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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Oct 07. 2024

순례자 선착순 무료 점심 티켓이 뭐야?

Day 9 (1) 산티아고 대성당 옆 화려한 호텔의 비밀

2024년 9월 12일 목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9


산티아고 대성당 옆 그 화려한 호텔의 비밀 알아?
아름다운 전통,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아마 몇일 전이었을거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오전 근무를 하는 날이라 늘 그렇게 하듯 조금 일찍 도착해 순례자들과 함께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근데 몇분이 “우리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응, 안전하게 점심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뭐 이런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시는 걸 듣고 궁금증이 생겼단 말이지. 열명 이라는 숫자들을 언급하시고 점심이라는 말이 오가는데 “그게 뭐예요?”하니 순례자 사무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 순례자 10분에게는 점심 식사를 제공한다고 한다는게 아닌가? 어라, 나 이런 이야기 들어본적이 없는데… 순례자 사무실 안에 내가 모르는 구내 식당이라도 있는건가? 이거 사실이긴 한거야? 맞다면 대체 어디에서 언제 밥을 주는지 궁금해지는게 많았다 그 사이 사무실 문이 열리고 안내요원분이 우리 봉사자들을 먼저 안에 들어가게 도와주시는데 그분의 손에 티켓같은 무언가 있다! 아 정말로 뭔가를 나눠주시는 걸 보고 신기하지만 봉사를 시작하러 들어가야해서 일단은 업무를 시작하고, 나중에 사무실이 조금 조용해졌을때 이 티켓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봐야지 했다.

 

어제 나눠주기 전에 찍어둔 사진과 오늘 식사를 하러 온 순례자의 티켓을 찍어보았다

 

 드디어 좀 한가할 때 가장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은 사브리나에게 정말 매일 선착순 10명의 순례자들에게 무료 식사 티켓을 주는게 맞냐고 물어봤다. 사브리나는 “당연하지!” 하면서 궁금해하는 내 모습에 신이나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 것처럼 분위기를 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산티아고 대성당 왼쪽에 엄청 큰 화려하고 큰 파라도르라는 호텔 알지? 그 호텔이 옛날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자 숙소였어. 힘든 여정을 마친 순례자들을 환영하고 돌보는 곳이었지. 물론 그곳에서 순례자들이 식사들을 했을 거 아니야. 지금은 그 병원이 호텔이 되었지만 순례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전통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거야. 상징적인 의미로 매일 아침 순례자 사무실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10명에게 그 호텔에서 먹을 수 있는 점심식사 티켓을 주는거야.”

 뭐라고! 이런 어마어마한 기회가 있었다니 게다가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지않나. 내가 이 식사를 먹을 수 있다면 순례길 역사의 한 전통을 체험하는 것 뿐만 아니라 5성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기도 하니 이 얼마나 특별한 기회인가! 내가 걸을 때 왜 난 이런 걸 몰랐는지 크… 아쉬워도 너무 아쉽다!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작년에 아주 이른 새벽에 길을 시작하더라도 전통의 한부분이 되기 위해 밤을 지새며 걸어왔을 것 같다. 이 감동적인 카톨릭 전통을 체험하는 것 자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는 정말 최고의 축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브리나가 이 티켓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정말 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이 티켓을 받은 사람들 조차도 실제 점심 식사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이 티켓에 무엇인지 모른다 (용도는 물론 의미를 모르기도 한다)

둘째 어디에서 먹어야 하는지 모른다 (적혀 있지만 애써 찾아보는 노력은 안하신다고들 한다)

셋째 개인 스케줄이나 안맞거나 시간을 놓쳐 못간다

 등이 있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나도 이해가 가더라고. 순례길을 이미 걸은 나도 그렇고 10년 전에 걷고 늘 순례길에 관심이 있었던 우리 언니도 이거에 대해 몰랐잖아. 게다가 우리가 순례자 사무실에 제일먼저 도착해서 이런 티켓을 받았다고 해도 의미와 가치를 모르니 무슨 점심 할인 쿠폰인가? 이러고 받아놨다가 그냥 먹고 싶은거 어디서 먹고 시간 지나 못갈 것 같긴하다. 역시 사람은 아는만큼 보인다더니 지금이 딱 그런 케이스라고 할까. 나의 다음 순례길에는 이 영광을 꼭 한번 체험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타오른다. 이것을 위해서라도 산티아고 순례길 한 번 더 걷기로 반확정되는 순간이다. 가끔 이 티켓의 의미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본인이 못갈 것 같을 때 순례자 사무실에 다시 반납을 해주시거나 다른 순례자들에게 자체 양도를 하신다고 하는데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순례자 사무실에 반납하시면 받으신 직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새롭게 오시는 순례자들에게 드리는 그런 선순환이 참 사려깊다고 생각되었다.


순례자에게 지급되는 무료 점심 티켓

언제 : 매일 아침 오전 9시
어디서 : 순례자 사무실 정문에서
누구에게 : 순례자 여권을 지참한 선착순 10명의 순례자분들에게
어떻게 : 간단한 종이 티켓 형태로 (이것을 꼭 제출해야 레스토랑 입장이 가능하다)
무엇을 : 호텔 파라도스의 레스토랑  Enxebre Restaurant 에서 순례자 코스 메뉴 점심을 오후 1시에
왜 : 과거부터 이어온 순례자 환대와 영적 여정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너무 궁금하지 않나요? 순례자 무료 점심!
제가 그 궁금증을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순례자 점심을 제공하는 Enxebre와 적당한 가격의 일반 메뉴

 

 어쨌든 말이야 다시 오늘로 돌아가서 나의 일상에 대해 말하자면 순례자 사무실에 오후에 출근하는 날이라 산티아고에 일찍 도착해 기념품 샵들 구경하고 산책하며 아주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하는 사진들도 찍고, 모리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하며 글 좀 읽을까 하고 들어가 주문을 하고 앉았단 말이지. 그 때가 12시 반 쯤이었는데 갑자기 순례자 무료 점심이 머리에 떠오르며 오늘 아니면 내가 이것에 대해 제대로 알아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급하게 테이크 아웃으로 바꿔 커피를 들고 서둘러 파라도르 호텔로 걸음을 옮겼다. 순례자 점심은 정확히 오후 1시에 제공되는데 해당 레스토랑은 브런치 메뉴의 가벼운 식사를 주로하는 Enxebre 레스토랑이었고 문이 닫혀있기에 냅다 파라도르 호텔 리셉션에 가서 부탁을 했다.

 “Enxebre에서 순례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거 맞죠? 저도 그것과 똑같은 메뉴를 주문해서 먹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가격은 상관없지만 꼭 같은 메뉴를 먹고 싶어요”

 다행히 영어도 유창하고 친절하신 호텔 직원분께서 순례자 코스메뉴를 개인주문 할 수 없는 걸로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다며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곧 돌아왔다.

 “죄송하게도 역시나 순례자 메뉴는 매일 레스토랑 사정에 따라 바뀌고 파는 메뉴가 아니라 주문할 수 없다고 하네요.”

 “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확인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순례자 식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서 그랬어요. 그럼 일반 예약으로 1시 가능할까요?”

 이렇게 아쉽지만 운이 좋다면 어깨넘어라도 어떤게 나오는지 볼수라도 있지 않을까해서 같은 1시에 식사 예약을 하고 Enxebre로 서둘러 내려갔다.


미리 준비된 순례자 점심 셋팅과 달시 아저씨 그리고 오늘 함께하신 7분의 순례자분들

 

 정말 정확히 오후 1시에 문을 열 계획인지 레스토랑의 문은 아직 닫혀있었고 순례자처럼 보이는 몇몇분들이 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길래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처음 말은 건 사람은 브라질에서 온 달시 아저씨와 폴란드에서 온 젊은 여자 마리아. 다행히 이 분들이 굉장히 사교적이셔서 내가 순례자 사무실에서 봉사하고 있고, 이 식사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따가 뭐 먹는지 사진 좀 찍자하니 흔쾌하게 원하는대로 하라고 해줘서 마음이 놓였다. 순례길 이야기들을 나누며 짧은 시간에도 금새 친해질 수 있는 우리는 순례자라는 이름 하나로 금방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인것 같다. 달시는 오늘 세번째로 사무실에 도착한 사람이라는데 언제 도착했냐고 물으니 아침 7시 반이었다고 한다. 와우 이거 티켓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나름 아침일찍 서둘러 산티아고에 입성하는구나싶어 또 놀라웠다.

 정확히 오후 1시가 되고 레스토랑이 문을 열고 다같이 들어가며 혹시 모르니 안내하시는 직원분께 저도 순례자와 같은 음식을 시키면 안될까요 물어보니 메뉴에 없는 메뉴들이 대부분이라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역시나지만 일반 메뉴를 시키기로 하고 양해를 구해 순례자들 바로 옆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사브리나의 말이 맞았던게 10명의 초대받은 순례자 중에 7명 밖에 안 오신거 있지. 달시는 계속 자기들과 함께 앉자고 초대했지만 그래도 호텔측에 결례를 끼치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괜찮다고 말하고 내 음식들을 얼른 주문했다. 이번 순례자의 점심식사에 오신 순례자분들이 너무나 밝고 행복하신 분들이셔서 음식 사진 찍는 것도 많이 도와주시고 나와 함께 사진찍자고 해주기도 하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 우연찮게 이탈리아분이 2분이나 계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누고 편한 시간이 되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그래서 어떤 음식들이 나왔을까요
위부터 갈리시안 엠빠나다와 갈리시안 스프, 끓인 고기와 야채 그리고 산티아고 파이


 자 그렇다면 순례자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은 어땠을까? 일단 입장하자 마자 가장 안쪽에 순례자 10명을 위한 테이블 셋팅이 가지런히 되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미리 준비된 테이블을 보기만해도 순례자를 환영한다는 메세지가 전달되는 것 같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음식은 총 4가지 코스로 나눠 나왔는데 제일 처음에는 갈리시안 스타일 엠빠나다가 먹기 좋게 썰려 나왔고, 두번째로 갈리시안 스프가 나왔다. 세번째 코스인 메인 메뉴는 끓인 고기와 야채라고 해서 내가 무슨 고기냐고 물어보니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섞인거라 특정짓지 않고 끓인 고기라 부르신다고 하셨다. 물과 빵은 기본으로 준비되는데다가 와인도 레드와 화이트 와인 둘 다 서브되고 원하는 만큼 병채로 더 가져다 주시는게 정말 아낌없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망의 디저트는 여러분이 상상하실 수 있는 바로 그 ‘산티아고 파이’. 이렇게 순례자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완벽한 디저트를 끝으로 순례자 식사는 마무리 된다.

 1시부터 자리를 잡았지만 따뜻한 음식들이 준비되는데 나름의 시간도 걸려 내가 자리를 떠야할 1시 50분 경에도 순례자분들은 즐거운 식사를 이어가고 계셨다.


 총 평을 하자면 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호텔 파라도르의 5성급 명성에 맞게 서비스도 정말 세세하고 무엇보다 친절하셔서 먹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일반메뉴를 먹는데도 가격대가 너무 높지않은 2만원 정도였고 디저트들이 얼추 만원 정도에 커피는 한잔에 3천원에서 7천원 사이였으니 파라도르가 운영하는 몇개의 레스토랑 중에서는 대중적인 포지셔닝을 가진 식당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티아고에서 좋지만 합리적인 식사를 대접해야 할 때가 있다면 한번쯤 고려할 것 같은 소박하면서도 전문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메뉴에 갈리시안 음식들을 여러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 한 번 쯤 들려도 될 곳으로 추천. 나는 와인 한잔에 돼지고기와 치즈, 밤이 들어간 샐러드에 빵이랑 함께 해서 먹었는데 다해서 15유로 (2만 2천원)를내고 나왔으니 메인을 하나 더 추가해서 먹는다해도 합리적인 가격이 될 것 같다.


한국 순례자들 타입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근데 정말 이 ‘순례자를 위한 매일 선착순 10명에게 제공하는 전 병원, 현 5성급 호텔에서의 무료식사‘라는 이벤트는 너무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보상 아니야?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가 이 사실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었는지 나는 그게 더 신기할 정도였다. 정말 한국인이 좋아할만한, 용감하게 밤에 걸어서라도 도전할만한 아름다운 전통 같은데 말이야. 한국인인 우리는 또 이런 스토리가 있는 거 좋아하니까.

 아! 도착 시간에 대해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순례자 사무실은 정확히 오전 9시에 열고 내가 아침 근무를 위해 도착할 때 보통 적게는 열분정도, 많아야 스무분 정도만 줄을 서 계신다. 내가 관심을 갖고 몇일간 가장 먼저 도착한 분들께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을 물어보니 어떤때는 아침 7시 반, 어떤 때는 아침 8시에 도착하셨다는 분들도 계셔서 거참 ‘이 시간 안에 오시면 선착순 무료 점심 티켓 확보 가능하세요!’ 라고 말하기엔 굉장히 애매한 상황. 말 그대로 그날의 다른 순례자들이 언제 도착하는지에 달린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말하자면 아침 8시 정도 맞춰 오시면 시도는 해보실 수 있을 것 같으니 이건 참고만 해주셨으면 좋겠다. 본말전도가 되면 안되니 항상 부수적인 것보다는 우리의 주된 목적인 순례길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걷는거에 더 집중하는 걸 잊지는 말자.

 내가 이 사실에 대해 무지해서 못갔던만큼 우리 많은 한국인 순례자들이 이 따뜻한 존중을 담은 무료 점심 식사를 앞으로 많이 경험해보시길 바라며 정말 글로 꼭 남겨봐야지 다짐을 했었다. 내가 경험을 못하면 설명도 못드리니까 열심히 순례자 친구들 만들어가며 음식 사진들도 찍어 준비한 이 글이 곧 산티아고로 떠날 우리 한국인 순례자 분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나 작고 재미난 동기부여가 되시길 바라는 바이다. 순례길은 작은 희망으로도 행복해지는 길이니까 여러분의 걸음이 행복하시길. 내년에 내가 다시 순례길을 걸었을 때 우리가 순례자 사무실 앞에서 만나 함께 티켓 받고,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인연으로 만날지 또 누가 알겠어.    

 식사를 마치고 나는 서둘러 순례자 사무실로 달려가본다. 오늘 아직 근무 시작도 안했다는게 안믿긴다. 가서 또 열심히 다른 순례자들에게 콤포스텔라를 발급드려보자!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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