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우리보다 먼저 죽는 시대에 창의적 체질로 살아간다는 건....
삶의 태도로서의 창의성
창의성이란 키워드가 워낙 크고, 한 번에 떠올리는 맥락이 사람마다 다른 경우가 많아서 계속해서 창의성을 내 삶에 구체적으로 들여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위적으로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외침 속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창의적 인재'가 되어야 한다며 직장에서 능동적으로 일하는 직원 혹은 특정 상황에서 문제 해결력이 높은 사람들을 찾습니다. 즉, 여전히 창의성을 갖춘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고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의적 인재가 된다 한들, AI 시대와 백세 시대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직업이 우리보다 먼저 죽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 모두의 고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뭘 하고 살아가야 할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우리가 수단이 되는 게 아니라, 나의 삶의 태도로서 창의성을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창조적 자아', '창의적 체질'이란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창의적 체질과 창조적 자아는 평생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배움에 열려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삶의 태도를 갖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키워드를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알고,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창의성은 나만의 표현 도구로 나와야...
앞서 언급한 나만의 배움은, 결국 어느 순간에는 나만의 창조적 언어로 표출되어야 합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 하나가 내게 맞는 creative language, 즉 창조적 언어 매체를 탐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언어'를 좀 넓은 의미로 씁니다.
일차적으로 외국어에 관심이 많고, 하나의 생각이 각 언어에서는 어떤 규칙과 표현으로 대응되는지를 찾아내는 과정에 관심이 있기도 합니다. 그건 제게 일종의 퍼즐, 혹은 추리 게임 같은 놀이입니다. 하지만 훨씬 더 넓은 범주에서 생각이 특정 매체로 번역되어 나오는 대응 관계를 지켜보는 것에 흥미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건축가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건축이란 매체로 번역해 내는 모습을 보면 짜릿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합니다.
어려워 보이는 현대 예술도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어떤 매체를 선택해서,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가에 초점을 맞춰 보는 건 정말 흥미롭습니다. 제가 건축가가 아니고, 예술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면 창조적 작업이 이루어지는 많은 순간, 그 일만의 매체로 생각의 번역이 이루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일반적인 생각을 '학술적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상품을 최적의 방법으로 팔기 위해 '고객에게 전달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마케팅입니다.
이런 생각과 태도로 살아가게 된 게 너무 자연스럽고 오래되어, 언제부터 이렇게 세상을 보게 되었는지 따로 인식할 계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 글을 준비하며, 10여 년 전 [생각의 탄생] 책에 써 둔 블로그 글을 살펴보았습니다. 10년 간 창조적 체질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배우고 적용해 보는 과정에서 이 책을 보는 관점엔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과학자, 예술가들의 작업을 "전달 가능한 수단으로 번역한다"라고 이해하는 건, 이 책의 공동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표현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의 탄생]의 여러 에피소드 중, 여전히 인상 깊게 남은 부분이 있습니다. 유전한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바버라 매킬릭턴이 노벨상을 타기 30년 전에 이미 직관적으로 답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직관을 동료 연구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과학적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공부와 연구와 작업을 하는데 3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리처드 파인만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수학은 우리가 본질이라고 이해한 것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이지 이해의 내용이 아니다.”
그 역시 직관적으로 이해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수학’이란 언어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이처럼 과학자, 예술가들이 창조적 직관으로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느낀 것을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일'이 됩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창조적 체질로 살아가다 보면 창조적 직관이 전달해 주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순간 직관, 영감의 상태로 찾아오는 것이죠. 그걸 어떤 적절한 매체, 즉 creative language를 통해 번역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탐색 과정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그 결과 어떤 매체를 찾아 번역할 수 있느냐에 따라 사업가가 될 수도, 작가가 될 수도, 예술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창조적 자아' '창의적 체질'로 살아간다는 건 이런 걸 말합니다. 창의성에 대한 배움이 삶 속에 녹아들어 언제 배운 지식인지도 모른 체 삶의 태도로 나타나는 것, 그리고 나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적절한 번역 방법에 대한 고민 같은 것.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도,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