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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Oct 09. 2024

대형 향로 보타푸메이로 1열 직관한 이야기

Day 10 산티아고 대성당의 향로와 나

2024년 9월 13일 금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10


내가 좋아하는 아침 식사
맛있었던 바 Melide에서의 아침식사와 작년의 감상에 빠지게 하는 세요

 

 순례자 사무실로 걸어가기 위해 아침 7시 반 정도에 일찍 숙소를 나섰다. 걷는 시간은 50분 정도지만 오늘은 눈여겨봐 두었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가려고 마음먹었기에 조금 더 일찍 나왔다. 이탈리아도 그렇고 스페인도 그렇고 말이야 커피를 파는 바들이 정말 새벽에 문을 연단 말이지. 나는 이게 한국과 비교해 정말 다르지만 좋은 유럽문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게 커피문화 차이인데 유럽의 바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아침을 연다고 할까, 한국처럼 비싼 인테리어에 고급화 한 메뉴로 분위기와 장소를 파는 게 아닌 삶과 더 밀접한 형태로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상처럼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생존에 가까운 수준인 것 같다. 나는 투박하지만 허례허식 없는 이 느낌이 너무 좋다. 고급스러운 음악이 안 나와도, 모던한 인테리어가 없어도 우리가 애초에 바를 찾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바로 커피, 그 커피가 맛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게다가 어떤 커피를 주문하든지 1~2분 뒤에 척하고 나오는 신속함에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묻어있다. 투박한 친절함 속에 마음에 드는 커피를 이른 아침 손 야물찬 동네 바리스타가 척척 맛깔나게 뽑아주니 이미 그 맛으로 제 값을 하고도 남는 느낌이다.

 오늘 찾아간 바 Melide에 들어갔을 때가 아마 7시 45분 근처였을 거다. 그런데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아침 식사에 조용한 대화들을 나누고 있었다. 바에 서서 카페 꼰 레체에 에스프레소 샷을 더 추가해 달라고 부탁하고 진열장에 보이는 조그마한 스펀지케이크를 가리키며 함께 달라고 해본다. 정말 순식간에 커피가 나오고 친절하시게도 내가 앉은자리로 가져다주시기까지 하셨다. 가끔 아침에 크로와상 같은 걸 먹기에도 무겁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는데, 오~ 이 스펀지케이크들이 질감도 가볍고 한두 입 사이즈로 양도 적당한 게 너무 마음에 든다. 그냥 아무거나 달라고 한 건데 두 종류의 다른 빵을 담아 주신 센스라니! 하나는 약간의 레몬맛이 나고 다른 하나는 설탕 같은 게 톡톡 씹히는 게 달달하니 커피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게 깔끔한 아침식사였다.

 맛있게 먹고 계산을 하니 커피와 두 조각의 스펀지케이크를 포함해 1.7유로(한화 2500원)란다. 이게 실화인가? 아마 내가 부탁한 작은 스펀지케이크는 아침에 커피를 시키는 사람들에게 서비스 형태로 한 두 개씩 함께 주시는 거였나 보다. 아침부터 내 스타일의 커피를 맛난 케이크들과 정말 좋은 가격에 마셔주고 시작하다니 오늘도 행운이 가득할 것 같은 날이다.


보타푸메이로를 1열에서 직관하다니
보타푸메이로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너무 감사했다

 

 행운이 가득할 것 같다는 내 예상이 맞았나 보다. 자꾸 옆에서 13일의 금요일이라고 검정고양이를 마주치지 말라고 순례자들에게 겁을 주는 알베르티뉴 할아버지의 농담과는 다르게 나는 행운이 넘치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오전 봉사를 시작한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니콜라가 다가오더니

 “너 어제 보타푸메이로 보고 싶다고 했지? 같이 나가자!”

 한다. 응? 지금 나가자고? 10시인데? 미사는 하루 4번, 정해진 시간(7시 반, 9시 반, 12시, 저녁 7시 반)에만 하는데 이미 9시 반 미사가 시작된 지 한참인 10시에 나가는 게 애매한 시간이라 놀랐단 말이지. 니콜라와 나 그리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근무하시는 직원분들 중 파블로와 루이스와 함께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이분들이 바로 그 향로를 움직이게 하시는 신도이신 ‘티라볼레이로스(Tiraboleiros)’이신 거다!

*** 단수는 티라볼레이로, 복수는 티라볼레이로스 ***

 은으로 도금된 황동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포타푸메이로의 향로 자체는 53kg인데 여기에 숯과 향을 가득 채우면 약 10kg 정도가 더 추가된다고 한다. 전체 약 63kg에 달하고 1분 30초 만에 시속 68km에 도달하는 향로를 움직이기 위해 8명의 남성, 이른바 ‘티라볼레이로스’가 필요한 건데 순례자 사무실에 바로 티라볼레이로 분들이 계시다니 참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에게 옆에서 끊임없이 설명을 해주는 내 최애 이탈리안 니콜라는 산티아고 대성당 최초 이탈리안 티라볼레이로라고 하신다. 이렇게 멋진 티라볼레이로스와 함께 예배 중인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거침없이 들어갈 수 있다니 든든하기 그지없다.

 알고 보니 하루에도 4번이나 있는 미사에 향로가 올라갈 경우 이 분들은 시간에 맞춰 대성당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시고, 향로 숯을 준비하시고 타이밍에 꼭 맞춰 투입되시는 것이었다. 하긴 매일 몇 번이나 반복될 수도 있는 미사를 다 들으시고 계시는 건 거진 불가능할 거다. 그럼 적어도 하루 4시간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시는 거 아니겠어. 이렇게 나 같은 순례자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자원봉사자를 특별 대우해 주셔서 이분들과 함께 비하인드 신을 볼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보타푸메이로를 들어올리기 위해 준비중인 티라볼레이로스

 

 예배가 한창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가 오늘의 티라볼레이로스인 파블로와 루이스와 잠시 헤어지고 니콜라와 성당 안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순례자들 사이에서도 니콜라는 나를 가장 앞 1열 기둥 옆에 세워 제일 좋은 시야를 확보해 준다. 아 이런 친절한 할아버지 같으니라고! 물론 니콜라가 티라볼레이로이기 때문에 어디서 가장 잘 보이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서있는 곳은 곧 8명의 티라볼레이로스가 들어와 묶어놓았던 향로의 줄을 풀어 입장하는 바로 그곳이었고 정말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이 성스러운 의식을 코 앞에서 보게 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건디 색의 의복을 입은 8분이 등장하고 향로가 올려졌다. 정말 코앞으로 지나는 거대한 향로를 눈으로 담으니 감회가 너무나 새롭다. 작년에 이곳에 도착해서 12시 미사를 볼 때 자리도 없고 사람들로 꽉 차있어 한 참 뒤에서 까치발로 고개를 내밀고 겨우 뭐가 움직이긴 하는구나 싶었는데 말이야. 오늘은 온몸의 무게로 향로를 잡아당기시는 티라볼레이로스의 움직임과 표정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웠고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주신 순례자 사무실의 직원분들께 너무나 감사했다. 진한 감동에 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성스러운 느낌을 가득 안고 그렇게 한참을 향로를 넉 놓고 쳐다보았다.

 그렇게 향로 의식이 끝나고 우리는 파블로와 루이스를 따라 함께 다시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정말 20분에서 30분 정도 빠른 시간 안에 순례자 사무실을 벗어나 향로 의식에 참여하고 다시 돌아왔다. 꿈을 꾼 듯한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화려하고 성스러운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이분들에게 데려가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알베르티뉴 할아버지 옆에 앉아 오늘의 콤포스텔라 발급 업무를 이어가 본다. 캬~ 내가 오늘 하루 이렇게 행운이 가득할 줄 뭔가 느낌이 왔었다고!


 *** 참고로 향로는 제단을 마주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향을 입고 싶으신 분들은 제단을 바라보는 정면이 아닌 양 옆의 좌석에 앉으시길 추천한다. ***


산티아고 대성당과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

 우리가 흔히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라고 알고 있는 오후 12시에 미사에서 이 대형 향로인 보타푸메이로를 사용하는 것을 보신 분들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부활절, 성령강림절, 성 야고보 축일(7월 25일), 성모 승천일(8월 15일), 성인 대축일(11월 1일), 성탄절(12월 25일) 등과 같은 종교 행사는 물론 순례자들의 기부에 의해 향로가 올라간다. 사람들은 하루 500유로(한화 74만 원 정도)의 기부금이 채워져야 향로가 올라간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그런 가격을 공지한 적도 없다고 한다. 언제 향로가 올라가는 미사가 있는지는 사정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운영 관계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그래도 순례자 사무실에 실제로 보타푸메이로의 세레모니에 관여하는 직원분들도 있으니 우리가 순례를 마치고 사무실에 콤포스텔라를 받으러 갔을 때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실제로 어떤 한국 남성 순례자분이 장모님의 기일에 맞춰 보타푸메이로를 올리고 싶다 하셔서 개인적인 기부를 하시고 미사 때 향로를 올리셨다고 한다. 이렇게 기부를 하시면 예배에 가족석으로 줄 없이 앞쪽에 따로 앉으실 수도 있고, 미사에 축성을 해주신다고 하니 독실한 카톨릭 신자시라면 의미 있는 사용을 하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든다. 순례자 사무실에 연락하셔서 요청을 제출하고, 필요한 경우 비용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필요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시길 바란다.


포타푸메이로 사용 요청과 도네이션을 물어보실 수 있는 곳

순례자 사무소 (Oficina de Acogida de Peregrinos)
Rúa Carretas, 33, CP 15705, Santiago de Compostela
전화: +34 981 568 846
이메일: botafumeiro@catedraldesantiago.es


오늘은 한국의 맛을 보여줄게
누마루에서 함께한 아이리쉬 디와 이탈리안의 니콜라의 첫 코리안 푸드

 

 오늘은 늘 나를 알뜰살뜰 챙겨주는 나의 산티아고 친구인 디와 니콜라를 내 최애 한식당 누마루로 점심 초대를 했다. 물론 나와 나이 차 많이 나는 삼촌, 숙모 뻘인데 또 백발이셔서 거참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여하튼 유럽에서는 나이 불문하고 다 친구이기에 나는 이분들은 디와 니콜라라고 이름으로 불러 드린다. 오늘은 해가 또 쨍하게 뜬 날이라 내가 가지고 있는 얼굴용 스프레이 선크림을 순서대로 얼굴에 뿌려드리니 좋아하신다. “우리를 이렇게 챙기는 것 너뿐이야.” 이러시며 니콜라는 다음 주에 세르비아 가는데 나도 같은 거 하나 사야겠다고 한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걸어서 15분쯤 지나 누마루에 도착했다. 많은 고민 끝에 결국 나에게 선택권을 넘긴 니콜라는 비빔밥을, 옆 테이블의 음식이 궁금했던 디는 치킨 덮밥을 나는 늘 맛있게 먹는 두루치기를 시켰는데 두 분이 나온 음식들이 너무 예쁘다고 사진을 찍으시는 모습에 정말 뿌듯했다. 서로 이것저것 나눠 먹은 결과 와, 외국인 입맛에도 이게 통하네 싶을 정도로 매콤한 두루치기의 압승! 그래도 한국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비빔밥도 드시게 해 보고, 예쁘게 나온 한상차림에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 어깨가 다 으쓱해지는 순간이었다. 두 분 다 한국 음식이 처음이신데 진짜 한국인과 함께 맛있는 한국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로 경험하게 되셔서 너무 다행이었다. 우리는 몇 달 전에 내가 더블린에 갔던 이야기, 디가 로마에 갔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언제든 서로가 사는 도시에 들리게 될 기회가 있다면 잊지 말고 연락하자고 약속을 해본다.

 외국에서 살면서 느낀 거지만 유럽에서는 정말 친구가 되는데 나이는 절대로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 이분들은 내가 산티아고에서 만난 베스트 프랜드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모든 외국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허물없고 가장 친근했던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되었다. 우리가 순례길이란 동일한 경험을 했다는 공감대도 있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콤포스텔라를 발급하는 같은 일을 하며 마주하는 크고 작은 감동과 배움을 함께 한다는 것도 우리가 서로를 더 가깝게 그리고 깊이 느끼는데 분명 한몫했으리라.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고 정말 오랫동안 잊지 않고 연락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이분들께 대접하는 한식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분들 기억에 나는 적어도 첫 한식을 접할 때 함께한 한국인 친구라는 행복한 각인 하나 정도는 남겼다는 그런 의미랄까.

 이제 이곳 산티아고에서의 봉사기간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아 벌써 아쉬워진다. 그래도 오늘 이 식사처럼 나 나름대로 이곳 사람들과 행복한 기억을 많이 남겨두려 한다. 앞으로 3일, 남은 이 귀한 시간을 더 행복하고 활기차게 자원봉사자로서 최선을 다해 새로운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후회 없는 날들로 만들어보기로 다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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