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던 나의 현재와 마주하기 위하여
길을 잃은 듯한 막막함이 나를 휩싸을 때, 내 안에 숨겨진 생존본능이 어김없이 깨어난다. 언제나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완경선고 이후, 하루하루가 억울하게 느껴졌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신체적 괴로움이 시도때도 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해 겨울, 내안에 혼란과 무기력이 나를 잠식해갔다.
오랜 시간 눈팅과 덕질의 대상이었던 H가 유료모임을 꾸렸을 때 나는 응원을 빙자해 신청버튼을 눌렀다.
다양한 모임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함께 어울려보고 싶었지만 나이 많은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전업주부인 내가 감히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라며 스스로를 수차례 주져앉혀오던 끝에 낸 용기였다. 당시 온라인 모임에서 H가 하는 일에 응원을 보내고 싶어 참여했다고 말했었는데, 실은 내 본능이 나를 살리기위한 용기를 그러모았던 것임을 이제는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첫번째 온라인 모임을 가진 다음해에는 그들과의 시간으로 가득 채웠다. 적당한 거리감이 유지되는 관계맺음이 있는 이 커뮤니티는 안정감과 소속감에 대한 나의 결핍을 적당히 해소해주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수평어를 쓰는 것이 나의 컴플렉스를 자연스럽게 가려주어 편안했다. 덕분에 나는 내 상황을 적당히 숨기거나 드러내면서 퇴화되고 둔감해져버린 내안의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다양한 레퍼런스를 만나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2030 싱글 여성의 삶'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떤 것들은 그들 덕분에 뒤늦게 도전하고 경험해보기도 했다.
한동안 아무도 나에게 하지 않았던 질문을 해주는 그들 덕분에 '엄마,아내,딸' 이라는 사회적 존재에서 벗어나 '나'로서 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공표했던 그 가을을 잊을 수 없다.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모임을 우리 농장에서 치렀는데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아닌 낯선 사람들에게 나의 공간을 오픈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내 일상의 공간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1박 2일의 찐한 만남 후 나에게는 '주3일 러닝하기' , '춤 배우기', '혼자 비행기타고 떠나기' 이렇게 3가지의 버켓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욕망을 마주하는게 어려운 내가 정해진 시간 안에 이것들을 찾아내다니!
적절한 장치들을 곁들여 좋은 질문을 할 줄 아는 능력자 J 와 M의 진중함과 경청이 더해지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 날것의 자기 감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처럼.
나는 이 놀라운 경험을 'WBC 매직' 이라고 부른다.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해준 그 순간들을, 그들 덕분에 이룰 수 있었던 변화를.
(WBC 는 WOMEN'S BASECAMP 의 줄임말로 모험하는 여자들의 아웃도어 커뮤니티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