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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Jun 24. 2020

짝사랑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개인적으로, 이 세상 모든 감정 중 짝사랑만큼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짝사랑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수많은 예술 작품 속에서 아름답고 로맨틱한 수사(修辭)로 꽤 자주 등장한다.


'시간 지나면 다 없었던 일. 잠시 미쳤다 생각했었는데'

'나답지 않던 말과 행동이 멋대로 굴고 있는 심장이'

'널 꺾는다고 그 향기가 내  될까'

'널 쫓느라 두고온 내 자신을 찾아'

'혼자 한 사랑은 스스로 이별해야 되네...'

-사랑이었다 (루나, 지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그 숱한 영화와 노래에서 짝사랑은 마치 가슴 시린 사랑의 본질이자, 대가 없는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인 양 포장된다. 짝사랑만큼 자주 다뤄지는 소재도 없다. 마치 짝사랑을 권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나는 짝사랑의 파괴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짝사랑만큼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 비생산적인 감정 놀음도 없다.

짝사랑만큼 자기 파괴적이며 자존감을 갉아먹는 해충도 없다.  




모든 관계의 균열과 파국은 '균형'이 깨진 데서 나기 때문이다.




예전 대학 때 들은 '청년기 갈등과 자기 이해' 심리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신 얘기다. "연애, 사랑 등 모든 관계는 한 사람이 바닥에 눕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위에 손바닥과 발바닥을 맞닿은 채 균형을 잡아 공중에 떠 있는 곡예와 같은 것"이라고. 이 아슬아슬한 '관계의 곡예' 속에서 어느 하나가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이 인간 탑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난 모든 관계는 이 같은 균형에서 나오며, 그 균형을 통해 유지되고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짝사랑은 아예 애초에 이 균형 자체가 결여된 일방 감정이다. 그래서 관계라는 단어를 붙일 수조차 없다.


관계의 균형은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기대의 정도로도 측정된다. 한쪽과 다른 한쪽이 기대하는 바가 다를 때 그 관계는 마찰음과 잡음을 내고, 때론 한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져 버린다.


짝사랑에선 한쪽의 기대만이 존재한다. 다른 한쪽에선 기대는커녕 아예 이 관계에 대한 정의 내지는, 인지조차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짝사랑은 혼자만의 감정 놀음이자 신경 낭비일 수밖에 없는 태생이다.




그럼 짝사랑을 받는 상대방은 어떨까.


대개의 경우, 상대방은 딱히 손해 볼 게 없다. 누군가가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해 준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소비'함으로써, 때론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올라가고,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내 얘기 같은 착각마저 든다.


짝사랑 대상자의 행동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첫째는 나를 좋아해 줌에 고맙고, 기분이 좋다. 사랑을 주긴 2% 부족한데 그렇다고 내치긴 아깝다. 받는 사랑도 나쁘진 않다. 그래서 친구란 명목으로 곁에 두고 싶다. 그래서 연락을 받아 주고, 친절하게 대한다.  

  

둘째는 날 좋아해 주는 게 그저 부담스럽고 돌려줄 게 없는 미안한 마음에 냉정하게 거절한다. 도저히 친구로도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예의를 갖춰 거절하거나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짝사랑을 하는 사람에겐 가슴이 찢어지는 행동들이다.


이 둘 중 누가 더 나에게 진짜로 '친절한' 행동일까?


난 이 둘 중에 전자보단 후자가 결과적으론 '짝사랑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에겐 약이 되는 성숙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짝사랑은 어차피 관계로서 존재할 수도 없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소모적인 마음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인간적인 행동을 하며 휴머니즘을 실천했다고 착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짝사랑에서 가장 무섭고 자기 파괴적인 단계는 바로 짝사랑이 '희망고문'으로 전이됐을 경우다. 결과적으로 전자는 짝사랑을 앓고 있는 누군가에겐 최악의 짓을 한 셈이다. 사랑을 받아줄 마음도 없으면서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소비하며, 자존감을 확인하고, 애매한 행동들을 통해 상대방이 '희망고문'으로 시름시름 앓는 걸 수수방관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매몰차게 거절하는 사람보다 더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의미 없는 행동과 별 뜻 없는 말들과 무심코 한 반응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시시각각 지옥과 천당을 오가고, 혼자만의 착각과 기분 좋은 상상으로 허황된 마음에 부풀어 숨막히게 하는 단초가 된다.


짝사랑과 희망고문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너그러움은 사라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런 감정의 책임은 오로지 짝사랑을 시작한 당사자 본인에게만 있을 뿐, 그 누구에게도 혼자만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받을 수도, 보상받을 수도 없다. 짝사랑을 받고 있을 누군가는 이런 감정이 시작된 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혼자 시작하고, 혼자 끝내야 할' 쓸쓸한 운명의 존재감 없는 마음이 바로 짝사랑이다.


그래서 난 웬만하면 짝사랑은 시작조차 안 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불현듯 짝사랑이란 증세가 시작될 경우, 내가 쓰는 방법이 있다. 그 상대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일부러' 해 나를 멀리 하게 만드는 거다. 어차피 짝사랑이란 한번 시작되면 내 스스로 통제가 안된다. 아쉽지만 상대가 멀어질 경우에라야만 짝사랑이 희망고문으로 번져 내 마음의 곰팡이로 자라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후자처럼 칼같이 끊어주면 좋겠지만 대개의 경우엔  황 자체를 르거나 알면서도 방관한다. 누군가 고삐를 잡기 전까진, 상대도 사랑받는 감정을 소비하고픈 이기심을 멈추기 힘들 때문이다.


결국 짝사랑의 역치를 통한 '대증요법' 쓰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상대가 베푸는 무의미한 친절이나 호의가 더이상 나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전면 차단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 방식대로 해석되어 '희망고문'이 발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방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는 내가 싫어지거나, 당황스러워져서, 다신 나에게 의미 없는 말과 행동들을 하지 않게 될 것이고, 나 역시 희망고문의 함정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다. 국 둘 다를 위한 선택지인 셈이다.


로맨틱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거칠고 무미건조한 자기방어기제인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짝사랑의 태생적 운명이자 한계다. 어차피 의미 없이 사라질 감정이라면, 나 자신을 파괴할 것, 아프게 할 것도 없는 길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므로.


그게 바로 내가 짝사랑에 대처하는 자세다. 누군가는 '대가가 없어도, 나보다 누군가를 조건 없이 좋아할 수 있는 짝사랑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극대화한 마음'이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짝사랑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마음이다. '주인'없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짝사랑의 결말은 항상 새드엔딩이 될 수밖에 없고 짝사랑은 언젠가 소멸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짝사랑이 결실을 맺는 경우는 오직, 짝사랑이 '시차를 둔 사랑'으로 변이됐을 경우 뿐이다. 누군가가 먼저 좋아하고 나중에 상대방도 좋아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 희박한 가능성을 놓고 시름시름 앓으며 당신의 소중한 마음과 시간을 엉뚱한 곳에 낭비할 것인가.


그래서 난 누군가에 향했던 마음을 억지로 접었고, 나에게 향해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단호히 받지 않았다.


사랑은 참 힘들다. 아무리 많이 해보고, 아무리 오래 해봐도 매번 처음처럼 아프고 쓰라리다.


하지만, 언젠가 찾게 될 나의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나와 함께 균형 잡힌 '관계의 곡예'를 꿋꿋이. 용감히. 해 나갈 내 마음의 진짜 주인을 위해 나는 지금 이순간 나 자신을 '좀 먹을' 마음을 꾹꾹 억누르고, 누군가를 희망고문할 나의 애매한 행동들을 원천봉쇄한다.


이게 바로 내가 짝사랑에 대처하는 자세다.


출처: https://www.domestika.org/en/projects/562860-equilib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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