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간식도 야무지게 먹어주기
누구에게나 길거리 간식은 필요하지
모든 여행지에서 나에게 가장 크고 완벽한 즐거움을 주는 존재는 항상 길거리 음식이었던 것 같다. 내 나라가 아닌 외딴곳에서 귀로는 외국어가 가득 들어오고 눈으로는 낯설면서도 설레는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이 수도 없이 입력이 되는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어지러운 순간들을 기억하는가. 이때 길거리 한 곳에 서서 한 입 베어 먹는 그 나라의 단순하고 아주 맛있는 음식은 순간 평화 그 자체와 엄청난 행복을 가져다주며 시간이 정지된 듯한 기분까지 선사한다. 물론 그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나의 경험은 행복 그 자체였다. 체코 프라하의 광장에서 먹었던 김이 폴폴 나던 굴뚝빵(뜰르들로)의 온기라던가, 인도네시아 발리 해변가에서 맛본 바나나 로띠의 바삭함과 달달함은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격식 갖춰진 비싼 음식보다 더 맛있었고 더 나답다는 기쁨에 입꼬리가 올라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 늘 유명한 길거리 음식점을 찾는 재미에 기대를 가득 안고 다른 나라, 다른 도시를 탐색한다. 산티아고에서 끼니와 끼니 사이에 입이 심심할 때, 또는 좀 가볍고 간단한 걸 먹고 싶을 때, 올드타운을 걸어 다니며 소소한 간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간식들은 뭐가 있을까? 이번 산티아고에서의 2주간의 체류동안 맛있는 기억을 선사해 준 길거리 간식 세 곳을 소개해보려 한다. 우리가 또 어찌 밥만 먹고살겠어. 간식 먹을 배는 늘 따로 있는 거 아니겠어?
3위 : Bico de Xeado Compostela
Rúa do Vilar, 81, 15702 Santiago de Compostela, A Coruña, 스페인
더운 기간에 순례길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면 길거리에서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큰 기쁨으로 다가올지 다들 예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 구시가지 곳곳에 아이스크림집, 젤라또 집이 있긴 하지만 Bico가 평도 가장 높고, 늘 사람들이 긴 줄을 서있는 곳이다. 신랑과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다 같이 들어갔는데 젤라또에 진심인 이탈리안 남편도 맛있다고 인정해 준 곳이라 나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여긴 딸기나 레몬같이 인기 많은 맛들은 다 기본으로 준비되어 있고, 무화과에 치즈가 섞인 새로운 조합이나 뚜론맛, 쌀푸딩 맛 등 스페인의 디저트를 아이스크림으로 재해석한 젤라또들이 있어 재밌기도 했다. 물론 시식도 가능한데 한 곳이 아닌 두 세 곳에서 동시에 주문을 받기에 이것저것 물어보기 조금 정신없는 분위기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줄을 서서 들어가면 먼저 어떤 사이즈, 몇 가지 맛을 먹을지, 콘으로 먹을지 컵으로 먹을지 결정하고 계산을 하고 나면 오른쪽이나 왼쪽 직원들에게 가서 영수증을 보여주고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카라멜 잼이라고 할 수 있는 Dulce de leche가 아주 진하고 끈적한 카라멜맛을 내서 맛있었고, 쌀푸딩 Arroz con leche은 아무 곳에서나 파는 게 아니니 산티아고에 있을 때 먹어보길 추천한다. 뜨거운 날씨에 한 손에 맛있는 젤라또를 들고 먹으면서 천천히 올드타운을 걷다 보면 정말 신선놀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게 행복이지.
2위 : El Trébol 1983 Pizzas y Empanadas
Rúa do Preguntoiro, 13, 15704 Santiago de Compostela, A Coruña, 스페인
순례길을 걸으면서 의외로 엠빠나다를 파는 곳은 없었다. 가끔 대도시에서 슈퍼마켓을 가면 빵형태로 볼 수 있을 정도? 이것 말고는 가게에서 엠빠나다라는 이름을 걸고 제대로 파는 곳은 없는데 산티아고에는 있었다. El Trébol이라고 하는 이곳은 산티아고 내에도 다른 분점이 있을 만큼 나름 자리를 잡은 유명한 가게였다. 매장에 들어가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엠빠나다들이 주르륵 진열되어 있는데 가짓수가 대충 세어봐도 10가지는 족히 넘는 것 같아 고르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치킨, 비프, 바베큐, 치즈와 시금치, 버섯 베이컨 치즈 등 기본과 여러 재료가 조합된 것들은 물론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야채만 들어간 엠빠나다도 있으니 종류면에서는 정말 합격. 가격은 개당 2.9에서 3.2유로인데 한화로 치면 얼추 개당 4500원 정도라 간식치고 너무 싸다고는 솔직히 못하겠다. 진열된 모든 엠빠나다는 이미 다 구워져 나온 것이고 계산을 하면 바로 먹을지 포장해 갈지를 물어본 후에 오븐에 1분 정도 다시 따뜻하게 데워주신다. 뭐가 가장 잘 나가냐고 물어봤더니 시금치와 치즈 같이 들어간 거라고 해서 시도해 봤는데 나름 괜찮았다. 속이 부실하게 들어있진 않구나라는 느낌을 받았고 일단 엠빠나다를 덮고 있는 겉의 빵반죽이 얇고 맛있어서 좋았다. 근데 뭐랄까 치즈가 들어있는 걸 사면 치즈가 쭉쭉 하얗게 늘어나는 모짜렐라 느낌이 아니라 약간 되직한 치즈 소스 느낌이 난다고 할까? 그래도 맛은 다 평타 치는 것 같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호불호 없는 맛이라 추천한다. 산티아고 길거리에서 뭔가 따뜻한 간식, 든든한 간식을 먹고 싶다면 아주 완벽한 초이스가 될 것 같다. 양은 건장한 남성분들은 적어도 2개는 먹어야 뭘 좀 먹었다 생각이 드실 테니 참고하시길. 나는 두 개를 사서 하나만 데워달라 해서 먹으며 나왔다가 금방 다 먹고 다시 올라가 포장해 뒀던 것도 데워달라고 했다. 겨울의 산티아고에서 먹으면 더더욱 맛있을 것 같다.
1위 : Cuto Salamanca Santiago
Rúa do Vilar, 85, 15705 Santiago de Compostela, A Coruña, 스페인
이탈리아에 살면서도 난 프로슈토 같은걸 잘 안 먹는데(미미하게 피의 쇠맛 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 왁! 여기 이베리코 하몽은 미쳤다. 프로슈토를 좋아하는 우리 신랑은 스페인에 갈 때마다 맛 차원이 다르다며 이베리코 하몽을 엄청 찾아먹고, 이탈리아로 사가기까지 한단 말이지. 산티아고에 도착한 첫날에 신랑이 저녁간식으로 먹을 하몽 샌드위치를 여기 Cuto에서 사갔는데 그날 나한테 한입 맛보라고 하도 조르길래 한입 먹고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다시 와서 구입했을 정도로 맛있었기에 강력 추천하고 싶다. 따뜻한 빵에 하몽의 비개가 살짝 녹으면서 풍미가 살아나고, 맛에 예민한 신랑은 아주 살짝 단맛도 느껴져서 더 좋다고 만족하며 먹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달라고 할 때 하몽의 종류를 고르는데 그중에서도 이베리코, 이베리코 중에서도 Jamón de Bellota를 선택하면 더 부드럽고 녹는 듯한 식감을 받을 수 있다. 주문하자마자 바로 하몽을 골라와 눈앞에서 썰어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시는 걸 볼 수 있어서 더 믿음이 가는 곳. 구글의 리뷰를 찾아보면 빵이 더 바삭하고 맛있으면 대박 날 것 같다는 평이 꽤 많은데 난 바게트의 단단한 질감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서 큰 불만은 없었다.
가격은 이베리코 하몽 데 벨로타로 시켰을 경우 8.9유로로 한화 1만 3천 원 정도. 살짝 있는 가격만큼 빵도 크고 넉넉해서 여자는 혼자 다 끝내기 힘들 정도고 아마 남자분들한테도 살짝 배부르다 싶을 양이다. 게다가 엄청 맛있고 스페인에서 먹는 이베리코 하몽이라 식문화적 경험도 되니 특별함은 말해 뭐 해. 이건 간식도 아니고 거진 식사 대신으로도 칠 수 있기에 가벼운 식사로도 추천한다. 나 같은 경우는 산티아고 대성당 뒤의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먹고 또 먹어도 남아서 숙소로 가져왔고, 남겨뒀다 저녁에 먹었을 정도로 양이 많았단 말이지. 물론 두었다 먹으면 빵이 눅눅해지니까 이건 어쩔 수 없지만 숙소에서 남은 거 다시 먹었을 때도 너무 행복했다. 아 맛있어 진짜.
Cuto는 하몽 전문점이라 샌드위치 말고도 종류를 골라 하몽만 시켜 먹을 수도 있고, 큐브형태로 잘게 썰은 하몽과 치즈, 살라미와 감자칩 종류도 함께 팔아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할 수도 있는 곳이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누가 나에게 산티아고에서 레스토랑 말고 딱 하나 간단하게 먹을거리 하나 추천하라고 하면 고민 없이 Cuto에서 하몽 샌드위치를 먹으라고 말해줄 거다.
거창함보다는 소박함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방문했을 때 경험 중 가장 오래 기억 남는 것 중에 하나는 음식이다. 음식은 후각과 미각이 해마와 편도체와 같은 기억 및 감정을 처리하는 뇌 구조와 강하게 연결되어 더 오래 기억되는 거라고 하는데 특히나 여행 중 먹는 음식들은 문화적, 체험적 경험과 결합되어 더 깊이 각인된다고 한다. 그 음식을 떠올렸을 때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그 당시 주위의 풍경과 소리들, 나의 기분이 어땠었는지, 날씨가 어땠는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그런 감정까지 슬로모션처럼 삭 스쳐 지나가는 건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추억의 저장고에서 캡슐로 하나하나 쌓여있는 그런 느낌. 내가 더 오래 기억하고, 아끼는 추억 중에 하나가 길거리 음식인 거에는 거창함 없는 작은 소박함이 내가 지불한 가격보다 몇 배, 몇십 배나 큰 행복과 만족감을 준다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성비 있는 기쁨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적은 돈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 그 순간 입도 즐겁지만 그 나라의 문화와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제대로 된 음식과 만났을 때 특히나 이렇게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발견해서 한 입할 때 나는 이방인에서 순식간에 현지인들과 비슷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 좋은 착각과 안도감을 받기도 한다. 산티아고에서 즉각적인 작은 기쁨을 얻고 싶다면 거리를 거닐며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들을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먹는 그 순간만큼은 우린 순례자도, 이방인도 아닌 산티아고를 거니는 로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