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나를 보내며
첫해와 함께 작년까지의 나를 죽였다.
결심한 것들이 흔들리지 않고 바래지지 않도록
과거의 영광, 업적 등 조금이라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 것들을 쳐냈다.
올해는 완결성을 추구하겠다는 결심.
그렇지 못한다면 올해의 나도 내년의 내 손에 죽는 것이다.
잠시 옛날의 나를 추모한 이후
조문객으로 와준 10년 지기 친구인 깃과 함께
내가 죽은 기념으로 육개장을 먹으러 갔다.
깃의 안내로 도착한 식당.
육개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육개장은 국밥집의 여러 바리에이션을 책임지는 서브가 아닌가.
하다못해 장례식장에서도 육개장 외 옵션이 있는데도
이곳은 메뉴가 육개장밖에 없는 것이 강렬했다.
음식이 나와 한 술 떠보니 확실히 맛있었다.
수두룩한 병원과 상조를 두루 섭렵한 몸임에도
육개장도 맛집이 있을 수 있구나를 처음 알았다.
당당히 존재감을 과시하는 육개장을 먹으니
조연의 유쾌한 반란이 연상돼서 더 마음에 들었다.
이후 깃과 함께 얘기를 나누기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 사이의 계산법은 독특하다.
우리 중 누군가 가자고 한 식당이 성공적이었을 시
음식 값은 더치페이 하고 정보료로 다른 사람이 커피를 산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가자고 한 사람이 전부 다 산다.
하지만 이 날은 부조금을 대신해 깃이 커피를 샀다.
작은 카페에서 마주 앉아 서로의 방향성을 공유했다.
깃과 대화를 나누면 배우는 점이 많다.
스승 없이 독학으로 모델링을 깎아 나가며
인정받는 인기 프리랜서가 된 그의 의지와 집중력에 자극을 받는다.
배불러서 게을러질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향상심이 있더라.
솔직히 이제 그만 배우고 적당히 놀라고 잔으로 내려치고 싶었다.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점은 깃이 내 친구기 때문만은 아니다.
긴 대화를 끝내고 일어났다.
이제 그만 돈도 안되는 자기 반성을 끝내고 나아가기로 했다.
뒷심을 가지고 싶다.
디테일함을 가지고 싶다.
완결성을 가지고 싶다.
작년의 목표였다.
올해도 같지만 차이가 있다.
뒷심을 가진다.
디테일함을 가진다.
완결성을 가진다.
계속 보기만 하다가는 거북목 올 것 같아서 일단 손에 넣어보기로 했다.
지금 쓰고 있는 글도 이 손을 계속 쥐기 위해 존재한다.
이 새로운 이정표들을 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올해의 나는 내년의 나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단 먹고 나서 생각하고 해보고 나서 고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