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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Oct 10. 2024

인생 최고의 빤 꼰 토마테는 산티아고에서!

Day 11 나의 순례길 추억을 따라 시작한 하루

2024년 9월 14일 토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11


서둘러, 인생 빤 꼰 토마테를 다시 찾아가는 거야!
Bar a concha와 내가 순례자 여권에 가장 마지막으로 찍었던 바로 그 세요


 오늘 순례자 사무실 출근은 오후 2시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 라바콜라(Lavacolla)라는 마을로 향한다. 작년에 언니랑 순례길 마지막 날 산티아고 입성하기 전에 먹었던 아침 식사가 잊혀지지가 않거든. 그때 정말 어둑어둑했던 숲길을 두어 시간 걸은 뒤 만났던 작은 바에서 내 인생 빤 꼰 토마테를 만나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승무원일 때 워낙에 스페인 비행도 많이 했고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스페인을 심심치 않게 자주 여행했는데 난 그 많은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빤 꼰 토마테가 맛있다고 느꼈던 적이 없다. 뭐랄까 적당한 빵 위에 토마토 갈다 말은 물을 찔끔 적셔 나오는 듯한 빵? 아니면 토마토 향과 붉은 색깔만 입힌 듯한 구운 빵 정도로 레스토랑 어딜 가도 ‘이걸 왜 시킬까?’ 싶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맛있었던 적이 없었거든. 유럽사람인 신랑이랑 스페인에 가면 식사와 곁들일 빵 정도로 빤 꼰 토마테를 시킨 게 다였는데 어머나! 작년 산티아고에서 정말 대박 맛집을 찾은 거지. 그것도 순례길 마지막 날에 말이야.

 당연히 내가 빤 꼰 토마테를 좋아하질 않았으니 그날 바에서 시킬 생각도 없었고  화장실을 사용할 겸 아침 식사도 할 겸 도착한 Bar a concha에서는 내가 아침에 먹기 좋아하는 달달한 빵에 커피나 한 잔 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달달한 빵이 없었던 거지. 뭔가 먹긴 먹어야 남은 두어 시간마저 잘 걸을 텐데, 안개도 잔뜩 낀 날에 으슬으슬해서 에라 모르겠다 따뜻한 빵 중 아는 거 시키자 해서 주문했던 게 바로 빤 꼰 토마테.

 우리 언니는 평소와 같이 스페인 국민 코코아 콜라카오를 시키고 난 코르타도를 시켰는데 음료보다는 같이 나온 빤 꼰 토마테가 너무너무 맛있었지 뭐야. 일단 양이 엄청나게 커 보이는 두 조각의 빵이 나오는데 이게 생각보다 엄청 겉바속촉이라 누르면 바삭하지만 푹 들어가는 숙성된 빵 같은 느낌이라 질감이 진짜 가벼웠다. 잘 구워진 좋은 빵은 원래 올리브 오일 하나만 뿌려도 맛있는 법인데 여긴 위에 뿌려진 토마토 즙도 뭔가 달라! 대부분 간 토마토 즙을 살짝 올리는 편인데 여긴 신기하게 페이스트같이 진한 소스 같은 걸 아주 얇게 펴 바르신 것 같았다. 덕분에 빵은 덜 젖고 바삭함을 유지하면서 토마토맛은 진하게 느껴지는 게 올리브 오일과 함께 천국 가는 맛이었지.


 내가 작년 순례길 다이어리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걷게 되는 날 꼭 이 단순하지만 천국과 같은 맛의 빤 꼰 토마테를 다시 먹으리라!!!‘ 막 느낌표를 여러 개 써가며 적어놓은걸 보고 이번에 다시 들리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 순례길을 다시 걸은 건 아니지만 내가 지내는 자원봉사자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되기에 (걸어서 가면 1시간 반이 걸리는 6km 정도의 거리) 이때다 싶어 바로 오늘 실행하기로 결정. 이제 정말 며칠 안 남은 이곳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기 위해 나름의 순례길의 추억을 따라 시작해 보는 하루다.

 버스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표 계산을 잘해서 알맞은 시간대의 버스를 타고 라바콜라로 향한다. 공항으로 가는 방향의 버스였는데 웬일이야. 버스가 만석 수준을 넘어 사람들이 다 찡겨 들어가 있다. 스페인에서 꼭 평일 오후 7시 강남의 퇴근 버스 수준으로 사람이 입구까지 꽉 차있는 건 또 처음 보네. 유럽과 거리가 먼 이 어색한 그림은 뭐지?

 아마 1유로라는 강점을 가진 산티아고의 버스라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오전 10시쯤이니 이제 슬슬 출발하는 비행기 편이 많아지는 시간이기도 해서 꽉 찬 듯했다. 너무나 다행인 게 버스 정류장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큰 여행 가방을 멘 두 여자분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탑승이 불가할 정도로 공간이 협소해서 그나마 짐 없는 나 하나만 겨우 문 앞에 자리 잡아 탈 수 있었다. 그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이 버스 아니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기에 뭔가 아슬아슬하지만 순조롭게 넘어가는 느낌이 나쁘진 않군그래.


*** 산티아고에서 공항 가는 6A 버스는 현금 1유로에 산티아고 어디에서든 30분 정도면 공항에 데려다줘 많은 순례객과 여행객이 애용한다. 운행 간격이 30분 정도라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 하는데 출발하는 비행기들이 많아지는 오전과 이른 오후 시간에는 더 여유 있게 나오시길 추천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운행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늘 미리 확인하고 계획하시길 바란다. 정말 추천하는 앱으로 Moovit을 다운 받으시면 실시간 버스를 이용한 시간 계획도 짜실 수 있고 버스 변동사항도 확인 가능해서 매우 추천이다. 이건 필수임! ***


행복의 맛, 빤 꼰 토마테
(좌)작년 이른 아침에 먹었던 빤 꼰 토마테와 (우) 오늘 시킨 빤꼰토마테

  

 밝은 대낮에 찾아온 Bar a concha는 내가 들렸던 어둑했던 아침과 똑같이 투박한 민낯 그대로의 소박한 느낌이다. 밖에는 몇몇의 순례자들이 커피와 스낵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에 비해 가게 안은 의외로 조용했다. 바에 다가가 작년에 내 주문을 받으셨던 것 같은 낯익은 얼굴의 아주머니께 빤 꼰 토마테와 코르타도를 주문한 뒤 언니와 앉았었던 그 자리에 짐을 풀어본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작년과 꼭 같은 모습의 빤 꼰 토마테에 웃음이 나온다.

 ‘일 년이 지나도 그대로구나.’

 순간 내가 순례길의 추억을 따라 이곳 산티아고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추억 속으로의 여행도 할 수 있다니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론 인생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거구나.‘’, ‘내가 행복해하는 거 더 많이 하면서 살아야겠다.’ 이런 참 별거 아닌것에서 행복해하는 내가 기특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너무 소소한 건가싶어 달짝 씁쓸한 기분이 든다. 아직도 내 많은 지인들이 비행을 하며 보기엔 화려한 삶을 살고, 누군 결혼해서 명품 차를 타고 다니고 철마다 천만 원이 넘나드는 가방을 산다. 근데 나는 말이야 스페인의 시골 산티아고에서 2.6유로(한화 3800원)의 빵 두 조각에 진심으로 행복하거든. 기분이 묘하다.

 아,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누가 뭘 선물 받았다, 누가 뭘 샀다, 누가 승진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순간 부럽긴 해. 근데 그런 마음이 이제는 오래가진 않는다. 가장 주요한 건 나와 내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있는가, 내 파트너가 나를 존중해 주는가, 내가 행복해지는 일들을 하고 있는가, 자주 웃을 일이 있고, 작은 거에서 자주 행복해하는가 이것들만이 중요한 거라는 걸 이제는 알거든. 그리고 난 이 모든 박스가 채워진 꽤나 행운인 사람이라고 늘 생각한단 말이지. 그전에도 어떤 가치가 인생에서 더 중요한지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이런 깨달음들이 좀 더 확고하게 자리 잡았던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말이 길어졌지만 정말 하찮은 토마토 빵이 이렇게 복작복작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게 한편으로 또 어이가 없는 웃긴 아침이다.


 크게 한입 빤 꼰 토마테를 베어 먹어 본다. 겉면이 기분 좋게 바사삭 소리를 내며 씹히는데 안은  또 부드럽다. ‘거참 여기 조리사님 빵 좀 불에 그을릴 줄 아시는 분이네.’ 생각이 절로든다. 주문하자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한 5분 이상 걸렸나? 안에서 불을 켜시고 맛있고 따뜻하게 준비된 빵을 구워내 오시는 것 같은데 정말 너무 맛있다. 조금 많다 싶을 정도였지만 어느새 접시에 있는 오일까지 빵으로 싹싹 닦아 먹어 비운 뒤 가게를 나선다.

 아주 소박한 음식이 주는 담백함이 너무 좋은 게 바로 빤 꼰 토마테다. 게다가 이곳은 넉넉한 양이 더해져 배가 다 불러와 기분도 좋아졌다. 돌아가는 길에 언니에게 빤 꼰 토마테를 찍은 사진을 보내본다. 나 여기 산티아고에서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순례길 마지막 날의 그 아침식사를 재현해 봤다고,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다는 문자와 함께 말이다.


알라메다 공원과 쌍둥이
엽서도 보내고 선물도 사고 바쁜 아침이었다


 순례길 추억을 따라 시작한 아침을 시작으로 오늘은 자잘하게 할 일이 많은 하루다. 교수님께 엽서를 써서 보냈고, 산티아고 동기인 선생님이 나에게 선물을 보내셨던 가방을 이 분이 묵으실 호텔에 미리 맡겨두며 안에 넣어 둘 작은 선물도 샀다. 가방 드랍 후에는 까르푸에 가서 언니가 부탁했던 콜라카오도 사고,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 초콜릿 콘귀토스(Conguitos)도 미리 사두어 본다. 이제는 시간 있을 때마다 조금씩 무언가 떠날 준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장본 물건들로 무거워진 가방을 메고 알라메다 공원으로 향해본다. 그곳에서 예쁜 경치 사진들도 찍고 그늘 아래에서 좀 쉬었다가 순례실 사무실로 가 볼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벤치에 막 도착했을 때 거진 나와 동시에 같은 벤치로 향하는 사람들… 어디선가 본 사람들이다.

 “루크!”

 어제 내가 콤포스텔라를 발급해 준 네덜란드에서 온 쌍둥이들을 만났다! 내가 루크(Luuk)의 이름이 u가 2개 들어간 신기한 스펠링이라 이거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했었거든. 루크도 어제 물어본 내 이름을 기억하고 바로 ”어! “ 하더니 ”ㅇㅇ! “ 하며 기가 막히게 완벽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외친다. 어제 쌍둥이 형이랑 같이 왔다고 해서 한참 동안 쌍둥이 형이 나은가, 쌍둥이 동생이 나은가에 대해 토론을 했기에 잊을 수가 없는 두 사람을 이렇게 공원에서 보니 너무 반갑다. 쌍둥이끼리만 궁금한 누가 먼저 나왔냐, 몇 분 차이로 나왔냐 이런 대화들을 하며 정말 재밌었는데 말이야. 참고로 나는 우리 언니가 태어나고 10분 뒤에 태어났는데 이것도 일반보다는 조금 늦게 나온 거라고 알고 있지만 루크는 형이 태어나고 무려 50분 뒤에 태어났다고 해서 너네 엄마 너무 고생하셨겠다고 너 못됐다야~ 하면서 형과 함께 합동해 농담을 했었다. 이렇게 밖에서 다른 날 보니 너무 반가워서 함께 사진도 찍고, 산티아고에서 남은 시간 재밌게 보내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알라메다 공원에서 바라보는 산티아고 대성당과 루크와 쌍둥이 형

 

 며칠 전 미국에서 온 진 아주머니도 그렇고 이 네덜린드 쌍둥이도 그렇고 쌍둥이끼리는 나라와 인종을 넘어 마음이 더 가는 어떤 끌림이 있어 신기하다. 아주 먼 친척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옛날 내 어렸을 적 소망 중 하나가 쌍둥이와 결혼하는 거였을 정도로 쌍둥이의 특별함은 쌍둥이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고 나는 생각한다. 죽고 못 사는 가족에 절친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니 너무 멋지지 않아? 여하튼 루크와 그의 형처럼 쌍둥이가 성인이 돼서도 저리 꼭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우리 언니 생각도 나고 참 따뜻해 보여 좋았다. 세상에 이보다 더 진하고 편한 절친은 없을 테니까. 다음 순례길에는 쌍둥이 순례자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아마 순례길의 대화가 정말 재밌고 특별해질 것 같다.


너에게도 사탕을
오후의 순례자 사무실과 오늘 받은 사탕

 

 오늘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자원봉사는 정말 평화로웠다. 언제나 평화롭지만 오늘은 다른 날과 비교해 덜 북적거리고, 복잡한 케이스들이 없었다고 할까. 가끔 중간에 안 걸으신 분, 순례자 여권의 도장 개수가 부족하신 분, 집에서부터 걸으셨기에 거리가 불분명하신 분 등 복잡한 케이스들이 많이 몰려드는 날들도 있기에 그거에 비하면 오늘은 아주 쉬운 날 중의 하나였다. 하나 귀엽다고 느꼈던 순간은 이번이 14번째 까미노라고 하시는 여든 살 즈음의 마이클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인데, 내가 축하드린다고 막대사탕을 하나 드리니 뭔가를 주섬주섬하시다 내 손에 작은 오렌지 사탕을 하나 쥐어주시는 게 아닌가. 자기는 선물을 받았을 때 매너와 존경의 의미로 늘 뭐라도 되돌려주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게 그분이 오랜 시간 지켜오신 어떤 신념이신 것 같아 굉장히 멋지게 느껴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고집도 생기고, 지켰던 신념들도 하나 둘 흐려질 법도 한데 이렇게 많은 연세에도 꼿꼿하시게 무언가를 지키시려는 모습에 놀랐다고 할까. 나도 남들과의 관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신념이나 사고를 나이 들어서까지 잘 지켜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저도 사탕 하나 받았어요~! 늘 주기만 하다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받은 마이클 할아버지의 사탕을 내려다보며 누군가에게 받는 선물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오늘은 나도 느껴본다. 주는 입장에서 갑자기 받는 입장이 되니 살짝 어색했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정성은 여전히 따뜻했다. 누군가가 날 신경 써준다는 이런 기분 참 좋구먼 그래. 내 사탕을 받았을 순례자들이 나와 같이 이런 몽글몽글한 기분이셨길 조심스레 바라보며 오늘의 순례자 사무실에서의 하루도 행복하게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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