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쌍미음 Mar 15. 2021

우울장애 확진과 내 존재의 인정

나 자체로서의 인정, 어린시절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

어린 시절,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오며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여자라서 일손만 도와야 하고 작고 못 생겨서 쓸 데 없는 사람. 

아무것도 아닌 사람.


그러다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아니었다. 

다 아니었다.

나는 그냥 작은 사람이고, 못 생기지 않았고, 잘하는 것도 많고, 쓸모도 많은 사람이었다. 

깍두기 외에도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역할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나를 지켜봐 온,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나의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만 몰랐었다.




다 큰 성인이 되어 만난, 거의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병원 원장님도 알아보셨다.

임상심리평가 결과를 들으러 갔던 날, '진단명 우울장애'를 판정하시며 했던 말씀 중 일부이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 ㅁㅁ님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네요. 치료를 좀 더 일찍 받았더라면 최소 전문직은 됐을 거예요.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는 게 안타까워요. ㅁㅁ님은 좋은 점도 많고 여러 가지 모습이 참 많아요. 단지 지금은 힘들어서 옛날의 좋지 않았던 생각과 모습이 잠깐 다시 나오고 있는 것뿐이에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우울한 시기에, 드디어 난생처음으로 내 존재 자체로서 인정받았다.

그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것도 나의 가장 우울한 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냥 앞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내 존재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왜 우울하냐며 다그치지도, 네가 그러니 우울하지 라며 모든 탓을 나에게 돌리지도, 넌 원래 그렇다며 비난하지도, 내 존재를 부정하지도 않으셨다.




처음으로 받아본 나 자체로서의 인정.

내 존재 그 자체로서의 인정.

노력 없이 처음으로 받아본 인정의 말 한마디.

어린 시절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비난과 부정만 받던 나의 어린 시절이 너무도 가여워서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다른 어른들의 무례함으로부터 나의 아이를 보호해주겠노라고, 지켜주겠노라고.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 힘을 길러주겠노라고.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겐 큰 기쁨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얘기해주겠노라고.


나의 아이에게 사랑의 말을 건네는 동시에 어린 시절의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