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작은 사람이고, 못 생기지 않았고, 잘하는 것도 많고, 쓸모도 많은 사람이었다.
깍두기 외에도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역할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나를 지켜봐 온,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나의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만 몰랐었다.
다 큰 성인이 되어 만난, 거의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병원 원장님도 알아보셨다.
임상심리평가 결과를 들으러 갔던 날, '진단명 우울장애'를 판정하시며 했던 말씀 중 일부이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 ㅁㅁ님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네요. 치료를 좀 더 일찍 받았더라면 최소 전문직은 됐을 거예요.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는 게 안타까워요. ㅁㅁ님은 좋은 점도 많고 여러 가지 모습이 참 많아요. 단지 지금은 힘들어서 옛날의 좋지 않았던 생각과 모습이 잠깐 다시 나오고 있는 것뿐이에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우울한 시기에, 드디어 난생처음으로 내 존재 자체로서 인정받았다.
그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것도 나의 가장 우울한 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냥 앞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내 존재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왜 우울하냐며 다그치지도, 네가 그러니 우울하지 라며 모든 탓을 나에게 돌리지도, 넌 원래 그렇다며 비난하지도, 내 존재를 부정하지도 않으셨다.
처음으로 받아본 나 자체로서의 인정.
내 존재 그 자체로서의 인정.
노력 없이 처음으로 받아본 인정의 말 한마디.
어린 시절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비난과 부정만 받던 나의 어린 시절이 너무도 가여워서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