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핑계로 브런치에 절필을 한 지도 어언 1년여가 흘렀다. 작년 5월, 싱가포르에 내려진 서킷 브레이커 (circuit breaker: 락다운 보다 완화된 표현으로 고상한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락다운)가 해제되면서 드디어 공원 벤치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환호의 글을 끝으로 브런치를 잠시 떠났었다.
1년반 이상 비행기도 못 타고 한국도 못 가는 가택연금이나 진배없는 감옥같은 재택 시절을 보내면서 '코로나 블루'(?)에 걸린 탓도 있었지만,
실은 지난해 11월 청천벽력처럼 주어진 PIP(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종종 직원들의 퍼포먼스 불량을 이유로 내려지는 근신 처분) 때문에 지난 4개월여를 해고와 추방의 공포에 치를 떨었던 것이 진짜 이유였다.
이미, 이전 글에서 여러번 언급했듯이, 난 내 바로 위 파키스탄계 여자 상사와 궁합이 도무지 맞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경쟁사에서 재입사 스카웃을 받을 때 함께 매니저 자리를 두고 다투었던 경쟁자였다. 더군다나 그녀는 지금 팀이랑 무관한 섹터에서 온 낙하산 인사였기에 자리보전과 기세 확장을 하려는 그녀의 견제와 탄압은 내가 이 회사로 돌아온 2019년 초부터 줄곧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지난해 11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던 당시 나는 업무 중 작은 실수를 하게 되었고, 파키스타니 상사는 이를 기회 삼아 호시탐탐 제거대상 1순위였던 나를 PIP으로 옭아맸다.
솔직히 PIP은 싱가포르 내에서 퍼포먼스와 무관하게 매니저가 부하직원을 싫어하면 내려질 수 있는 양성화된 해고 수단이었다. 당시 충격 속에 찾아갔던 한 상담사에게선 "싱가포르에서 PIP 받으면 무조건 그냥 나가는 수밖에 없다"란 말까지 들었다.
본인의 매니저 입성과 함께, 같은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내가 필드경력 9년차에 팀원들이 매니저 감으로 손꼽아온 경쟁자임을 확인한 그녀는 사사건건 작은 헛점이라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러던 찰나, 나의 실수는 고양이 입에 생선을 배달해 준 셈이 되었고, 난 2020년 11월부터 3개월간 퍼포먼스 강화를 명목으로 한 해고 프로그램을 밟게 되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난 그저 당장 사표를 던지고, 더럽고 치사하고 비열한 이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제국주의적 오피스를 속시원히 박차고 나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회사를 나와버리면 나는 한달 내로 짐을 싸 한국으로 추방 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된다. 코로나만 아니었음 사표를 쓰고 취업비자가 취소되어도 관광객 신분으로 다시 싱가포르에 돌아와 3개월 간 체류가 가능했다. 3개월이 끝나면 다시 외국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여기서 만난 중국계 남자친구와 미래를 약속한 사정으로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었다. 사표를 내고 싱가포르를 떠나면 내 속은 시원하고 자존심도 덜 상했겠지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모를 상황에 처한다.
가뜩이나 싱가포르는 코로나 발생 이후부터 국경 통제에 매우 엄격한 정책을 펴왔다. 코로나 하루 발생자가 10명 안팎인 지금조차도 백신 여부와 무관하게 해외에서 들어온 싱가포리언이나 영주권자들은 21일간 호텔에서 격리를 해야 한다. 자택 격리도 안된다. 하물며, 나같은 취업 비자 소지자들은 이 나라를 뜨는 순간 재입국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난 꾸역꾸역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선 자존심도, 힘든 업무도 감내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코로나 백수에 대한 공포도 이같은 맹목적인 버티기에 한몫 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존버'하며 버틴 지 벌써 8개월째가 됐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나는 PIP을 패스하고 해고를 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결국 나를 제거하려던 파키스타니 매니저도 내가 공식적으로 PIP 기간에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자를 명분이 없어서였다.
"그냥 매니저가 싫으면 주는 게 PIP"이라는 게 노동시장이 유연한 싱가포르에서는 불문률 같은 것이었기에. 크게 상처받을 것도 없었지만, 코로나가 겹치며 옴짝달싹 못하는 힘없는 외노자 신분이 되면서 난 진심으로 자존심이 구겨지고, 내 13년 잘 나가던 커리어 인생에 큰 생채기를 얻었다.
간신히 내 지위는 회복했지만, 여전히 독사같은 매니저는 일폭탄과 흠집내기로 나를 매일매일 괴롭히고 있다.
나는 코로나와 함께 직장 생활 13년래 최대의 지옥을 맛본 셈이다. 마치 뱀이 우글거리는 달리는 기차에서 그대로 있지도 못하고 뛰어내리면 승냥이 떼에 잡아 먹히는 상태였달까.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벌써 8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싱가포르는 취업비자 소지자들의 재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결국 한번 나가면 못 돌아온단 얘기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싱가포르는 물론 전세계 직원들의 개인적인 여행을 금지시켰다. 영주권자가 아닌 이상 난 언제쯤 한국에 갈 수 있을 지 모른다. 부모님을 못 본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덥고 후텁지근한 이 작은 도시국가에서 일폭탄과 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리며 나는 오늘도 코로나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
지루하고 까마득한 이 칠흑같은 감옥에서 난 언제쯤 해방될 수 있을까?
남들은 말한다. 그래도 이 어려운 시기에 멀쩡한 직장이 있고,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거냐고.
나도 안다. 그래서 꾸역꾸역 참았고, 앞으로도 꾸욱 참아볼 예정이다.
코로나 백수가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지리멸렬한 코로나 시대, 일상전투에 한줄기 위안이 되어준 글귀를 주문처럼 되뇌이며 글을 마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