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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사랑한 동화_(2)

중국인이 추천하는 필수 여행지, 우전

by 티제이

풍부한 역사와 문화의 상징인 ‘강남 6대 수향마을(江南六大古镇)’ 중, 오진(乌镇, 중국어 발음은 우전)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구전 중 하나다. 현재의 풍경은 대부분 청나라 말기, 중화민국 초기의 모습이지만, 천 년 이상 된 고적지도 몇 군데 남아있다. 이 우전을 북쪽의 건축양식, 특히 베이징의 건축양식과 섞어 재현한 공간이 바로 구베이쉐이전이다.

IMG_6250.JPG 해질녘 우전. 관광구역으로 진입하기 전, 잎구 근처의 모습니다.

구베이쉐이전의 오리지날 수향마을인 우전은 진정한 오리지날의 위상을 톡톡히 보여준다. 일단 규모가 상상 이상이다. 우전은 가운데 대운하를 두고 서쪽 구역(스처)과 동쪽 구역(동처)으로 나뉘어 있다. 옛날에는 각각 ‘우전’과 ‘청진(青镇, 중국어 발음은 칭전)’이라는 별도의 이름이 있어 둘을 합쳐 ‘오청이전(乌青二镇, 중국어 발음은 우칭얼전)’ 혹은 ‘우칭전’이라 불렀는데, 후대에 ‘우전’으로 통일되었다.

명칭만 통일된 거지, 물리적으로 하나가 된 건 아니다. 두 구역 중간에는 택시와 버스가 다니고 아파트와 상점이 자리한, 눈에 익숙한 도시가 들어서 있다. 지금은 많은 주민들이 보호구역 외부에 살면서 수향마을 내부로 출근한다. 아직 구전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지만, 솔직히 나 같아도 아파트를 옆에 두고 여기서 살라고 하면 진심으로 거절하고 싶다. 여행으로 들리기엔 좋아도 터를 잡고 살기엔 대도시가 제일 편하다고, 베이징 싫다 싫다 노래를 하던 주둥이가 말했다.


너무너무 고대하던 우전이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넘치는 진정성은 만큼 낡고, 불편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촌뜨기는, 이 매혹적인 풍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IMG_6286.JPG 우전의 야경. 문화유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환경을 위해 모터 달린 배는 진입 불가다. 덕분에 저녁에도 조용하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실망했냐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의 모든 기대를 다 뛰어 넘어서, 중국인들이 왜 그렇게 우전에 가라고, 가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보챘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전면적인 보수작업을 거쳐 2001년도에 정식으로 개방 된 동책(東柵, 중국어 발음은 동처)은,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대대적인 계획개발 덕분에 모든 게 큼직하고 널찍하고, 깔끔했다. 관광 가능한 개방구역만 따지자면 스처보다 넓고, 베이징의 구베이쉐이전보다도 세련되었다.

우전의 동처에서는 광고판에서만 보던 꿈결 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중국 어디에나 걸린 홍등이 여기에서는 더욱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잔잔한 운하는 은하수처럼 빛난다. 사람들은 노랗게 불을 밝힌 다리 위에 서서 검게 반짝이는 물 위를 유유히 떠가는 나룻배를 감상한다. 멀찍이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전통극을 한 곡조 높고 길게 뽑는 소리가 어우러져 경쾌한 소음을 이룬다.

소프트웨어도, 그러니까 내용물도 얼마나 알찬 지 모른다. 동처 중심 광장에는 우전의 무형문화재, 그러니까 전통노래나 춤, 연극, 연주 등도 시간표에 맞춰 수시로 진행하는 공연장이 있다. 전통기념품을 파는 몇 몇 가게도 안 쪽에 무대를 마련했다. 그림자인형이나 꼭두각시를 파는 가게 안에서 정식 인가를 받은 장인이 여는 공연을 선보이는 식이다. 공연은 모두 무료여서, 이정도면 표 값은 하나도 비싸지 않다고 외치며 열심히 골목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IMG_6425.JPG 마을 귀퉁이에 건물과 수로를 활용하여 수상공연장을 만들었다. 야외공연은 여름에 띄운다고 한다.

서책(西柵, 중국어 발음은 스처)은 민간인 거주구역이라 동처와 달리 관광구역과 시간이 딱 정해져 있다. 자고로 문화유산의 '진정성'이란, 과거와의 연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의미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스처 내 주거지를 그대로 두었다.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유지하기 위한 조치인데, 구역 내에서 살아갈 경우 세금이라던가 이러저러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인구유출을 막고 있다. 그래도 기존에 살던 집을 홈스테이나 민박업으로 변경하고 나갈 사람은 다 나가서 산다.

본래 우전은 지금의 스처만을 이르는 말이었다.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중국의 수많은 수향마을 중 면적 비중 수로의 밀도가 제일 높은 곳이 바로 오늘날 우전의 스처다. 수로가 많으니 수로를 가로지르는 교각의 수량도 1등이다. 수로도 빽빽하고 건물도 빽빽하고 교각도 이리저리 얽힌 스처에서는 배 다니는 물길이나 사람 다니는 돌길이나 폭이 다 좁다. 워낙 정비를 잘 해 놓은 동처와 달리 스처의 밤은 너무 위험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처는 야간개장을 하지 않는다.

IMG_6299.JPG 무영문화재로 등록된 장인이 실내공연장에서 전통악기연주와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주요 쇼핑거리와 광장 등, 제일 화려한 구간을 선호한다. 밝아서 사진 찍기도 좋고, 무엇보다 중국인의 취향이 그렇다. 특별히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전공한 사람이 아닌 이상, 중국은 좁고 어두운 골목이 주는 분위기를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중국의 대중은 낡고 헤진 걸 '빈티지'로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옛 것 마저도 깔끔하게 새로 해 놔야 크게 환영받는다.

중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문화대혁명 시기와 겹치는데, 당시는 중국 사상 교육수준이 제일 낮았던 때다. 어느 베이비부머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그 세대'도 오늘날 자본과 사회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그들'이 돈을 쓰고 즐기는 문화란 화려함, 그리고 중국의 이미지라고 생각되는, 구체적이지 않은 '그 무엇들'이다. 이들에게 중국은 붉고, 열정적이고, 당당한 무언가다.

젊은이들은 약간 다른 이유로 화려한 환상을 쫒는다. 천안문 사태 이후로 중국은 교육제도, 특히 역사교육부분을 대폭 수정했고, 그 결과 중국의 공공교육은 한국 저리가라 할 만큼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도 잘 나간다는 고등학교는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는 게 하고,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한글도 한자에서 변형된 문자라고 생각하고, '무슨무슨 이론은 미국의 누구누구 학자가 창시했으며~'라고 설명하는 교수를 고발한다. 나의 중국어 선생님이 그랬다.

IMG_6338.JPG 우전의 특산물 줄 하나는 견, 즉 비단이다. 비단실을 만들기 위해 고치에서 번데기를 빼내는 모습.

그래서 유서 깊은 공방과 건축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만나볼 법한 장인과 수공예품이 도처에 널린 스처는 언제나 동처보다 한가하다. 작고 꼬부라진 노인이 뜨거운 물에 누에고치를 풀고 있는 전통 견직물가게도, 수상에서 전통기예를 선보이는 기인도, 내 눈에만 신선하고 즐겁다. 어느 중국인의 눈에는 자못 촌스럽고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흔적 정도로만 비치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인들도 스처에서 모종의 감상을 받고는 한다. 중국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 되었다, 라는 자부심을 품고 동처에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낸다. 상상에서만 존재했던 중국, 현대와 고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 동양적이지만 편안하고, 어디 하나 밋밋한 곳 없이 휘황찬란한 현장, 중국.

IMG_6341.JPG 수상공연.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다니며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삶에 여유가 생기고 교통인프라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물을 끼고 형성된 중국의 유서 깊은 마을 중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특히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나 고풍스러운 건축을 그대로 간직한 옛 마을은 중국인에게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더욱 사람이 넘쳐난다. 본디 남쪽 지역의 전유물이었던 수향마을은 이제 대륙의 정체성이 되었다.

동처에서는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가 스처에서 여유를 갖고 돌아보니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대도시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끼고 형성된 옛 마을이란, 책으로만 배웠던 ‘진(镇)’ 이런 거구나, 상업적으로 크게 번성했던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구나, 돈이 돌고 도는 장소 특유의 역동성과 여유가 가득했겠지, 남편의 팔을 붙들고 끊임없이 감탄했다.


중국의 수향마을은 운하가 발달했다는 이유 때문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비교되고는 한다. 하지만 유럽의 세련된 물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진 베네치아와 달리, 구전은 중국인들의 옛 이야기 속 공간이 현실화 된 곳에 가까운 느낌이다. 둘 다 수로를 따라 자본이 모여모여 형성 된 도시라는 배경은 비슷한데, 현대에 들어 이를 소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중국인들의 판타지를 알고 싶다면 수향마을로 떠나보자. 전래동화 속 한 장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화된 중국이라는 환상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p.s. 수향마을 여행팁

무더운 한여름은 피하는 편이 좋다. 우전은 물론이고 저우장(周庄), 퉁리(同里), 루즈(甪直) 시탕(西塘), 난쉰(南浔) 등 명성 자자한 어느 강남고진이라도 그렇다. 아무래도 남쪽지역인데다가 물도 많다보니 여름에는 모기도 많고 물비린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잔잔히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한 계곡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녹조가 낀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짙은 녹색인데 현지인들은 이 물을 퍼다가 생활용수(!)로도 쓴다. 싼 민박을 잘 못 구하면 (물론 필터를 통과하기는 하지만)이 물을 써야 하기도 하고, 어느 식당은 이 물에 채소를 씻어 주거나 설거지를 해서 주기도 한다. 이 물에서 잡힌 물고기 요리도 있는데, 익혀서 나오는 거니까 한 번 정도는 먹어봐도 경험이 될 듯 하다.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에는 이만큼 수자원이 풍부한 곳도 드물었을 것이다.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에 익숙한 오늘날의 도시인으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다. 호텔이나 대형 숙박업체, 공공화장실은 다 정수된 수돗물을 공급하니 안심해도 되지만 유의하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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