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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Jun 18. 2020

사랑이란 가면을 쓴 분리불안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 만나고 헤어지며 스쳐 지나간 사랑들은 대부분 '사랑의 가면을 쓴 분리불안'이 망쳤다.

 

어찌보면 나란 인간은 '언제 나이만 먹었지?' 싶은 부담스런 나이에도 여전히 자라지 못한 채 철없는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지도 모른다.

 

어릴 때 난 부모님 사랑을 나름 부족하지 않게 받았다. 자식이라면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서라도 희생하며 기쁨을 누리는, 마더테레사를 닮은 엄마를 둔 덕분에, 객관적으로 넘치면 넘쳤지, 부모님 사랑을 부족하게 받은 사람은 아닌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항상 '결핍'을 느꼈고 '불안'했다. 특히 엄마와 분리되는 순간은 공포의 시간이었다.

 

대게 분리불안은 어린 아이들이 갖는 보통의 흔한 불안 장애라고 들었다. 하지만 나의 선천적 분리불안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도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한번은 엄마가 장을 보러 가느라 현관 문을 잠그고 나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온 뒤 몇시간 후에 집에 들어오신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마치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이라도 간 듯 서러운 어린양 코스프레를 하고는 뒤늦게 돌아온 엄마를 원망했다. 책가방에 들어있는 책들을 모두 빼내 현관문 앞 바닥에 켜켜이 깔고 그 위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무릎팍에 파묻고는 우는 시늉을 하는 짓 말이다. 엄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사랑을 넘치게 주며 키웠는데 어릴때 넌 항상 내 등에 붙어 있었어." 그런걸 보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 엄마 말로는 당시 1년 4개월 터울인 연년생 오빠를 키우기도 벅차 잠시 중절을 고민하셨었다는데 (당시 80년대에는 임신 중절이 꽤 흔했다고 한다.) 그때 태아 상태에서 받은 트라우마가 있었던걸까? 그것도 아님, 천성이 모든 사랑을 독차지 하고픈 '욕심쟁이'라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님, 너무 넘치는 사랑에 스포일드 차일드가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꽤 자주 '나의 동의 없이 엄마와 분리된 시간'은 졸지에 '엄마에게 버림받은 시간'으로 둔갑하곤 했다. 이 끔찍한 시간들은 종종 없는 일도 지어내고 비극적인 소설을 써대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곤 했던 나의 자기방어기제와도 맞물려 최악의 앙상블을 이루기도 했다.

 

나중에 스무살이 되어 첫 연애를 할 때에도 이놈의 분리불안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그 친구도 나도 '연애는 처음이라서...'나는 그저 날것의 나를 열심히 드러내기만 했고, 그 친구는 그저 자신을 누르고 참고 버티고 맞춰주기만 했다. 그 친구는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어린양인걸 알고는, '샴쌍둥이가 되어 준다'며 철없던 나들 다독이기까지 했었다. 어찌됐든 둘다 사랑이었다. 난 몰랐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사랑이란 가면의 분리불안'이 상대를 얼마나 괴롭히는 건지를...서른이 한참 넘고 나와 똑닮은 어느 어린양을 남자친구로 가슴에 품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까맣게 몰랐다. 내가  그 첫사랑에게 얼마나 나쁜 여자였는지를.

 

거의 모든 연애에서 우리의 갈등은 연락에서 시작됐다. 경제학에도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게 있다. 처음엔 가파르게 상승하던 효용 곡선이 어느 순간엔 서서히 기울곡선으로 꺾이며 한 개의 상품이 주는 만족감과 효용이 시간에 비례해 감소하는 법칙 말이다. 나는 그런 게 인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이란 걸 인정하지 못했었다. 그리곤 익숙함과 편안함에 점점 뜸해지는 연락을 '사랑이 식어서, 혹은 사라져서' 라고 매도했다.

 

내가 연락을 하고 상대가 답하는 걸 기다리는 '분리'와 '단절'의 시간엔 어김없이 나의 고질적인 분리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나를 지키기 위한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엔 '헤어지자' '끝내자' 자폭하는 파국으로 나를 이끌곤 했다.

 

그렇게 꽤 나랑 잘 맞고 나에게 잘 해 줬고 나도 많이 사랑했었던 몇몇을 모두 다 '내손으로' 버렸다.

 

그래서 나는 혼자다. 사랑이란 가면을 쓴 분리불안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 바에얀 차라리 분리될 것도 없는 혼자가 되는 것이 속 편하다는 나도 몰래 내린 '결딴'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서 역지사지를 비로소 하게 되었던 서른 중반의 시간들로부터 나는 참 많이 배웠다. 최소한 나는 이 고질적 분리불안은 사랑이 아니며, 사랑의 가면을 쓰고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깡패' 같은 거라는 걸.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그래도...그래서...'성찰하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신을 믿게 되면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지 않고, 편안하게 즐기게 되었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혼자라는 흔한 진실도 늦었지만 어렵게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간혹가다. 내가 좋아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나, 때론 남자친구가 연락을 안하면 그 어릴 적 분리불안이 튀어 나올 때가 있다. 처음엔 궁금하고 중간엔 서운하고 나중엔 제대로 삐쳐서 될대로 되라. 나도 너 싫어. 너 안봐. 가 된다. 이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면, 이성적으론 통제가 되면서도 감성적으론 고삐가 풀려 버린다.

 

내 성격 중에 또하나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 있는데, 난 뭐든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게 생기면 '불도저'가 된다. 그래서 공부든, 취업이든, 업무든 사회생활에선 '안되면 되게 하라'. 무대뽀 정신으로 백전백승. 꽤 많은 성공과 성취를 이뤄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 관계에선 내가 불도저가 될때마다 언제나 상대는 멀어지거나, 오해를 하거나 힘들어 했다는 거다. 내가 항상 같이 있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때론 소유하고 싶었던 연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에 맡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런 이유로 난 내가 가장 '덜' 좋아했던 사람과 가장 '오래' 만났다. 편안함과 풀어줌을 가장한 '무관심' 덕분이었을까. 그럼 난 앞으로도 내가 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수동적인 연애만 해야하는 걸.까.

 

하지만, 어느 작가의 말대로. '누구나 엉망진창의 자기 자신을 끌어 안고 멀쩡한 척, 어른인 척 한 세상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닌가. 그 엉망진창이 나에겐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리불안이다. 그리고 난 어쩔 수 없이 그 '먹어도 먹어도 사랑 고픈 어린 영혼'을 끌어 안고 터벅터벅 살아가는 수밖엔 없다.

 

그래서 오늘도 연습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와, 그리고 언젠가 내가 좋아하게 될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사랑이란 가면을 쓴 분리불안의 소용돌이가 또다시 몰아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빼내고 그들을 그 자리에 얌전히 두고 천천히 심심한 나의 일상에 집중해 본다.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arnival_of_Ve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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