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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Dec 01. 2024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적절히 쉬는 게 때로는 더 중요하다



11월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 수영을 시작하고 오히려 낮과 밤과 수면의 경계가 뒤죽박죽이 되었던 11월이었다. 때문에 밤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아 러닝은 거의 못했다. 회사 업무에 대해서는 나도, 파트장님도 비록 시계가 남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할 일만 제때 끝내면 된다는 주의여서 별문제가 없었지만,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는 별로 좋지 않은 듯하다. 12월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특히 이번 주에는 지난 일요일부터 몸이 안 좋다가, 월요일 새벽 수영을 다녀오고는 아예 앓아누워서 당일 연차를 쓰고 쉬었다. 이후로도 계속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서 수요일 새벽 수영은 결석하고 푹 자기로 했다. 11월 첫 달 개근하고 싶었는데, 포기할 결심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쩌면 한 달 내내 생활패턴에 맞지 않는 새벽 수영을 나간 것은 오기였을 수도 있다.


그걸 포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나간 월요일 수영 수업이 참담했기 때문이다. 몸이 한없이 무거웠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나를 알아차린 것인지 선생님도 평소보다 유난히 의욕이 없어 보이셨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뿌듯함보다는 피곤함과 회의감이 들었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다가는 모든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걸 매번 되새기려 하는데, 욕심이 많은 나는 쉽지가 않다. 포기할 때를 제때 아는 것도 용기이고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짧은 글을 썼다.


마라톤에는 DNF라는 말이 있다. Did Not Finished의 약자로, 완주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제한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중간에 포기했을 경우 DNF라는 결과를 받게 된다.

처음에는 DNF가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다. 결국 실패했다는 거니까. 그런데 점점 더 러닝에 진심이 되면서 나도 점점 거리와 페이스를 올려갔고, 첫 하프마라톤을 앞두고는 무리한 나머지 조금씩 아픈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악물고 대회까지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준비한 대회 전날, 내가 무서웠던 것은 DNF할까봐가 아니었다. 나는 DNF 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혹시라도 몸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데도 내가 포기하지 못할까 봐. 고작 불명예를 무서워하다가 더 큰 부상을 안게 될까 봐.

다행히 무탈하게 대회를 완주했지만, 이후 DNF를 택한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준비한 대회에서 포기를 택한 용기와 결단력이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졌다. 인생도 마라톤이어서 매 대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오래 건강하게 달리는 게 중요한 것임을 그들은 진작 알고 있던 게 아닐까.

가끔 내가 여유를 갖지 못하고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문득 생각한다. DNF 할 수 있는 용기를 내자고. 지금은 쉬어야 할 때라고.


수요일 수업을 쉰 덕분에 컨디션을 좀 회복하고 나간 금요일 수업은 월요일 수업에 비해 훨씬 활력이 넘쳤다. 고작 한 번 빠졌을 뿐인데 오랜만인 것처럼 반갑게 느껴지는 수영장 물은 무겁기보다는 상쾌했다. 선생님의 피드백에도 의욕적으로 질문을 많이 했고, 그날 선생님은 나한테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달리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많이 연습하는 것보다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아니, 달리기 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이 그러할 것이다. 마냥 꾸역꾸역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내 상태를 잘 살피고, 필요할 때는 포기하고 휴식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지난번 휴직 경험으로 확실히 느꼈지 않았나.


월말 근무시간을 확인하니 11월에는 월 최대근무시간을 거의 다 채울 정도로 야근을 많이 했다. 어쩌면 최근 내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것은 과로 탓일 수도 있겠다.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다음 주 연차를 쓰고 제주도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당장 내일 떠나지만, 숙소도 일정도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풔킹 야근과 주말출근 때문에 도저히 찾아볼 시간이 없다. 오늘은 꼭 찾아봐야지…)


아무튼, 딱 적절한 타이밍에 나에게 선물 같은 휴식을 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쉬고, 읽고, 쓰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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