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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맴맴 Jun 03. 2020

아버지는 왜 나귀타고 장에 가셨나

쓸데없는 고찰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넛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언젠가 지인들과 둘러 앉아 이 노랫말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2절의 가사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고, 제목조차도 몰랐죠. 심지어 이 동요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깜깜했습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난 노랫말에 온갖 상상을 했더라랍니다.      


나귀가 있으니, 좀 사는 집일까? 나귀 시세가 어느 정도였을까. 나귀를 타고 갔다는 건 물건을 사러 간 것인가? 아니면 장에 아버지의 친구가 계셨던 것일까. 할머니는 왜 그 시점에 건넛마을 아저씨 댁에 간 것일까. 왜 하필 아저씨 댁이었을까. 아저씨에겐 아내가 있는 걸까 없는걸까. 막장으로 가자는 걸까? 아이는 왜 고추랑 달래를 먹고 맴맴거렸을까. 고추랑 달래는 어디서 난걸까? 집에 엄마가 안 계셨던 걸까? 아예 안 계시는 걸까. 그럼 이 집 인간들은 애를 혼자 두고 다 볼 일보러 간 것일까? 온갖 추측을 하며 분노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맴맴 거리는 아이는 결국 불쌍한 아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빠 할머니 다 나가 돌아다니고, 얼마나 심심하면 혼자서 저러고 있을까. 아이고 짠해라.      


집에 오는 길에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목은 고추먹고 맴맴. 원래는 집보는 아기의 노래였답니다. 

심지어. 원작 가사는 고추먹고 맴맴, 담배먹고 맴맴 이었답니다

집에서 심심했던 아이가, 매운 고추도 한번 먹어보고. 저건 뭔가 담배도 먹었답니다.

여하튼. 가사를 찾아보곤 어머 세상에. 도대체 뭘 한거지 싶었습니다. 

머리한대 딱 맞은 느낌. 막장은 나의 머릿속에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돌떡 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 길로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하나뿐인 손주 주려 돌떡 받아 산골길 헤매고 계신 할머니를 모욕했던 겁니다. 

맴맴거릴때면 한창 여름일테니. 그냥 걸어도 더웠을 산골길에 돌떡까지 이고 오려면 땀이 범벅이었을텐데.. 손주를 향한 그 사랑과 정성을 모욕하고, 왜 하필 아저씨 집이었냐니요.     

 

아버지는 옷감 사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 넘어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옷감을 사서 팔든, 혹은 옷감을 사서 옷을 짓든. 가족을 위해 살았던 아버지를 한량 취급하고 낄낄거렸다니... 애를 두고 밤늦게까지 나와서 노닥노닥 커피마신 내가 할 말은 아니구나.. 결국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들었구나...     

 

고추먹고, 달래먹고 맴맴거린 아이는 행복했을 겁니다. 

조금있으면 할머니가 돌떡 들고, 아부지는 옷감가지고 집에 들어와서 아일 안아줬을테니까요.

조금만 있으면 고추랑 달래 던져버리고. 돌떡 먹으며 비단 옷감 구경을 할테니까요.

맴맴의 미스터리는 풀렸지만 마음은 더 복잡합니다. 

마음대로 보고 재단하는 일을 그만해야겠습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이야기도. 나는 모르는 이야기가 또 숨어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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