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의 베네치아 동방수성에서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대련에는 <동방수성>이라는 이름의 베네치아 거리가 있다. 한국에도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관광지들이 있지만, 대련의 베네치아는 역시는 역시라고 대.륙.의.사.이.즈.로 만들어진 테마파크다.
베네치아에는 유럽에 있을 때 세 번 정도 다녀왔다. 한국에서는 작년에, 코로나 대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운 좋게 다녀왔다. 코로나 직전의 베네치아 여행이 신랑에게는 첫 경험이어서, 그 이전에 다녀온 수많은 베네치아는 모두 "00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모조품(?)들이었다.
'중국의 베니스'라는 여러 수향마을을 갈 때 마다, 신랑은 물었다.
베네치아도 이렇게 길이 좁아? 베네치아도 이런거 있어? 베네치아에는 저런 거 없어?
아니, 베네치아의 수로는 여기보다 넓고, 바닷물이라 여기와는 다른 종류의 악취가 나고, 여기보다 홍수도 자주 난다고, 운하가 형성 된 방식도 베네치아와는 다르다고, 여기가 왜 베네치아라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몇 번이고 같은 대답으로 대응했다.
베니스에 도착 한 첫 날,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 신랑은 말했다.
"음, 주자자오와는 다르네"
남해 독일마을, 파주 프랑스마을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 독일인이 와서 보면 좀 당황스럽지 않을까,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 된 차이나타운이나 코리아타운과는 달리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건데, 매 번 볼 때마다 별로라는 생각이었다.
한 번도 안 가봐서 그랬나보다. 대련의 동방수성, 즉 베네치아 테마 관광지에 가서는 신나게 사진도 많이 찍었으니 말이다. 베네치아에 안 가 본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동방수성에서는 베네치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를 상징할 만한 건물들이 이것저것 다 들어서 있어서, 오리지날보다 과장되고 화려했다. 덕분에 사진도 엄청 잘 나온다.
사대주의라고 한다. 외국 것은 좋고 우리 것은 못났다고 여기는 태도를 보통은 사대주의라고들 한다. '사대교린'은 외교정책의 일종이었다고도 하지만, 오늘날 보편적 의미로 사용되는 사대주의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맹목적인 동경과 자기비하를 일반적으로 사대주의라고 부른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사대를 받으면 받았지 꿇고 들어갈 일 없는 나라였던 것처럼 보인다. '중국특색사회주의'를 부르짖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특히 미국을 향한 반감은 척왜양주의가 드높던 그 시절 그대로인 듯 하다.
그런 것 치고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차량의 절반 이상은 볼보, 아우디, 벤츠를 비롯하여 도요타, 니싼 등등의 외제차다. 나머지 반절의 반절은 한국차다. 중국에서 샤오미, 화웨이, 비보 핸드폰을 쓰는 중국인은 많지 않다. 대부분 아이폰, 삼성폰, 아니면 짝퉁 아이폰을 들고 다닌다. 대문짝만하게 박힌 발렌시아가 티셔츠는 대부분 짝퉁이라고 들었다. 옷 좀 힙하게 입는다는 젊은이들은 다 홀리스터다.
아시아권에서, 외국, 특히 북미와 유럽등지에서 유래한 것들은 대개 향유하고 싶은 고급의 무엇으로 여겨진다. 말레이시아마을이라던가, 티벳마을, 스리랑카마을 혹은 탄자니아마을 같은 게 없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몇 십 년 전과 달리 한국은 '신토불이'를 외치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세계화의 진면모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뼈저리게 체감한 바 있다. '국뽕'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두유노 김치, 두유노 강남스탈로 희화화되는 국가주의적 자문화중심주의를 향한 비웃음이 한국인의 깨달음을 대변한다.
아닌 척 하지만 중국도 마찬가지다. 상하이로 대표되는 해안가 항구도시로 유럽문화가, 자본이 유입되었고, 인정하기 싫은 근대화를 겪었다. 그 와중에 중요한 현대사를 쉬쉬하며 숨긴 채로 미래를 향해 거듭나려 한다. 남들처럼 튼튼해져서, 남들보다 강한 국가가 되겠노라고, 중국은 그런 나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수향마을은 '동양의 베니스'고, 황산은 '아시아의 그랜드캐년'이다.
대륙 곳곳에 유럽의 어느 도시를 본 딴 테마파크가 수 십 곳이다. 실제로 역사상 관련이 있던 지역, 예를 들어 대련이나 하얼빈처럼 러시아와 관련이 있던 도시에는 당연히 러시아 뭐시기가 대표 관광지로 소개되고 있다. 천진처럼 서구 각국의 조계지가 들어섰던 곳에는 당연히 오스트리아 풍경구나 이탈리아 풍경구 등이 자리잡고 있다. 기존의 건축물보다 더욱 화려한 테마파크를 지어 올린 건 물론이다.
그 외에 대련의 동방수성처럼, 아무 관련 없는 곳에 관련성을 만들어 유럽을 지어올린 곳도 수 십 이다. 산둥반도의 봉래시(저번에 다녀온 펑라이)에는 말도 안 되는 규모의 놀이공원을 세웠는데, 유럽의 황궁을 본딴 호텔도 몇 동이나 지어 놨다. 베르사유궁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시설들에 몇 억이 쓰였다고 한다.
중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은 국가의 개입 없이는 진행 될 수 없다. 중화사상 부르짖던 분들 다 어디로 갔는지.
중국의 경제력이 내로라하는 여러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은 이제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 얼마나 큰 모순을 품고 있는지 간에,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한 점은 분명하다. 요우커들의 지갑은 이제 유럽 명품거리의 절대적인 밥줄이고, 세계 어느 관광지에도 중국어 간판 없는 곳이 없다.
요우커들의 경제력을 국내로 돌리기 위해 중국 중앙, 지방정부는 열심이다. 기존의 관광상품을 보완하고, 새로운 관광지를 끊임없이 개발한다. 그렇게 유럽식 테마파크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유럽 가지 말고 국내에서 돈 쓰라고, 본 유럽보다 사치스럽게 꾸며냈다.
그건 마치, 자국문화에는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서구문화권을 향한 동경을 차라리 인정하면 좋을 텐데, 또 그렇지는 않아서, 요상하게 중국식을 끼어 넣기도 한다. 그러면 요우커가 아무리 많다봤자 십중팔구는 망한다. 넓은 땅 구석구석마다 투자대비 효용이 나지 않아 문을 닫은 유령도시가 눈에 띈다.
대련의 러시아거리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다. 동방수성에는 가족단위로 놀러 온 중국인들이 외국인보다는 많은데, 관광객 수가 계속 줄고 있다고 들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이탈리아로 직접 가고, 그렇지 않은 관광객들은 사진만 찍고 가서, 수익이 나지 않는 듯 하다. 문을 닫은 레스토랑들이 많았다.
중국에 남은 외국의 흔적은 볼 때 마다 묘한 역사감을 안겨줘서, 동북부에 많이 있는 러시아마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종류의 관광지다. 새로 지은 외국스러운 테마파크는 아무리 여러 곳을 다녀봐도 매번 당황스럽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아니면 이런 규모로 외국을 재현해 낼 만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냐는 마음에 빠뜨리지 않고 꼭 가본다.
수 십 년, 백 년이 흐르고 나면 이런 관광지도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세계사나 동양사를 선택하면 시험문제로 출제되겠지.
남다른 경제력을 가졌던 21세기의 중국은 대륙 곳곳에 서구권의 도시들을 재현하려 노력했다. 대련의 해안가에 지어진 동방수성은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1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