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며칠 전부터 기대해 온 10km 마라톤날이었다. 이번 마라톤은 내게 유독 특별했다. 바로 이제 10년 지기가 된 나의 대학교 동기들과 나가는 마라톤이었기 때문이다.
하반기에 들어서서 나는 하프마라톤을 준비하느라 러닝에 매진했고, 하프마라톤을 성공적으로 완주해 낼 수 있었다. 평소 뛸 때에도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니까 이제 10km 마라톤 성적이 궁금해진 것이다. 마라톤은 10km, 하프, 풀마라톤 이렇게 나뉘어서 열린다. 그리고 풀마라톤을 뛴다고 해서 10km 마라톤을 안 나가는 게 아니다. 선호하는 종목이 있긴 하겠지만, 그 3개 전부에 대해서 PB(개인 최고기록, Personal best)을 갱신해 나간다. 나는 지금까지 10km만 뛰다가 이번에 하프를 처음 뛰어본 거였다. 작년 봄 처음으로 나갔던 10km에서 1시간 4분, 그다음 작년 가을에는 1시간 2분, 올해 봄에는 57분, 이렇게 반년에 한 번씩 10km 기록은 조금씩 줄고 있었다. 이번 하반기에는 하프만 신청하고 10km를 신청 안 했더니, 뒤늦게 아쉬워졌다. 아마 10km 역시 달리기만 하면 PB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적당한 10km 대회를 골라보는데, 그동안은 대개 크루 사람들과 다 같이 대회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렇게 개인적으로 참가하는 건 또 처음이었다. 혼자 가면 심심할 거 같은데? 누굴 꼬셔볼까?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친구들이었다.
아마 내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들을 떠올릴 것이다. 친하다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사실 그 둘 다 남자고 각자 여자친구도 있는지라, 나와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지는 않는다. 남사친 여사친 관계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괜히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은 내 삶에서 대체불가능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했고, 그것이 지난 1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 친구들은 런데이는 깔았지만 러닝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런데이를 깔아 둔 것도 런데이를 통해 러닝을 시작한 나를 응원하기 위한 거였다. 그렇게 서울, 인천, 대전 이렇게 떨어져 살면서 서로 러닝 할 때(주로 내가 러닝 할 때) 응원해 주던 그 친구들한테 혹시 10km 마라톤 함께 나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한 번도 같이 해보지 않은 것을 같이 한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 친구들도 재밌겠다고 하며 흔쾌히 수락했고, 그게 바로 오늘의 대회였다.
러닝크루에서 나는 가장 못 달리는 편이라서 사람들로부터 이것저것 조언을 듣고 훈련을 따라 한다. 하지만 오늘 셋 중에서는 내가 제일 고수였다. 당장 대회 준비물이 뭐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나는 옷차림과 준비물, 아침에 먹으면 좋은 것들을 추천했다. 집합장소에 모여서도 스트레칭부터 웜업 조깅, 몸풀기 동작들까지 가르쳐주었다. 평소 하던 역할과 다른 역할을 하니까 또 이번 대회가 더 재밌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평소 연습량이 차이가 나니까 당연히 내가 훨씬 잘 뛰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 다르게, 경기를 시작하고는 그 친구들이 먼저 앞서나갔다. 안 그래도 나 역시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지만, 조바심이 났다. 내가 그래도 얘네보다 러닝을 몇 년은 더 했는데, 질 수 없지!!! 그렇지만 러닝에서의 절대 진리는 오버페이스는 절대금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냥 지금의 내 페이스를 지키기로 했다. 보아하니 저 친구들 지금 초반이라 오버페이스하는 것 같은데, 끝까지 가면 내가 이길 거라 믿으며. 그리고 5km 반환점을 돌 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던 내가 조금 쳐지고 있던 그 친구들을 따라잡았다. 그 순간,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잠깐 동안 셋이서 나란히 달렸다. 곧 길이 좁아지고 내가 앞서나간 탓에 그 순간이 길지는 않았다. 그런데 뭔가 그 순간 기분이 묘하게 벅찼다. 나는 외쳤다. 우리 지금 다 같이 달리고 있어!
이후로는 PB 세울 생각에 눈이 먼 내가 뒤돌아보지 않고 뛴 탓에 그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뛰었다. 애초에 마라톤은 고독한 운동이니까… 나는 남은 거리를 최선을 다해 뛰는 것에 집중했고,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결승선에 들어올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친구들이 나란히 들어왔다. 이렇게 차이가 안 나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발맞춰 달릴걸. 좀 아쉬웠다. 그렇지만 셋 다 51분이라는 상상도 못 한 기록으로 10km를 완주해 냈다! 그 사실에 우리 모두 잔뜩 신이 났다.
나는 나대로 지난번 57분이라는 기록에 비해 6분이나 단축해서 신났고, 그 친구들은 1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 걱정하던 게 무색하게 첫 10km에서 51분을 기록해서 신났다. 거기다가 그 친구들은 이런 대회에서 뛴 게 처음이니까 더욱 뿌듯하고 기분 좋아했다. 그렇게 다 같이 신난 상태로 우리는 메달을 목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과 신나는 순간을 공유하는 것. 우리가 학교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던 때에는 그게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공유하는 것들이 사라지고 우리의 우정도 신나고 재밌기보다는 편안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인상 깊은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어서 뿌듯하고 행복했다.
우리의 지난 10년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재미중독자인 내가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 제안하면 이 친구들이 따라주었다. 어떤 집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리더도 리더지만 팔로워가 얼마나 훌륭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의 지난 10년 동안 행복한 순간이 참 많았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지난 추억으로만 남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더더욱 오늘 하루가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