을 놓아버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나를 다른 곳에서 써먹을 방법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장 못하겠다고 일을 던졌을 때, 그 일을 떠맡게 될 사람이 불 보듯 뻔했다. 그 사람도 똑같이 한계까지 지친 모습이었다. 그러니 이번만, 이번만, 그런 식으로 하나 둘 묵묵히 하다 보니까 이제는 지금껏 멀쩡히 잘해놓고 갑자기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게 우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환경에서 나를 구해내려면 정말 퇴사 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부분들을 따져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당장 퇴사를 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는 요즘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퇴사를 하지 않을 이유를 생각해 보다가, 갑자기 이번 주에 머릿속이 개운해지면서 불현듯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퇴사를 하지 않는 이유 첫 번째는 나는 단순히 이 회사나 부서가 싫은 게 아니라 이 직무가 싫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이 직무로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쓰려니 도저히 영혼이 담기지 않는다. 이 회사를 나가서 새로운 업종이나 회사에서 시작하는 건 쉽지 않다. 여기서 내가 가지고 있는 회사의 전체적인 업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다. 더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나가기 억울하고, 무엇보다 너무 귀찮다. 내 솔직한 진심은, 귀찮다. '귀찮다'라는 감정은 사실 내가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이므로 나의 본질의 하나일 것이다. 지금 나는 그 귀찮음을 무릅쓸 정도로 이 상황이 괴롭지 않다는 것이므로 오히려 다행인 것도 같다.


두 번째는 내가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뭔가 한 가지에 집중해 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9월엔 달리기였고, 잠깐 업무에 치이다가 10월 말에는 그게 글쓰기가 되었다. 브런치 공모전 마감을 앞두고 지난 발리 한 달 살기의 기억들을 다시 글로 썼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새벽 한두 시까지 글을 쓰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재밌었다. 그동안 내가 어떤 직무를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그냥 나는 회사 일은 정말 안 하고 싶은 거였나 보다. 퇴사하면 한동안 정말 글만 써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퇴사를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최소한 지금의 나는 글로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글쓰기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글쓰기가 업이 아니라서다. 이렇게나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나 자신을 발견하니, 취미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내게는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세 번째는, 가장 결정적으로, 지금 우리 부서의 보직장들이 멍청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부서의 분위기가 안 좋아진 이유는 새로 온 부서장이 사람을 다룰 줄 모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업무가 많아서 다들 힘들어하는데, 사기를 진작시키기는커녕 강압적인 태도로 우리를 대하거나 보상을 해준답시고 운 좋게 좋은 성과를 보인 사람들만 추려서 커피쿠폰을 주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러면 정말 우리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무언가를 말했을 때 그걸 듣는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를 고려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가? 올해 실적을 위해 상무님은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요구하고, 아래 보직장들은 또 그걸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해 우리에게 황당한 것들을 지시한다. 그걸 왜 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얼마까지 가능한지는 누구도 따지고 들지 않는다. 정말 다들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따르는 걸까?


그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나름의 답을 얻었다. 아! 회사는 원래 이런 곳이구나! 회사는 정말 도움이 되는 행동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윗사람이 지시하고 아랫사람이 보고하고, 실제로 얼마나 유용한지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그럴듯해 보이는지 포장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사피엔스>는 인류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종교, 화폐, 국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결속력을 만들어주었던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회사도 실체가 없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역할극을 하면서 조직을 유지시키고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조직이든 효율적으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이나 규칙 중에는 정말 필요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키는 것 자체로 그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지금의 이 말도 안 되는 코미디 같은 상황도, 상무님의 말을 따르는 것 자체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갑자기 내 안에서 회사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다. 내게 회사는 자아실현의 장이 아니다. 나의 자아실현은 글쓰기로 할 것이다. 회사는 단지 그러기 위해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 장치일 뿐이고, 나는 회사에서 역할놀이에 어울려주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회사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많이 사라졌다. 납득이 안 되는 지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납득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까 스트레스를 안 받았다. 원래도 나는 “회사는 돈 벌러 가는 곳인데, 이런 재밌는 일이 생기다니 개이득!”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이제 거기에 더해, 더욱 기대를 낮췄다. “회사는 원래 멍청이들 지시에 장단 맞춰주는 대가로 월급 받는 곳인데, 납득이 가네? 즐거운 일이 있네? 개이득!”


이렇게 생각하니까 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바로 회사에서의 내 자존감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나는 산만한 탓에 실수가 잦고, 귀찮은 업무는 미뤄두는 안 좋은 습성이 있다. 그게 우리 부서에서는 아주 큰 단점이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주변 모두가 나보다 빠르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고 위와 같은 납득과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회사에는 멍청한 사람들도 충분히 많다는 것을, 심지어 그 멍청한 사람들도 회사를 아주 잘 다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상대적으로 내가 똑똑한 것처럼 느껴지면서 아랫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보다 짜내서 윗사람한테 보고할 건덕지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곳을 어차피 나는 오래 못 다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회사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했던 게 허망하게 느껴지면서 드디어 나의 기준과 회사의 기준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독립을 이룬 덕에 더 오래 회사를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이유를 요약하면 삶의 주도권을 회사에 뺏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확실히 회사 생활에 욕심도 없고 미련도 없고 주눅 들고 움츠러들 필요도 없고, 나를 공격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멍청한 얘기들은 흘려들으면서 지내려 한다. 그렇게 나도 회사로부터 필요한 것만 취하면서 천천히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나날이 한숨과 눈물이 많아지는 이 부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상무님한테 대들 수도 없고 사람 다룰 줄 모르는 보직장들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단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일은 힘들어도 사람이 좋아서 버틸 수 있다고 위로할 수 있게끔, 윗사람이 강압적이어도 우리끼리라도 서로 돕고 웃을 수 있는 분위기에 일조하고 싶다. 그래서 최근 나는 동료들, 특히 후배들이 뭔가를 부탁하면 더욱 흔쾌히 들어주려고 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은 눈에도 안 들어오던 내가 남들을 걱정할 상황이 된 걸 보면, 확실히 요즘 나는 대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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