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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02. 2023

닌텐도와 건담 사이에서

나의 ‘말’, 나의 ‘색깔’을 고민하며

아이의 유치원이 방학했다.

명랑한 은둔자처럼 살아가다 졸업을 앞두고 외로워보이는 아이가 안쓰러워 용기내 엄마들과 만났고, 역시나... 쓸데없는 고민의 밤이 이어졌다. 무려 '닌텐도 스위치'를 구입해 아이에게 '선행'을 시킬 것이냐. 라는_ 


'유행'이 너무나도 많다. 하다못해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도, 아이들이 노는 방식에도 '유행'이 있다. 어느 시대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지역마다, 심지어 유치원마다. 두 번의 유산을 겪으며 몸, 마음은 너덜해졌지만 그 덕에 나의 '아이'를 키우는 방향은 받아쓰기 50점을 받아와도 웃으며 "잘했어. 최선을 다하느라 고생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것. 나름 소박하나 6~7살에 한자 자격증을 따야 하는 유행 앞에서 너무나도 어려운 길이다.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바람에 휘어지는 대나무처럼, 순간 다른 이의 말에 휩쓸려 순식간에 발을 동동 구르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내가 아닌 무언가에게 질질 끌려가는 상황들은 꽤나 부담스럽다. 교육에 관한 것은 어느 정도 정립된 나의 정도에 맞춰 고고한 척 마음을 비우고 있지만 아빠의 취향이 전해져 (트렌드가 아닌) 건담 조립을 좋아하고, 건담 만화를 종종 보며, 컴퓨터로 건담 게임을 한 번씩 하는 아이에게 닌텐도 게임을 '너의 교우관계를 위해서야'라며 들이밀어야 한다는 현실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리해야 할까. 게임이라 싫은 것이 아닌, '아이의 친구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는 친절한 말 아래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마이웨이와 어울리지 않음을 인지하기 때문이겠지.  



이런 고민 속에 올해 처음 펼쳐든 책,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첫 글을 읽으며 나는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이려 해본다. 조선족 작가 '금희'의 첫 소설집의 첫 내용은 한국과 중국 사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연주와 본능적으로 많이, 아주 많이 닮아 있었지만, 같은 배경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 곧 분화의 위기에 놓인 두마리의 도룡농 같아서 도무지 같은 시각으로 함께 현실을 해석할 수 없었다. 반면 닝과 나는 애초부터 한 배경 속에서 살고 있는 오리와 닭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와 배경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개인적인 습관과 취향을 송두리째 공유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 없는 집, p.20, 창비


같은 배경, 같은 시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태어난 집, 살아온 방식, 스스로의 가치관이 다르기에 각자의 습관과 취향을 송두리째 공유하고 같이 할 수 없다. 강과 바다 사이 부유하듯 떠다니며 나의 길이 확실하지 않은 삶이라면 얼마나 무수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될까.


먼저 콘셉트를 정하라구. 그렇지 않구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세상에 없는 집, p.14, 창비


콘셉트. 결국 자신의 콘셉트를 잃고 방황하는 순간 나는, 아이는, 우리의 삶은 중구난방이 되어버릴 것이다. 적어도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선 나의 말, 나의 색깔이 우선이어야 한다. 내가 갖춰야 하는 것은 닌텐도를 사느냐 마느냐의 결정이 아닌, 아이가 필요하다 느낄 때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현명한 조언이었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가장 슬픈 일은 마음속에 의지하고 있는 자기의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없는 집, p.31, 창비


인용된 게오르그 헤겔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나의 고민을 접어본다. 귀는 열어두되 잘 살펴보는 힘으로 나의 세계에 의지해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 누군가가 '당연시 여기는 것'에 떠밀려 평형을 잃은 채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살아가지 않도록 나를, 또 아이를 잘 보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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