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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스티아 Apr 05. 2024

마음대로 선 긋던 자유를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하여

창조적 직관을 되살리기 위한 첫걸음

지난번 글에서 창조적 직관을 되살리기 위해, 베티 에드워즈의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 책을 활용해 보는 것을 제안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술교육 전문가 선생님과 이 책을 활용해보고자 했을 때, 현장에서는 연필을 쥐고 선 하나 긋는 것에도 심리적 저항감을 상당히 갖고 계시는 분들도 꽤 많았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아이들 중에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런 경향이 있긴 한데, 어른들의 경우 훨씬 그런 빈도가 많습니다. 이렇게 어릴 때 마음대로 선 긋던 자유를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해서는 한 걸음 더 지지대가 될만한 책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마크 키슬러의 드로잉 수업(누구나 30일 만에 끝내는) 


이 책은 연필을 들고 동그라미만 그릴 줄 아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자전거의 보조바퀴처럼, 아니면 수영장에 들어갈 때 튜브처럼 동그라미 그리기를 붙들고 그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이 무서운데, 무조건 그냥 들어가라고 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들어가라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물이 편안하기 때문에 물이 무서운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선수가 뛰어난 코치가 되지 못하고, 전문가가 좋은 교사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지식의 저주' 때문입니다. 칩 히스, 댄 히스의 '스틱'에 나오는 개념인데, 자신이 어떤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그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이해하지 못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물에 들어가는 게 곧바로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대안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마크 키슬러의 드로잉 수업이 꽤 도움이 됩니다.


첫날은 동그라미 하나.

둘째 날은 동그라미 몇 개 더.


이렇게 시키는 대로 따라 그리다 보면 며칠 안에 꽤 그럴듯한 작품? 하나가 완성됩니다.

첫날은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을 그려낼 때, 아주 작은 성취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만큼 두려움과 거부감은 녹아내리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 더 따라 하면 30일 이후에는 더 멋진 그림도 그릴 수 있지만, 솔직히 저도 이 책을 끝까지 따라 그려 보지는 않았습니다. 더 그려봐도 되지만, 이미 저는 그 단계에서는 제가 스스로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더 올라와서 굳이 그 그림을 따라 그려볼 필요성을 못 느꼈거든요. 


이건 저의 관심사가 드로잉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직관을 풀어내는 데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창의성 관련 글을 쓰면서 연필로 드로잉 하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드로잉 기술을 익히기 위함이 아닙니다. 누구나 어릴 때 자유롭게 선을 그을 수 있을 때는 창조적 직관도 열려있었는데, 지금 선 하나 긋는 것도 억압되어 있다면 그만큼 나의 창조적 직관도 끊어지거나 막혀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리지널한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후천적으로 익히고 훈련해야 할 것들도 많지만, 적어도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능력은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크 키슬러의 책으로 동그라미 그리기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동그라미 그리기로 첫 발을 떼면 이후에는 두 가지 방면으로 나의 창의성을 더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의도적으로 나의 예술적 창조적 직관을 더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브런치북 '안전한 우연을 꿈꾸며 혼자 떠나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는 멕시코 워크캠프에 참여할 당시 어릴 갖고 있던 예술적 창조적 직관을 자극할 경험들을 했습니다. 


멕시코 워크캠프를 떠날 즈음 전후에 제가 창의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책을 읽던 터라, 김한민 작가의 '그림여행을 권함'을 읽고 그림 여행을 해고보픈 자극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어릴 때 끊어진 창조적 직관을 더 연결해 보자'라고 정리되어 인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멕시코 워크캠프, 그리고 이어서 캄보디아 워크캠프에 참가하며 그림 여행을 시도해 봤는데요, 어릴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그려냈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을 통감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워크캠프 기간 동안 인상 깊은 순간들을 '내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그려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창조적 직관도 더 풀려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멕시코에서 만난 프랑스 자원봉사자 친구는 그림 재능 기부 중이었는데, 그 친구의 재능을 부러워하던 우리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죠.

"너희들도 다 할 수 있었는데, 단지 오랫동안 안 그려서 잊어버린 것뿐이야."


창의성, 그리고 누군가가 갖고 있는 고유한 재능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면서, 내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다한들 그 친구만큼 멋진 그림을 그려낼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재능은 어떤 것을 지금 잘할 수 있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잘하든 그렇지 않든, 더 나아질 수 있기 위한 배움을 스스로 능동적으로 구성해서 익힐 수 있느냐, 그리고 원하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지속할 끈기가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 친구만큼의 그림 재능이 내게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릴 때 다 할 수 있었던 능력이 끊어졌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내가 어릴 때 갖고 있던 예술성을 더 키우도록 창조적 직관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비주얼씽킹, 디자인사고의 방향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SHOW 하라'의 저자 댄 로암은 경영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비즈니스 전략과 문제 해결을 돕는 사람입니다. 현재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외쳐대는 가장 근본적 이유인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전문으로 다룹니다. 이 분의 책 '생각을 SHOW'하라에서는 냅킨에 간단한 시각적 기호와 그림을 덧붙이면서 비주얼씽킹의 방법을 이야기하는데요, 이 책의 시작에서도 사람들의 비슷한 저항을 만납니다. '나는 그림을 못 그려요'. 저자도 이 글과 비슷한 관점에서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능력이면 그림을 그리는 능력과 관계없이 비주얼킹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깊게 다루고자 합니다. 다만 이처럼 동그라미 그리기로 풀어낸 창조적 직관이 향후 비즈니즈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데도 연결될 방향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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