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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 Jan 04. 2022

덜어내고자 하는 일상#1

그리운 그 이름 독서여


예전 내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슬픈 말이지만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그림책, 만화, 소설 등 형태는 다양했지만 코흘리개 시절부터 해온 입원 생활부터 질풍노도의 수험 생활까지 쭉 함께 해온 친구다.


내 주위에서는 대체로 책을 읽는 것보다 티브이를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티브이를 싫어했다. 티브이에는 청각적인 요소들이 많아 놓치는 정보들도 많고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답답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나마 몇 안 되게 끝까지 다 챙겨 본 티브이 프로인 디지몬 어드벤처와 무한도전의 경우에도 같이 보는 동생에게 계속 물어가면서 근성으로 봤다. “쟤네들 왜 싸워?”. “쟤랑 쟤는 무슨 관계야?”. “지금 무슨 상황이야?” 생각해 보니 동생도 귀찮았을 법한데 성심껏 대답해 준 게 느껴진다. 새삼 고맙다.


반면 책은 구성한 요소들이 전부 그림, 활자 등 시각적인 요소들인 만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티브이는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방인의 포지션이었지만 책에서는 이야기를 함께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책이 좋았고 장르도 가리지 않고 다 읽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책이면 다 좋았다.


책을 고르는 기준도 단순했다. 국어 시간에 교과서에서 특정 소설책에서 가져온 에피소드가 나오면 이 소설의 전체 내용이 궁금해져서 수업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해당 책을 빌리러 가곤 했다. 원미동 사람들, 흰 종이수염 등이 그렇다. 언젠가는 원미동 사람들과 같은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욕심도 가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밌는 점이 위와 같은 상황이 독서 마케팅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책을 읽고자 해도 해당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지 않았을 때에는 당연히 관심이 없다. 하지만 SNS를 이용한 카드 뉴스, 영상 등 광고를 통해 해당 책의 서사의 초입에 발을 들이게 되면 다음 내용이 미치도록 궁금해져서 어떻게든 읽게 된다. 광고가 독서에 재미를 느끼게 되는 집중력의 임계치를 확연히 줄여주는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은 독서량이 훅 줄었다. 재미를 위해 술술 읽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에 읽고자 한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항상 명심하게 되는 순간이다.


어째서 독서량이 줄었을까?


바빠서 라기에는 내 삶에서 가장 바빴던 때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데 그 시절에도 독서를 한 것을 보면 핑계가 확실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 떠올랐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학생이 된 시점부터 독서량이 확연히 줄었는데 이때는 내가 살면서 유튜브를 처음으로 본 기점이라 생각되니 분명해졌다.


신문물이 가져다주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적 자원을 가치 있게 활용하지 못하고 독서에 소홀해지게 된 것이다. 과거와 달리 영상과 더 가까워진 만큼 오랜 친구인 책과 거리가 멀어지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집중력의 임계치도 달라진 기분이다. 독서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첫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엄청난 결단력이 필요하며 계속 페이지를 넘기는 것도 인내가 필요한데 어느 순간부터 손은 빨라지고 뒤 내용이 궁금해 잠도 안 자고 계속 읽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넘길 수 있는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크게 아쉬워하게 된다.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 이 책을 끝까지 완주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집중력의 임계치라 생각한다. 그 구간이 짧을수록 집중이 돼 시간이 금방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집중력이 발휘되기까지의 임계치가 더 길어진 느낌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스마트폰을 보게 되고 짧은 유튜브 클립 한 편을 보고 싶어진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유튜브를 틀어 놓고 보면서 쓰고 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나온 책이 읽고 싶어져 이북 결제를 하고 오는 길이다. 오늘은 다시 소홀해진 옛 친구와 밤을 지새우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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