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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Feb 12. 2024

작은 인간 1호의 반란

설 연휴,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작은 인간 1호가 작은 인간 2호에게 조금 격한 행동을 했다. 그것 때문에 작은 인간 2호에게 상처가 나고 연한 살갗에서 피가 흘렀다. 화가 난 부모 1이 작은 인간 1호를 향해 소리를 높여 나무라기 시작했다. 부모 2는 언성을 낮추라며 부모 1과 충돌했다. 작은 인간 1호는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며 항변했다. 격동의 트라이앵글은 작은 인간 2호의 상처가 크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 소란 속에서 작은 인간 1호가 끝끝내 자기의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작은 인간 2호에서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한 건 아마 나뿐인 것 같다.


작은 인간 1호는 확실히 변했다. 붙임성 있고 애교 많고 넉넉했던 성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엄청 말 안 듣는다”는 말이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말을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가끔은 부르는 소리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가 필요한 게 없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할 때에는 더더욱.


작은 인간 1호의 변화는 작은 인간 2호의 성장과 맞물려 있는 것 같다. 터울이 조금 지는 동생의 탄생. 첫째에게 둘째의 등장은 ‘나라 잃은 충격’에 비견할 만하고 해서 어른들은 은근히 걱정을 했다. 그게 무색하게 작은 인간 1호는 작은 인간 2호를 예뻐했다.


작은 인간 1호와 작은 인간 2호는 확연히 다르다. 작은 인간 1호는 예쁘다. 예뻐서 소중하고 감싸주고 싶다. 작은 인간 2호는 귀엽다. 치명적으로 귀여워서 자꾸 찔러보고 싶다. 작은 인간 1호는 한 때 어른들 사이에서 ‘안 돼’가 금지어가 되었을 정도로 금지옥엽이었다. 작은 인간 2호는 돌이 되기도 전에 조미김을 맛봤다. 작은 인간 1호는 다소 섬세하다면 작은 인간 2호는 생존에 능동적인 느낌이다. 작은 인간 1호는 2호를 귀여워하고 작은 인간 2호는 1호를 좋아한다.


작은 인간 2호가 기고 서고 걷고 자기의 존재감을 확대해 가면서 작은 인간 1호는 조금 변했다. 2호를 귀여워하면서도 타고난 생존력에서 열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호는 장난감이나 캐릭터 숟가락을 뺏기지 않고 싶어 하면서도 2호의 격렬한 반응에 이내 넘겨주곤 했다. 작은 인간 1호는 작은 인간 2호의 사자후를 견디지 못해 넘긴 거였다. 어른들의 ‘착하다’는 칭찬이 과연 작은 인간 1호에게는 보상이 되긴 했을까.


평생 첫째였던 적이 없으니 첫째인 작은 인간 1호의 마음도 변화도 완전히 이해할 턱이 없다. 다만, 예닐곱 번을 부르고서야 동영상을 잠시 멈추고 침대에서 일어나 아는 체를 하던 이유를 가늠해 볼 용의는 있다. 작은 인간 1호에게는 작은 인간 2호의 치근덕거림과 포효가 없이 동영상을 보는 시간이 온전한 자기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자의와 상관없이 동생과 함께 자고 일어나고 생활하는 와중에 소극적이지만 자발적으로 고립되는 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작은 인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뭐, 이렇게, 헤어질 때 제대로 인사를 안 해 준 걸 나름 이해하려고 있다, 작은 인간 1호야. 어른은 이렇게 여러 모로 소갈머리를 넓혀야만 하는 고된 삶을 살고 있단다. 작은 인간은 낮잠 자고 일어나도 잘 잤다고 칭찬받는데 나는 낮잠 자고 일어나면 환멸 어린 잔소리를 듣는 통에 그대들에게 질투심이 싹트는 것도 억눌러야 하는, 매사가 수행인 삶이란다. 작은 인간 1호, 작은 인간 2호는 조금은 더 오래오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지내기를 바라본단다. 그래도 아는 체는 해 줘.



사족. 그런데 왜 요즘 애들은 ‘왜?’라는 질문을 잘 하지 않는 걸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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