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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Sep 26. 2021

부부는 남이다.

남처럼 대하자.

가족, 친족의 가까운 정도를 숫자로 표현하는 촌수 법에 부부는 제외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부부는 서로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라서, 서로 다른 핏줄에서 태어난 남과 남이 만나 인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태어나면서부터 1촌인 엄마와 아빠, 2촌인 형제자매와 양가 조부모님, 3촌인 숙부님과 양가 증조부모님,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사촌의 팔촌까지도 저절로 서로 촌수를 나눠가진 혈연관계를 획득했다.


이 많은 혈연관계 중에서는 나의 출생을 매우 기뻐하고 나의 존재만으로도 행복과 가치를 느끼는 상대도 있었겠지만, '아~ 누구의 몇 촌의 몇 촌에 며느리가 아기를 낳았다던데?~' 라며 나의 출생을 그저 숱하고 숱한 단 하나의 외마디 '응애-' 소리로 여긴 상대가 태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오감으로 그 존재의 실체를 확인한 촌수는 6촌 지간이 최대이다.

얼굴만 잠시 봤을 뿐, 이름도 모른다.

이 중에서 내가 원해서 가진 관계는 단 하나도 없다.

나의 출생과 마찬가지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맺어진 매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관계이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맺어진 관계인만큼 데면데면하게 대하기가 십상이라 그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억지로 촌수로라도 핏줄로라도, 법적으로 혈연으로 묶어둔 것이 아닐까.

억지로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서로를 보듬으며 지내라는 비자발적인 관계.




반면 커오고 살아오는 과정에서 획득한 친구이거나 연인이거나, 은인이거나 원수이거나 가족 외의 관계들은 모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맺은 관계이다. 자발적으로 강한 의지를 갖고 맺은 관계이다. '가족'이 아닌 '남'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이쪽이야말로 법이나 핏줄 등으로 억지로 묶고 돌지 않아도 자연발생적으로 책임감이 생기며 서로를 보듬어주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매우 자발적인 관계.


이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관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부부이다.

자발적으로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소위 말하는 '가장 가까운 가족 0촌'인 부부 사이가 되면 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자발적으로 시작했지만 법적으로 비자발적인 관계로 묶여버리는, 하지만 또 마음만 먹으면 법적으로 남이 되고 자발적으로 원수가 되어버리는 매우 이상한 형태로 그 성질이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다.


부부 사이에는 촌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0촌이 정말 그럴듯한 0촌이라면 공론화시킬 수도 있을 법한데 아직까지 누구도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부부는 남처럼 - 평생을 책임감을 갖고 서로를 보듬어주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면 지금에 와서 나라도- 부부 사이에 그런 의미를 붙여본다.



남과 남이 만나서 부부가 되었으면 그냥 이전처럼 똑같이 남과 남처럼 대하자.

책임감 있게, 배려있게.


결혼과 동시에 이젠 남이 아닌 가족이 되었다면서, 말도 안 되는 '0촌'을 들먹이며 의무만을 강요하지 말고 권리만을 주장하지 말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시작은 남이었던 관계.

계속 남처럼 대하자.

친밀하되 익숙해지지 말고 다정하게.

어떤 관계보다도 그 시작에 강렬한 의지가 있었고 매우 자발적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아주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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