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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Oct 08. 2024

나랑 결혼해 줄래? 산티아고에서의 프로포즈

Day 9 (2) 사람과 웃고, 사람과 우는 산티아고 자원봉사자의 하루

2024년 9월 12일 목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9


서둘러 순례자 사무실로 돌아가봅니다
날씨가 조금 흐려도 산티아고 대성당은 멋지다

 

 순례자 무료 점심 식사를 알아보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급하게 움직인 터라 시간이 빠듯해졌다. 특별한 이 점심에 초대받으신 재밌는 순례자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지 뭐야.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한 뒤 순례자 사무실로 달려간다.

 오늘은 오후 근무라 들어가면서도 이미 긴 줄의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사람이 많든 적든 나는 파이팅이 넘치는 게 이곳에서 하는 일들은 내가 좋아하는 설렘으로 가득해서인 것 같다. 가게에서 샀는데도 꼭 내 몸에 맞춰 제작된 듯한 옷을 찾은 느낌이랄까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자원봉사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내 적성과 관심사에 꼭 맞는 일 같아 매일 이곳으로 향하는 시간이 즐겁다.

 오늘은 캐나다에서 오신 노부부에게 너 영어를 참 ‘flawless‘하게 한다고, 여기 내 신랑보다 영어 더 잘하는 것 같다는 기분 좋은 과찬도 듣고, 이탈리아 할머니는 나 참 예쁘다고 사랑 섞이신 칭찬을 해주시는 등 무언가 평소보다 더 러블리한 하루다.


쌍둥이라면 순례길 꼭 같이 걸어야죠!

 미국에서 오신 진이라는 아주머니가 내 테이블로 오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분이 쌍둥이와 함께 걷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아쉬운 말씀을 하시는 걸 듣고 너무 반가워 소리를 질렀다.

 “어머! 저도 쌍둥이예요! 저흰 작년에 함께 산티아고를 걸었어요!”

라고 하니 너무 부럽다고 하신다.

 “내 쌍둥이는 걷는 걸 너무 싫어해서 이번이 내 두 번째 산티아고인데 두 번 다 같이 데려오질 못했지 뭐야.”

 “쌍둥이라면 꼭 한 번은 같이 걸어봐야죠! 세상에 이보다 소중하고 완벽한 워킹 파트너가 어디 있겠어요! 다음번에는 꼭 함께 하실 수 있게 응원할게요!”

라고 하니 내 손을 깍지껴 잡으시며

 “내가 제리에게 꼭 그렇게 전할게! 순례자 사무실에서 나한테 콤포스텔라를 준 쌍둥이가 그랬다고, 쌍둥이들은 꼭 함께 걸어야 한다고 했다고 네 핑계를 대겠어!”

 내가 쌍둥이와 함께 걸었던 순례길은 정말 소중했고 완벽했다고 하니 진이 자신의 쌍둥이에게 꼭 내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고 사진을 같이 찍어줄 수 있냐고 하신다. 사무실 안에서는 살짝 곤란하니 출구 쪽으로 얼른 나가 찍고 들어왔는데 아마 다음 순례길을 제리와 함께 걷기 위한 설득에 증거가 필요하신 거였으리라. 진 아주머니가 얼마나 쌍둥이인 제리와 함께 걷고 싶으신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럼, 쌍둥이와 함께 걷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말고! 쌍둥이란 뭐랄까 나를 가장 오래 알고 잘 아는 가족과 죽고 못 사는 절친이 한데 섞인 메가버전의 영혼의 단짝이랄까. 나에게 소울메이트는 우리 신랑이 아닌 우리 쌍둥이 언니이다. 아 정말 미안한데 말이야… 우리가 가끔 장난으로 누구와 누가 강물에 빠졌다면 누굴 먼저 구하겠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솔직히 말이야 우리 언니랑 우리 신랑이 물에 빠지면 난 우리 언니를 구할 것 같다. 쌍둥이는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그런 존재라고. 쌍둥이들 사이에는 쌍둥이가 아니면 알기 힘든 정말 큰 유대와 사랑이 있답니다.

 여하튼 오늘 미국에 사는 쌍둥이 제리에게 언니 진을 통해 아주 진한 메시지를 하나 보냈군. 쌍둥이는 꼭 한 번 순례길을 같이 걸어봐야 한다고 말이다. 진 아주머니의 세 번째 순례길에는 그녀의 반쪽 쌍둥이 제리가 함께하길, 멀리서라도 늘 응원해야겠다.


나의 비카리에 프로(Vicarie Pro)

 진 아주머니와 같이 실컷 웃을 수 있는 순례자분들이 있다면 늘 마음을 동하게 하는 슬픈 사연의 순례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 페드로라는 정말 곰 같은 느낌의 덩치 큰 스페인 남자 한 분이 오셨는데 덤덤하게 순례길 이야기를 해주시다가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시더니 비카리에 프로를 해줄 수 있냐고 물어오셨다. 당연하다고, 누굴 위한 건지 말씀해 주시겠냐 하니 삼촌을 위한 거라며 우시더라. 산처럼 보였던 사람이, 정말 안 우실 것 같으신 이분이 우시니 나도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온다. 조심스레 휴지를 건네고 내가 이름을 잘 쓸 수 있게 적어 달라한 삼촌의 성함을 받아 들고 눈물을 훔쳐가며 콤포스텔라에 정성을 다해 성함을 써드렸다.


Pedro Martinez Mercedo


 순례자 사무소에서 봉사를 시작하고 비카리에 프로와 내가 손글씨로 고인분들의 성함을 적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짐한 게 하나 있었다. 적어도 ‘내가 써드리는 비카리에 프로는 정성을 다해 예쁘게 써드리자’. 그 뒤로 아주 조금씩이지만 시간 날 때 예전에 했던 캘리그래피를 연습했는데 오늘 삼촌의 성함을 써 내려가는 날 보며 이 페드로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거신다.

“내가 본 캘리그래피 중에 제일 예뻐. 고마워.”

 이때 또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이분이 내게 고맙다는 건 예쁜 글씨에 대한게 아닌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의 이름을 정성으로 쓰는 내 모습을 존중으로 받아들이셔서 그러신 것 같았다.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그런 모습이 난 더 감동이었고 이렇게 조용하게 슬픔을 대하시는 분들 마음속에 가득 찬 슬픔들이 감히 가늠은 안되지만 언젠가 평온을 되찾고 다시 행복하실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갈 때까지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내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 하시던 파블로 아저씨. 이렇게 오늘도 나는 눈물 없이는 못쓰는 비카리에 프로를 써간다.


 파블로 아저씨를 보내고 두어 시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옆에 앉은 스페인 봉사자 베아트리체 할머니가 나를 잡아당기며 귀에 대고 “비카리에 프로! 비카리에 프로!”라고 아주 빠르게 속삭이신다. 이 베아트리체 아주머니는 오직 스페인어만 하시기에 나와 대화를 많이 못 나누셨는데 내가 사탕도 가져오고, 휴지도 늘 준비해 주고 사람들과 웃고 울고 하는 걸 보고 내가 비카리에 프로를 받으러 오시는 눈물 나는 사연들의 순례자를 더 잘 대해줄 것 같아 나를 부르신 것이었다. 가끔 연세 드신 자원봉사자 분들이 순례자들과 감정적으로 공감해 주시는 걸 힘들어하시기도 한다. 사람들이 각기 다른 성향을 가졌으니 원래 공감하는 걸 수줍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표현을 잘 못하시는 분들도 계신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난 이 베아트리체 할머니가 날 보고 있다가 비카리에 프로를 다루기에 더 적합하다고 봐주신 것도 고맙고, 말도 안 통하는 내게 와 도움을 청하신 것도 너무 귀여우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분 나름대로 순례자를 생각해서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나름의 배려하신 선택이었기에 역시나 봉사자분들이 순례자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마음은 다 따뜻하시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그래서 우시고 계시던 이 새로운 순례자분께 완주 축하드린다고 사탕도 드리고, 휴지도 건네드리며 이야기 들으며 나도 같이 울고, 또 정성을 다해 비카리에 프로를 써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신 소중한 사람을 추모하는 방법으로 비카리에 프로와 같이 아름다운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 카미노 길에서 비카리에 프로로 누군가를 추모하고 그분들에게 헌정하는 길을 걸으시는 모든 분들의 길이 평온하시길, 순례길을 통해 마음도 건강해지시길 바라본다.


괴로워도 힘들어도 나는 이 길을 끝낼 테다

 오늘은 한국분들을 열 분 정도 뵐 수 있었던, 지금까지는 하루에 가장 많은 한국인 순례자분들을 뵈어 신기하고 즐거웠던 날이었다. 건장한 아들과 함께 걸으신 어머니, 친구끼리 함께 걸으신 중년의 두 여자분, 이제 결혼한 지 1년이 갓 넘은 예쁜 부부 등 조합도 너무 다양했고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셔서 콤포스텔라를 발급해 드리는 나도 즐거웠다. 그중에서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한 한 한국 청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이 분의 이야기가 정말 너무 험난한 모험기처럼  들렸거든.

 긴 프랑스 생장길을 걸으셨는데 사진작가를 준비하시며 이번 순례길에서도 사진을 찍는 것도 하나의 목표로 마음에 담고 시작하신 순례길이셨다고 한다. 그런데 순례길 이틀째 핸드폰의 카메라 렌즈가 깨지고, 가져오신 전문 카메라들은 방전이 되어 사용을 못하게 되었고, 늑대에 쫓긴 적도 있는 데다 말벌에 쏘이기까지 하시는 등 별의별 일이 다 있으셨다고 한다. 화가 나서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고 정말 체념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난 그 모습이 많이 슬퍼 보였다. 길을 걸으며 순례길이 나를 거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셨고,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기만 하셨다고 하는데 이봐! 짧지도 않은 프랑스 길을 다 걸어내셨잖아! 나는 그 끈기가 정말 놀라웠다. 만약 내가 이 순례자분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하면 학을 떼고 한 순례길 3~5일 차에 이건 아니다 싶어 그냥 돌아왔을 것만 같은데 이분은 그 힘든 일 다 겪으시면서도 버텼잖아! 그리고 끝내 완주라는 걸 하셨잖아. 나는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이 분 안에 엄청난 힘과 잠재력이 있다고 보였는데 본인은 아셨을까 모르겠다. 더 좋은 일들이 있으려고 이번 순례길이 힘들으셨던 같다고 힘내시라고, 축하해야 하는 거라고 위로를 많이 해드렸는데 난 이분이 언젠가 사진작가로 크게 성공하시지 않을까 싶다. 본인도 모르는 뒷심이 있으셔서 원하는 일은 뭐든지 해내실 것 같아 이 분의 이름도 외워두었다. 나중에 사진작가로 유명해지실 테니 그때 ’아, 역시 내가 맞았구나. 저분 유명해지실 줄 알았어. 보통분이 아니셨어.‘라고 내 보는 눈이 맞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그 순간이 올 것 같다. 순례길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저 꽃길이진 않겠지만 나를 시험하는 와중에서도 몇 번의 그만두고 싶었던 상황에서도 완주하신 이 순례자분의 미래를 응원할 테다. 파이팅!


 나랑 결혼해 줄래?
이제 우리 약혼한거다!


 오늘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자원봉사는 정말 화려한 이벤트로 대미를 장식했다. 사무실 업무가 끝나기 10분을 남기고 옆에 앉은 베아트리체 할머니의 테이블로 이탈리안이 커플이 도착했다. 영어도 아예 못하시고 오직 스페인어만 하시는 베아 할머니가 언어로 좀 고생을 하시는 것 같아 내가 이탈리아어로 순례자 커플에게 대신 말을 전해드리고 있었다. 대화를 이어나가다 내가 순례길이 어땠냐고 물으니 남자분이

 “지금 성당 앞에서 프로포즈를 했는데 예스라고 받아줬으니 순례길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지!”

 라며 웃는 게 아닌가!

 “어머나, 그건 순례길이 좋았던 정도가 아니라 최고였다고 할 수 있잖아! 반지 좀 자랑해야지! “

 하고 말하니 여자분이 정말 수줍지만 환하게 웃으시면서 반지로 반짝이는 왼쪽 손을 보여주신다. 이런 건 또 축하하기 좋아하는 우리 이탈리안 니콜라에게 알려야지 싶어 니콜라에게 여기 막 프로포즈한 이탈리안 커플이 있다고 알려주니 역시나 그가 달려온다. 아 너무 웃긴 상황이야. 우리의 니콜라 할아버지가 다 같이 모여 축하하자고 이 커플을 위한 박수를 유도해 주신다. 그런데 그 순간 역시나 같은 이탈리안이 아니랄까 이 남자 순례자분이 다시 한번 우리들 앞에서 여자 순례자분께 무릎을 꿇고 다시 한번 결혼해 주겠냐고 묻는 쇼맨십을 보여주신다. 이거 너무 이탈리안 아닌가요. 사무실에 있던 모든 봉사자들과 직원들, 순례자들이 함께 박수로 이 진귀한 사랑을 축하해 줬다. 정말 재밌어도 너무 재밌는 신명 나는 오늘의 사랑이야기였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이 남자분은 순례길을 걷는 내내 프로포즈 할 반지를 품고 있었다는 거 아니야? 반지를 가지고 순례길을 걸으시며 머릿속으로 얼마나많은 연습을 하셨을지 대강 상상이 가 미소가 번진다. 280km의 포르토 길을 걸으시면서 미래의 내 아내가 될 사람을 얼마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봤을지도 궁금해지네. 그래도 순례길의 모든 걸음이 결혼에 대한 확신을 더해준 건 맞겠지? 생각보다 많은 연인, 부부가 순례길을 함께 하는데 그들이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이해하게 되는 은혜로운 길이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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