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키거 Oct 11. 2024

유럽에선 맛난 생크림 케이크 찾기 힘든 거 알지?

Day 12 산티아고에서 먹는 수제 생크림 케이크와 브라우니

2024년 9월 15일 일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12


꿩대신 닭이어도 좋아
아침 일찍 여는 Churrería La Quinta

 

 그저께 순례자 사무실로 아침 출근하면서 먹었던 스펀지케이크와 커피가 생각나 ‘또 먹어야지~.’하고 문자 그대로 춤을 추며 걸어갔는데 바 Melide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 일요일!’

 이런이런… 스페인의 일요일은 아주 가혹하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자라와 망고 같은 옷가게들도 아예 운영을 안 하는 플렉스 넘치는 이곳이 바로 스페인이지. 한국 같았으면 일요일은 손님이 가장 많고 매출도 높은 날이기에 무조건 열텐데 이곳은 다르다. 맛난 스펀지케이크와 커피 먹을 생각에 정말 즐거웠는데 너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일요일 아침에도 일찌감치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츄레리아 La Quinta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안 그래도 라즈베리 잼이 들어간 추로도 한 번 먹어보고 싶었거든. 꿩대신 선택한 닭이어도 먹어보고 싶었던 맛을시도할 수 있고 오히려 좋아!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김을 뿜어가며 열심히 추로스를 만드는 아저씨의 퍼포먼스도 볼 수 있었고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맛있었던 라즈베리 추로와 커피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이 세 번째 오는 거였나? 이 츄레리아 정말 마음에 들지 말입니다. 맛 좋고 종류도 많으면서 참신해, 게다가 매장도 깔끔, 가격까지 저렴해서 진짜 합격 목걸이를 걸어드리고 싶다. 다음에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돌아온다면 다시 이곳 La Quinta에 추로스 먹으러 와야지!


산티아고 대성당 앞의 돌 명판에는 대체 뭐가 적힌 걸까
산티아고 대성당을 마주보고 새겨진 세 개의 명판

 

 추로스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티아고 대성당 앞을 가로질러 순례자 사무실로 향해본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오브라도이오 광장의 가운데 박힌 돌도 된 명판이 눈에 밟힌다. 가끔 순례자들이 여기에 발을 올리고 사진을 찍는 걸 보며 궁금했기에 나중에 뭔지 좀 알아보려고 일단 사진을 찍어본다. 왜 있잖아, 스페인 마드리드의 곰 동상의 꼬리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이탈리아 로마 트레비 분수에서 어깨너머로 동전을 던지면 이곳에 다시 돌아온다 등 나라마다 소망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염원을 들어주는 곳들이 있잖아. 이 장소에서 특정 세리머니를 해야 하는 그런 거라면 나도 콤포스텔라를 떠나기 전에 꼭 하고 가려고 스페인 봉사자 분들께 물어봤지. 많은 순례자들이 여기서 사진을 찍는 이유가 있냐고 말이야.

 그런데 말입니다. 제일 위의 명판은 산티아고 프랑스 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25주년을 기념하는 거였고, 두 번째 명판은 1987년에 산티아고 길이 유럽 문화 결로로 유럽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다는 것, 세 번째 명판은 2004년에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공 훈장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산티아고 길. 순례지이자 만남의 장소로, 세기를 넘어 형제애와 화해의 상징으로 자리잡음”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게 다라고 한다.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이 스페인을 포함해 세계 안팎으로 인정을 받게 된 중요한 순간들이긴 하지만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고 그러는 곳은 아니라고 해서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세 개의 명판 중 아스투리아스 공 훈장과 함께 적혀있는 형제애와 화해의 상징으로 순례길을 바라본 그 글귀 자체도 좋으니 아마 사진을 남기는데도 순례자로서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나도 다음에 순례자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이 명판 앞에 내 두발을 담아 사진을 남겨보리라 다짐해 본다.


아스투리아스 공 훈장 (Fundación Principe de Asturias)
 아스투리아스 공 훈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상 중 하나로, 사회적, 과학적, 문화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개인, 단체, 또는 기관에게 수여된다고 한다. 이 상은 1981년에 제정되었으며, 스페인 왕위 계승자의 칭호인 “아스투리아스 공”에서 따온 이름이다. 2014년 이후에는 스페인 왕위 계승자가 펠리페 왕세자의 딸인 레오노르 공주인 것을 반영해 명칭이 “공주”로 바뀌어 현재는 아스투리아스 공주 훈장(Fundación Princesa de Asturias)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주요 부문으로는 예술, 사회과학, 공공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및 인문학, 국제 협력, 과학 및 기술, 스포츠, 그리고 협력과 연대가 있고, 이 상은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어 스페인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며, 인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의 업적을 기리는 목적으로 수여된다고 한다.


야속한 스페인의 일요일

 오늘의 순례자 사무실은 정말 너무 조용했다. 내가 일해온 근 2주간 최고로 여유로웠던 사무실의 풍경이 낯설 정도라고 할까. 사람들이야 늘 많지만 오늘은 한 번에 우르르 몰려오는 그런 느낌 없이 정말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유지되며 순례자분들이 고르게 분포되어 오셨다. 복잡한 케이스들도 없고,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단체 순례자 팀도 없었고 그렇게 조용하게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난 기분이었는데 아마 오후에 신나는 티타임 약속이 있어서 즐거운 마음에 그리 느낀 것 일수도. 오늘 나의 순례자 사무실 멘토이자 세상 최고 천사 지영언니가 디저트에 죽고 못 사는 나에게 맛있는 브라우니를 만들어 주신다며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식사와 맛있는 디저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고민도 없이 잘 만든 디저트를 선택할 나에게 이탈리아에 가져갈 브라우니를 만들어 주신다고 하시는 지영언니. 특히나 케이크를 정말 전문가 수준으로 잘 만드셔서 산티아고에 사는 한국 언니들 사이에서는 너무나 유명하시다는데 겨우 2주 와있는 나를 이렇게 챙겨주시니 뭐랄까. 너무 죄송할 정도로 감사한 그런 마음이 들게 하시는 분이다.

 다행히 자원봉사 근무가 끝나고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언니네 집에 꽃을 사가려 근처 꽃집들을 다녀보는데 아뿔싸, 일요일! 아침에 가고 싶었던 바의 문이 닫혀있던 순간이 재현되었다. 이런, 꽃집들이 하나같이 다 영업을 안 한다. 구글맵에 딱 한 곳 열려있다는 곳이 있어 좀 멀지만 믿고 찾아갔는데 역시나 다를까, 문이 닫혀있다. 그저 구글맵에 영업시간을 제대로 업데이트 안 해두었던 거지 일요일은 레스토랑이나 기념품 샵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 것 같다.

‘그래! 그럼 와인이라도 좋은 거 한 병 사가자!’

 싶어 시티 안에 있는 까르프에 찾아갔는데 이거 농담인가? 까르푸도 오늘은 영업을 안 한다. 거참 스페인 사람들은 일요일에 갈 수 있는 곳이 있긴 한 거야? 언니도 바쁜 시간에 나를 위해 귀한 시간을 쓰셨을 텐데 뭐라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단 말이다! 스페인의 야속한 일요일에 꽃도 와인도 없이 길 한가운데서 속수무책이 돼버렸다. 거참 산티아고에 사시는 분에게 산티아고 파이를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순례길 관련 기념품을 사가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고민에 고민을 하다 결국 나중에 가족들과 함께 드시라고 얼마 전에 먹었던 엠빠나다 가게에서 엠빠나다를 상자에 포장해 달라 했다. 아… 나름 선물 참 잘 고르는 편인데 스페인 사시는 분에게 엠빠나다를 사가는 지금 내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정말 가게 연 곳들이 없었다고!


 산티아고 시티에서는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길이라 순례자 사무실에서 같이 봉사를 하시는 착한 E언니가 차로 픽업을 해주셨다. 너무나 반갑게도 M선생님도 나오셔서 함께 하게 되었다. 은영언니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자원봉사와 순례자들 이야기를 하며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을 풀어본다. 두 분 다 순례자를 대하는 봉사에 진심인 분들이신 데다 너무 재밌게 설명해 주시기에 모든 대화가 즐겁다. 그나저나 사무실 안에서나 밖에서나 순례자들과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서 하는 우리는 산티아고의 행복한 자원봉사자들인 게 틀림없다.

 언니네 집에 도착하니 은영언니가 밖으로 나와 반갑게 맞아주신다. 집도 너무 예쁜데 언니가 부엌에서 더 예쁜 과일케이크를 내어 오신다. 이거 비주얼이 이미 보통이 아니다.


유럽에서 정말 맛있는 생크림 케이크 찾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정말 보기에도 먹기에도 너무 완벽했던 언니의 수제 과일 생크림 케이크

 

 이탈리아에 가져가 먹으라고 나 줄 브라우니를 잔뜩 만들어 두신 건 물론 다른 분들과 함께 먹을 과일 생크림 케이크까지 만들어두셨다니! 게다가 케이크가 예뻐도 너무 예쁘다. 다 같이 잘라 한입 먹는데 ‘왁! 이런 건 팔아야 해!’ 이런 느낌의 유럽에선 찾기 힘든 귀한 맛이다. 아마 유럽에 사는 한국인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유럽에서 맛있는 생크림 케이크를 찾는 게 정말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말이다. 유럽에는 생크림 케이크 개념이 거의 없다.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스페인도 각자 나름의 특화된 케이크들이 많지만 시원하게 보관해야 하는 가벼운 텍스처의 우유크림 맛이 나는 생크림 케이크는 정말 찾기 힘들다. 특히나 오늘 먹는 이런 과일 생크림 케이크! 이탈리아의 마리또쪼(Maritozzo) 같은 우유 생크림 맛의 빵은 있지만 ‘케이크’는 진짜 없단 말이지. 그래서 디저트를 너무 좋아하는 나도 한국에 들어가면 케이크를 그렇게 많이 사 먹는다. 특히나 생크림 케이크는 유럽 가면 못 먹으니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는 편이다. 그런 내가 지금 이곳 스페인에서 언니덕에 진짜 고급 과일 생크림 케이크를 먹고 있다. 아주 한국스타일로다가 아메리카노를 곁들이며 오랜만에 먹는 생크림 케이크에 푹 빠져본다. 케이크도 맛있고, 커피도 맛있고, 언니들과 선생님과의 대화도 너무 재밌는 소중한 시간이 그렇게 훌쩍 지나간다.

 나한테는 이 시간이 참 특별했다. 그냥 일시적으로 와있는 한국인 한 명에게 이렇게 마음 써주시고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어른들이 있으실 줄이야. 정말 기대 못했던 행운이었거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새로운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냉소적이고 각박해져 가는 면이 있다고 보는데 이곳 산티아고의 한국인 언니들, 현지 자원봉사자 언니들은 뭐랄까 마음이 너무 착하셔서 좀 놀랄 정도였다. 일단 밝으시고 행복하시다. 근데 신기하게 여기 모든 분들이 하나같이 다 그러하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그래서 괜히 성지라고 불리는 게 아닌가벼. 이곳 한국언니들과의 만남은 감사 그 자체의 신선한 놀라움으로 기억할 것 같다.


나와 함께 이탈리아로 가는 거야

 오늘이 마지막으로 지영언니를 보는 거라 돌아가는 길이 아쉽기만 했다. 차에 타기 전 언니가 꼭 안아주실 때는 눈물이 왈칵 나는게 언니가 주셨던 따뜻한 응원들과 친절에 감사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쉬셔야 하는 일요일에 나를 위해 귀한 시간 내주시고 베이킹까지 하신 지영언니,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주셔야 마음이 편하다고 먼 길 운전해 주시는 E언니와 M선생님까지 산티아고의 임시 막내는 그저 받고만 떠나는 것 같아 미련이 남는다. 내년에 꼭 다시 보자는 지영언니의 말씀대로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돌아와 언니들에게 내가 뭐라도 갚을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해 본다. 언니들 덕분에 순례자 사무실에서도, 사무실 밖에서도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내일모레 나와 함께 이탈리아로 갈 언니의 브라우니, 보기만해도 설레인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언니가 예쁘게 포장해 준 브라우니를 서둘러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언니가 마음 써 만들어 주신 이 브라우니들은 내일모레 나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는 거야. 달달한 브라우니와 함께 언니들과 함께한 달달한 추억들도 가져가는 것 같아 뿌듯한 저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